등산스틱 들고 산에 올라봤더니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처음엔 짐인 줄 알았는데, 숫자가 먼저 반응했다
얼마 전 같은 코스를 두 번 걸어봤는데, 등산스틱을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체감이 꽤 달랐다. 그냥 느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스마트워치 기록을 보니 오르막 평균 심박은 비슷했는데, 하산 구간 페이스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특히 마지막 2km에서 보폭이 무너지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
사실 등산스틱은 초보자용 보조 장비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기록을 챙겨보는 입장에서는 꽤 흥미로운 도구다. 같은 체력, 같은 코스, 비슷한 날씨에서도 무릎 부담, 균형 유지, 하산 속도에 영향을 준다. 축구에서 활동량만 보는 게 아니라 스프린트 횟수와 압박 위치를 같이 보는 것처럼, 등산도 총 거리만 보면 놓치는 부분이 많다.
등산스틱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구간은 하산이다
오르막에서는 등산스틱이 추진력을 보태준다. 팔과 어깨를 같이 쓰기 때문에 하체만 버티는 느낌이 줄어든다. 근데 진짜 차이는 내려올 때 나온다. 하산은 근육이 늘어나면서 버티는 동작이 많고, 무릎에는 체중 이상의 충격이 반복해서 들어간다.
예를 들어 70kg인 사람이 경사 있는 길을 내려올 때, 한 발마다 무릎이 받아내는 충격은 평지보다 훨씬 커진다. 여기에 배낭 무게가 5kg만 더해져도 체감은 확 바뀐다. 등산스틱은 이 충격을 팔 쪽으로 일부 분산시킨다. 완전히 없애주는 장비는 아니지만, 반복 충격의 총량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 하산 막판에 무릎이 시큰한 사람
- 돌길이나 흙길에서 발목이 자주 흔들리는 사람
- 긴 코스에서 후반 페이스가 크게 떨어지는 사람
- 배낭을 메고 3시간 이상 걷는 사람
이런 유형이라면 등산스틱의 효과를 꽤 빨리 느낄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평지 산책에서는 차이가 작을 수 있다. 하지만 누적 고도와 하산 시간이 길어지는 순간, 작은 보조가 기록 전체를 바꾼다.
길이는 대충 맞추면 안 된다
등산스틱은 길이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보통 평지 기준으로 팔꿈치가 약 90도 정도 굽혀지는 길이를 많이 쓴다. 키 170cm 전후라면 대략 110cm 안팎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키가 크면 115~125cm 쪽으로 간다. 물론 팔 길이와 보행 습관에 따라 달라진다.
오르막에서는 조금 짧게, 내리막에서는 조금 길게 쓰는 방식이 흔하다. 오르막에서 너무 길면 어깨가 들리고 리듬이 깨진다. 내리막에서 너무 짧으면 몸을 숙이게 되고, 오히려 허리와 무릎에 부담이 간다. 등산스틱을 들고도 자세가 무너지면 장비를 쓰는 의미가 줄어든다.
접이식과 길이조절식의 차이
접이식 등산스틱은 휴대성이 좋다. 배낭 옆에 걸었을 때 덜 거추장스럽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도 편하다. 대신 구조상 강성이나 수리 편의성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다. 길이조절식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튼튼한 모델이 많다. 무게는 조금 더 나갈 수 있지만,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조절 감각을 익히기 쉽다.
재질도 봐야 한다. 알루미늄은 무게가 조금 있어도 충격에 강하고 가격대가 현실적이다. 카본은 가볍고 피로감이 덜하지만 강한 측면 충격에는 신경을 써야 한다. 기록 욕심이 있고 장거리 산행을 자주 간다면 가벼운 장비가 분명 이점이 있다. 다만 바위 많은 코스에서 거칠게 쓰는 편이라면 내구성도 같이 봐야 한다.
기록을 보면 등산스틱의 역할이 더 선명해진다
등산스틱을 제대로 쓰면 기록에서 몇 가지 변화가 보인다. 첫째, 하산 페이스가 덜 흔들린다. 둘째, 후반부 심박 상승이 완만해지는 경우가 있다. 셋째, 다음 날 피로감이 줄어드는 사람이 많다. 이건 단순히 빨리 걷는 문제와 다르다. 몸을 덜 망가뜨리면서 같은 거리를 소화하는 쪽에 가깝다.
스포츠 기록으로 비유하면, 등산스틱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장비라기보다 수비 안정감을 높이는 장비다. 눈에 확 튀지는 않는데 실점 가능성을 줄인다. 산에서는 그 실점이 미끄러짐, 무릎 통증,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다.
실제로 같은 8km 코스라도 누적 고도 300m와 800m는 완전히 다른 경기다. 거리만 보고 난이도를 판단하면 착각하기 쉽다. 등산스틱은 특히 누적 고도가 크고, 하산 경사가 길고, 노면이 불규칙한 코스에서 존재감이 커진다.
처음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비싼 모델보다 리듬이다
처음부터 최고가 등산스틱을 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손목 스트랩을 제대로 걸고, 발과 반대쪽 스틱이 같이 나가는 리듬을 익히는 것이다. 오른발이 나갈 때 왼쪽 스틱, 왼발이 나갈 때 오른쪽 스틱이 자연스럽게 찍히면 보행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스틱을 너무 앞에 찍으면 몸이 뒤로 밀리고, 너무 가까이 찍으면 추진력이 약하다. 흙길에서는 살짝 박히는 느낌이 좋고, 바위길에서는 팁이 미끄러지지 않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 소리만 크게 내며 찍는 것보다 조용하고 일정하게 쓰는 사람이 보통 더 안정적이다.
개인적으로 등산스틱은 체력을 대신해주는 장비라기보다, 가진 체력을 오래 쓰게 해주는 장비에 가깝다고 본다. 기록을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같은 코스를 스틱 유무로 나눠 걸어보면 재미있다. 평균 속도보다 후반 페이스, 하산 시간, 다음 날 다리 상태를 같이 보면 등산스틱의 진짜 가치가 꽤 선명하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