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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팬들이 짐머맨을 ‘미스터 내셔널’이라 부르는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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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팬들이 짐머맨을 ‘미스터 내셔널’이라 부르는 진짜 이야기

얼마 전 워싱턴 내셔널스의 2019년 월드시리즈 장면을 다시 보다가 라이언 짐머맨 이름에서 한참 멈췄다. 스타는 많았다. 셔저, 스트라스버그, 렌던, 소토처럼 더 화려하게 조명받은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의 시간표를 길게 펼쳐놓으면, 짐머맨만큼 워싱턴이라는 팀의 표정과 같이 늙어간 선수는 드물다.

기록만 놓고 보면 통산 타율 .277, 284홈런, 1,061타점, OPS .816이다.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명예의 전당을 바로 떠올릴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 기록이 재미있는 이유는 숫자의 크기만이 아니라 숫자가 놓인 자리 때문이다. 짐머맨의 숫자는 워싱턴 내셔널스가 막 새 도시에서 뿌리를 내리던 시절부터 우승팀이 되는 순간까지 이어진, 꽤 긴 문장 같은 기록이다.

첫 지명자의 무게를 안고 시작한 선수

짐머맨은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워싱턴에 지명됐다. 이게 그냥 높은 순번이었다는 정도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셔널스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온 직후였고, 새 프랜차이즈가 ‘우리는 어떤 팀이 될 것인가’를 보여줘야 하던 시기였다. 그런 팀의 얼굴 후보로 뽑힌 선수가 바로 짐머맨이었다.

데뷔도 빨랐다. 2005년 9월 1일 빅리그에 올라왔고, 2006년에는 곧바로 157경기에 나섰다. 신인 시즌 성적은 타율 .287, 20홈런, 110타점. 21세 선수에게 이 정도 생산력은 팀이 마음 놓고 중심에 세울 만한 신호였다. 신인왕 투표에서 2위에 오른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사실 초반의 짐머맨은 ‘장타력 있는 3루수’라는 말보다 수비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선수였다. 2007년에는 162경기를 모두 뛰었고, 24홈런에 91타점을 올렸다. 팀 성적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매일 라인업에 있는 젊은 3루수는 팬들에게 꽤 중요한 안정감이었다. 약한 팀을 보는 팬에게도 매일 확인할 이유가 필요한데, 짐머맨은 그 역할을 했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한 전성기

짐머맨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2009년은 빼기 어렵다. 그해 그는 타율 .292, 33홈런, 106타점, OPS .888을 기록했고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동시에 가져갔다.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3루수로서 가장 균형 잡힌 시즌이었다. 당시 워싱턴은 강팀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지만, 짐머맨 개인의 완성도는 이미 리그 상위권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의 커리어가 한 가지 모양으로만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깨 문제와 부상이 쌓이면서 3루에서 1루로 이동했고, 수비 가치가 줄어든 만큼 타격으로 더 버텨야 했다. 보통 이런 전환은 선수의 평가를 흔든다. 그런데 짐머맨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2017년에는 타율 .303, 36홈런, 108타점, OPS .930을 찍었다. 30대 중반을 앞둔 타자가 커리어 하이급 장타 시즌을 만든 셈이다.

  • 통산 1,846안타는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상징성이 큰 누적 기록이다.
  • 284홈런은 워싱턴 팬들이 짐머맨을 장기적으로 기억하는 가장 직관적인 숫자다.
  • 통산 WAR 40.1은 올스타급 커리어가 한 팀에서 오래 축적됐다는 의미에 가깝다.
  • 2회 올스타, 골드글러브 1회, 실버슬러거 2회는 그의 고점이 단순한 인기만은 아니었다는 근거다.

2019년 월드시리즈가 특별했던 이유

2019년 워싱턴의 우승은 짐머맨 이야기에서 거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우승의 중심에는 강력한 선발진과 후안 소토의 폭발력, 앤서니 렌던의 침착한 타격이 있었다. 그런데 짐머맨에게 그 월드시리즈는 조금 달랐다. 그는 팀의 첫 드래프트 스타였고, 하위권 시절을 버틴 선수였고, 내셔널스 파크의 시간 대부분을 몸으로 통과한 선수였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짐머맨이 홈런을 쳤다는 사실은 그래서 숫자 이상의 장면으로 남는다. 워싱턴 내셔널스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홈런. 이 한 줄은 통산 홈런 284개 중 하나지만,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어느 선수의 커리어에는 대표 사진처럼 남는 기록이 있는데, 짐머맨에게는 이 홈런이 그런 장면이다.

솔직히 2019년의 짐머맨은 팀 내 최고 타자가 아니었다. 정규시즌도 부상으로 52경기 출전에 그쳤고, 성적만 보면 전성기와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스포츠는 늘 현재 실력 순서대로만 감동을 배분하지 않는다. 오래 버틴 선수가 가장 큰 무대에서 팀 역사의 첫 장면을 만든다. 이런 순간 때문에 누적 기록을 계속 따라가게 된다.

‘미스터 내셔널’이라는 별명의 진짜 의미

짐머맨의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건 ‘미스터 내셔널’이다. 단순히 오래 뛰어서 붙은 별명이라기엔 조금 부족하다. 그는 워싱턴에서만 16시즌을 뛰었다. 2005년 데뷔부터 2021년 마지막 경기까지, 유니폼을 바꾸지 않았다. 요즘 MLB에서 한 팀 커리어는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FA 시장, 트레이드, 연봉 구조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래서 짐머맨의 가치는 기록지 밖에서도 생긴다. 팀이 약할 때 중심타선을 지켰고, 팀이 강해질 때는 베테랑으로 자리를 바꿨고, 우승할 때는 상징적인 한 방을 남겼다. 이 흐름이 깔려 있으니 통산 OPS .816이라는 숫자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리그를 지배한 괴물 타자라기보다는, 한 프랜차이즈가 성장하는 동안 계속 기준점으로 남아 있던 선수다.

기록 팬 입장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

짐머맨을 볼 때 개인적으로 가장 끌리는 부분은 ‘압도’보다 ‘지속’이다. 40.1 WAR, 1,846안타, 1,061타점은 매년 MVP 후보로 달린 선수의 누적이라기보다는 좋은 시즌과 부상, 포지션 전환, 팀 상황 변화가 섞인 결과물이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현실적이다. 커리어는 늘 매끈하게 올라가는 선이 아니다. 짐머맨의 기록은 굴곡이 많은데도 끝까지 하나의 팀 이름 아래에 남았다.

팬들이 어떤 선수를 오래 기억하는 방식도 여기서 갈린다. 최고 기록 보유자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선수에게 밀릴 수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처음 뿌리내릴 때 같이 서 있었던 선수, 그리고 우승 장면까지 함께한 선수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짐머맨이 워싱턴에서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나는 짐머맨을 떠올릴 때 ‘가장 위대한 3루수’ 같은 거대한 수식어보다, 한 팀의 역사책을 펼쳤을 때 첫 장부터 마지막 축제까지 계속 등장하는 이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록은 꽤 단단하고, 장면은 더 오래 남았다. 그런 선수가 있다는 건 팬에게도 팀에게도 생각보다 큰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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