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과 벤투의 4년 재계약, 그때 놓친 시간을 다시 읽어봤더니

얼마 전 대표팀 감독 선임 이야기가 다시 뜨거워지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도 2022년 겨울의 벤투가 자꾸 떠올랐다. 브라질전 1-4 패배 직후라 결과만 보면 아쉬운 밤이었는데, 팬들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건 스코어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퇴장 방식이었다. 4년 4개월을 끌고 온 팀이 월드컵 16강까지 갔고, 바로 그 순간 재계약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말이다.
키워드는 명확했다. 정몽규 회장, 벤투, 4년 재계약, 그리고 결렬. 겉으로는 계약 기간 차이였지만, 기록을 따라가 보면 이건 단순한 조건 싸움만은 아니었다. 한국 축구가 장기 프로젝트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에 가까웠다.
벤투의 4년 4개월은 기록으로도 이례적이었다
벤투 감독은 2018년 8월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카타르 월드컵까지 약 4년 4개월. 한국 축구 대표팀 단일 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장수 감독이었다. 사실 이 숫자 하나만 봐도 꽤 낯설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사이클을 온전히 맡기는 문화가 강한 편이 아니었고, 여론이 흔들리면 감독 교체 압박도 빨리 커지는 쪽이었다.
그런데 벤투는 달랐다. 빌드업 축구를 두고 비판이 많았고, 특정 선수 기용을 놓고 답답하다는 말도 꾸준했다. 근데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은 포르투갈을 2-1로 잡고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2010 남아공 이후 12년 만의 원정 월드컵 16강이었다. 기록만 놓고 보면 성과는 분명했다.
- 부임 시점: 2018년 8월
- 재임 기간: 약 4년 4개월
- 2022 카타르 월드컵 성적: 16강
- 조별리그 주요 결과: 포르투갈전 2-1 승리
- 16강 결과: 브라질전 1-4 패배
스포츠에서 긴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선수단 안에 언어가 생기고, 전술의 우선순위가 생기고, 경기 중 흔들릴 때 돌아갈 기준점이 생긴다. 벤투호의 가장 큰 기록은 16강이라는 결과이기도 했지만, 4년 넘게 같은 방향을 밀어붙였다는 과정 자체이기도 했다.
재계약 협상은 왜 4년에서 멈췄나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벤투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이어지는 4년 계약을 원했다.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안컵까지 계약한 뒤 성적에 따라 연장하는 1+3년 형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 모두 이해 못 할 카드는 아니었다. 벤투 입장에서는 월드컵 사이클 전체를 잡고 싶었을 것이다. 대표팀 축구에서 1년은 짧다. 특히 아시안컵 하나로 평가받는 구조라면 감독이 장기 설계를 하기 어렵다.
협회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였을 수 있다. 월드컵 전인 2022년 9월에 이미 재계약 여부가 가닥 잡혔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 시점에는 16강 진출이라는 성과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여론도 지금처럼 벤투를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러니 정몽규 회장과 협회가 4년 보장 대신 조건부 연장을 택한 흐름은 행정적으로는 설명이 된다.
그런데 스포츠 행정에서 설명 가능한 선택이 늘 좋은 선택은 아니다. 특히 대표팀 감독 계약은 단순히 급여와 기간의 문제가 아니다. 4년을 보장한다는 건 감독에게 권한을 준다는 뜻이고, 선수단에는 다음 대회까지 이어지는 기준을 준다는 뜻이다. 벤투가 원한 4년은 돈보다 시간의 권한에 가까웠다고 본다.
정몽규 회장 체제의 판단은 성과 이후 더 크게 보였다
솔직히 벤투 재계약 결렬이 더 크게 느껴진 이유는 타이밍 때문이다. 만약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면 분위기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16강에 갔다. 손흥민, 황희찬, 김영권, 조규성 같은 선수들이 각자의 장면을 만들었고, 팀은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역전 골을 만들었다. 그 직후 감독이 떠난다고 하니 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정몽규 회장 이름이 계속 같이 언급된 것도 그래서다. 협회 최고 책임자가 장기 프로젝트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협상이 회장 개인의 선택 하나로만 굴러가진 않는다. 예산, 후원, 내부 평가, 차기 대회 일정이 얽힌다. 그래도 대표팀 감독 재계약 같은 큰 의사결정에서는 회장의 철학이 보일 수밖에 없다.
더 흥미로운 비교는 이후에 나왔다. 2024년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2027년까지 계약이 보장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많은 팬들이 다시 벤투를 떠올렸다. 벤투에게는 2026년까지의 시간을 주지 않았는데, 다른 감독에게는 더 긴 시간을 줄 수 있었느냐는 반응이었다. 이 비교는 감정론만은 아니다. 같은 협회가 장기 계약을 어떤 기준으로 허용하는지 묻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숫자 뒤에 남은 건 한국 축구의 습관이었다
벤투호를 평가할 때 16강만 말하면 조금 부족하다. 4년 4개월이라는 기간, 2022년 9월 재계약 판단, 1+3년 제안, 2026년까지의 4년 요구. 이 숫자들이 모이면 한국 축구가 장기성을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보인다. 당장의 대회 성적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중간 평가 장치를 넣고 싶어 한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감독이 팀을 바꾸려면 중간 평가보다 더 긴 신뢰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사실 벤투 축구가 완벽했던 건 아니다. 빌드업이 막힐 때 답답했고, 플랜B 논쟁도 있었다. 아시안컵까지 갔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월드컵에서 한 번 증명한 감독에게 다음 사이클을 맡겨볼 수 있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대표팀이 감독 교체 때마다 방향을 새로 세우는 비용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스포츠 팬으로서 이 장면이 오래 남는 건, 결과보다 흐름이 끊긴 느낌 때문이다. 좋은 팀은 대회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패한 경기와 비판받은 선택까지 쌓이면서 팀의 언어가 된다. 벤투의 4년 재계약 결렬은 한 감독과 협회의 이별이었지만, 동시에 한국 축구가 장기 프로젝트 앞에서 얼마나 용감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건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4년을 한 번 더 줬다면 어떤 대표팀을 봤을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