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팀 ERA 1위, 숫자를 따라가 보니 보이는 진짜 흐름

얼마 전 KBO 기록실 순위표를 보다가 두산 이름이 맨 위에 있는 걸 보고 잠깐 멈췄다. 팀 순위 1위가 아니라 팀 평균자책점, 그러니까 ERA 1위였다. 경기 결과만 훑으면 그냥 “투수들이 잘 던졌네” 정도로 지나갈 수 있는데, 기록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1위는 꽤 흥미롭다. 두산은 95경기 기준 팀 ERA 3.85로 리그 1위에 올라 있고, 2위 삼성의 4.06과는 0.21 차이다. 아주 압도적인 격차는 아니지만, 한 시즌 중반 이후에 이 정도 차이를 유지한다는 건 단순한 반짝 흐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ERA 3.85가 말해주는 두산 마운드의 체질
팀 ERA 3.85라는 숫자는 9이닝당 자책점을 4점 아래로 묶고 있다는 뜻이다. 2026시즌 리그 전체 팀 ERA가 4점대 중반 흐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산 마운드는 평균보다 확실히 낮은 실점 구조를 만들고 있다. 특히 845와 3분의 2이닝 동안 자책점 362점, 피홈런 70개, 탈삼진 794개라는 기록 조합이 눈에 들어온다. 실점 억제만 되는 팀이 아니라, 필요할 때 타자를 직접 잡아낼 수 있는 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더 재미있는 건 두산이 리그 5위권 승률을 기록하면서도 ERA에서는 1위라는 점이다. 보통 팬들은 순위표와 투수 지표가 같이 간다고 느끼기 쉬운데, 실제 시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마운드가 잘 버텨도 타선 지원, 수비 집중력, 불펜 소모 타이밍에 따라 승패는 달라진다. 그래서 두산의 ERA 1위는 “강팀이라서 당연히 좋은 기록”이라기보다, 순위 경쟁 속에서 팀을 버티게 하는 가장 뚜렷한 기반에 가깝다.
선발진이 만든 안정감, 불펜이 지킨 온도
두산 기록에서 먼저 봐야 할 건 퀄리티스타트다. KBO 팀 투수 세부 기록 기준 두산은 QS 42개를 기록했다. 롯데와 함께 리그 최상위권이다. 선발이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로 버텨주는 경기가 많다는 건 불펜 운영의 출발점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매일 4회, 5회부터 불펜이 뛰어나오면 아무리 좋은 필승조도 결국 지친다. 반대로 선발이 계산 가능한 이닝을 만들어주면 불펜은 자기 역할에 가까운 상황에서 등판할 수 있다.
홀드 38개, 세이브 21개라는 숫자는 아주 화려한 1위 지표는 아니지만, 팀 ERA 1위와 함께 보면 의미가 생긴다. 두산은 대량 실점으로 무너지는 경기를 줄였고, 경기 후반에도 완전히 흐름을 내주는 빈도를 낮췄다. 물론 블론세이브 12개가 있어서 완벽한 불펜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근데 이 부분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시즌 내내 흔들림 없는 불펜은 거의 없다. 중요한 건 흔들린 뒤에도 팀 평균 실점을 다시 낮추는 복원력인데, 두산은 그 복원력이 꽤 좋았다.
최민석과 곽빈, 기록표 위의 두산 이름
개인 기록을 보면 두산의 팀 ERA 1위가 더 선명해진다. KBO 투수 기록에서 최민석은 ERA 2점대 초반으로 최상단에 있고, 곽빈도 2점대 후반 흐름으로 상위권에 있다. 한 팀에서 규정 이닝급 선발 두 명이 평균자책점 상위권에 같이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에이스 한 명이 끌고 가는 구조와 다르게, 로테이션 안에서 두 번의 안정 구간이 반복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곽빈은 탈삼진 능력에서 두산 선발진의 색깔을 보여준다. 9이닝당 탈삼진이 두 자릿수에 가까운 수준이면, 위기에서 수비에만 기대지 않고 직접 카운트를 끝낼 수 있다. 최민석은 낮은 피OPS와 안정적인 피안타 흐름이 돋보인다. 스타일은 달라도 결과는 비슷하다. 출루를 억제하고, 장타를 최소화하고, 경기 초반을 길게 끌고 간다. 이런 선발 두 축이 있으면 팀 전체 ERA는 생각보다 단단해진다.
지난 시즌의 흔들림과 비교하면 더 크게 보인다
사실 두산 마운드는 늘 안정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2024년에는 선발진 붕괴 이야기가 자주 나왔고, 특정 월간 구간에서는 선발 ERA가 5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때의 두산은 선발이 짧게 내려가고 불펜 부담이 커지면서 경기 운영이 꼬이는 장면이 많았다. 그래서 2026년의 ERA 1위는 단순한 순위표 이벤트가 아니라 체질 변화처럼 보인다.
비교 지점은 명확하다. 예전의 불안했던 구간에서는 외국인 투수 의존도, 국내 선발의 기복, 불펜 연투 부담이 한꺼번에 겹쳤다. 지금은 선발 QS가 쌓이고, 피홈런도 70개 수준으로 관리되고, 탈삼진은 794개까지 올라와 있다. 맞혀 잡는 팀이면서 동시에 삼진을 잡을 수 있는 팀. 이 조합은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꽤 무섭다. 단기전에서는 한 이닝의 볼넷, 한 방의 홈런이 흐름을 바꾸는데, 두산은 적어도 기록상 그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ERA 1위가 순위 경쟁에 던지는 신호
팀 ERA 1위는 예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두산이 앞으로 순위를 더 끌어올리려면 타선의 득점 생산성이 붙어야 하지만, 이미 마운드가 버티는 팀은 연패가 길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3연전에서 한 경기를 크게 내주더라도 다음 선발이 다시 경기 균형을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팬 입장에서도 체감이 크다. “오늘도 초반에 터지면 끝”이라는 불안보다 “일단 6회까지는 붙어볼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
다만 변수도 있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이닝 부담은 숫자로 쌓인다. 선발이 계속 버텨줘도 피로는 사라지지 않고, 불펜은 한두 명이 흔들리면 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두산의 ERA 1위가 끝까지 유지되려면 지금의 좋은 기록을 자랑하는 것보다 로테이션 휴식, 불펜 역할 분산, 수비 집중력 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자료는 KBO 공식 기록실의 팀 투수 기록과 선수 투수 기록을 기준으로 봤다. 팀 기록에서는 두산이 95경기 ERA 3.85로 1위, 삼성은 4.06으로 2위에 올라 있다. 선수 기록에서는 최민석과 곽빈이 평균자책점 상위권에 나란히 자리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차갑지만, 그 숫자가 쌓인 방식은 꽤 뜨겁다. 두산의 2026년은 화려한 폭발력보다 버티는 힘이 먼저 보이는 시즌이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팀이 가을 야구에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 자료: KBO 팀 투수 기록
- 자료: KBO 선수 투수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