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온 기록을 따라가 봤더니, 숫자보다 먼저 보인 건 복귀의 흐름이었다

얼마 전 최가온의 경기 기록을 다시 훑어보다가, 단순히 어린 천재라는 표현만으로는 이 선수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점수 하나로 끝나는 종목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점프 높이, 회전 방향, 착지 안정성, 부상 이후의 리듬까지 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거든요.
14세 X Games 우승이 던진 첫 신호
최가온이라는 이름이 세계 무대에 강하게 찍힌 순간은 2023년 X Games 애스펀 여자 스노보드 슈퍼파이프였습니다. 당시 나이는 14세 3개월. 이 우승으로 그는 여자 슈퍼파이프 최연소 챔피언 기록을 갈아치웠고, 한국 선수로는 처음 X Games 금메달을 따낸 선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한 나이 기록이 아닙니다. 루키가 결승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큽니다. 하프파이프는 한 번 삐끗하면 다음 런 전체의 흐름이 무너지는 종목인데, 최가온은 720, 900 계열 기술을 섞으면서 난도와 완성도를 같이 끌어올렸습니다. 어린 선수가 과감함만 앞세운 게 아니라, 점수판을 읽고 자기 런을 조정했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월드컵 기록으로 보면 더 선명하다
FIS 기록 기준으로 최가온은 2023년 12월 미국 코퍼마운틴 월드컵에서 데뷔전 우승을 해냈습니다. 이건 꽤 큰 의미가 있습니다. 초청 대회 성격이 강한 X Games와 달리 월드컵은 시즌 전체 경쟁력과 랭킹 흐름을 보는 무대입니다. 첫 출전 우승은 반짝 결과라기보다 국제 경쟁 구도에 바로 들어왔다는 신호였습니다.
- 2008년 11월 3일 출생
- 2022년 FIS 주니어 세계선수권 하프파이프 우승
- 2023년 X Games 애스펀 슈퍼파이프 우승
- 2023년 12월 코퍼마운틴 월드컵 우승
- 2025년 12월 장자커우 월드컵 92.75점 우승
- 2025년 12월 코퍼마운틴 월드컵 94.50점 우승
- 2026년 1월 락스 월드컵 우승
-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90.25점 금메달
특히 2025-26시즌 흐름이 좋았습니다. 장자커우에서 92.75점, 코퍼마운틴에서 94.50점을 찍었다는 건 기술 난도만 높은 선수가 아니라 심판에게 안정감까지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하프파이프에서 90점대는 단순히 한두 기술이 좋다고 나오는 점수가 아닙니다. 전체 런의 구성, 양방향 회전, 착지, 속도 유지가 같이 맞아야 합니다.
부상 공백이 오히려 기록의 무게를 키웠다
사실 최가온의 흐름에서 빼놓기 어려운 장면은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불참입니다. 당시 그는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부상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선수 커리어로 보면 이 시기가 꽤 중요한 분기점처럼 보입니다.
어린 나이에 일찍 큰 타이틀을 딴 선수는 다음 과제가 더 어렵습니다. 잘하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다치고 돌아와도 같은 레벨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진짜 시험이거든요. 최가온은 2025-26시즌 월드컵 연속 우승 흐름으로 그 질문에 답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공백 이후 점수가 더 단단해졌고, 경기 운영도 더 성숙해졌습니다.
클로이 김과의 비교가 흥미로운 이유
최가온 이야기에 클로이 김을 빼기는 어렵습니다. 클로이 김은 2018 평창, 2022 베이징 올림픽을 연속 제패한 여자 하프파이프의 기준점 같은 선수입니다. 그런데 최가온은 어린 시절부터 클로이 김에게 영향을 받았고, 미국 매머드 마운틴 훈련 환경에서도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단순한 라이벌 구도보다 더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멘토의 시대가 있고, 그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가 같은 종목의 정상에서 부딪치는 그림입니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에서 최가온이 90.25점으로 금메달을 따고, 클로이 김이 은메달권에 머문 장면은 스포츠가 세대를 바꾸는 방식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점수보다 인상적인 건 안정감
최가온의 장점은 기술 이름만 나열하면 조금 건조해집니다. 실제로 더 눈에 띄는 건 런 전체의 균형입니다. 하프파이프는 첫 벽에서 크게 뜨고도 마지막 벽까지 속도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초반에 욕심내면 후반 착지가 무너지고, 안정만 챙기면 점수가 안 나옵니다. 최가온은 이 사이에서 꽤 영리한 선택을 합니다.
솔직히 기록 팬 입장에서 가장 재미있는 선수는 이미 완성된 선수보다 업데이트가 보이는 선수입니다. 최가온은 14세 X Games 우승, 부상 공백, 월드컵 고득점, 올림픽 금메달까지 흐름이 끊긴 듯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도 단순합니다. 다음 시즌에 더 높은 난도의 기술을 넣을지, 아니면 지금의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평균 점수를 끌어올릴지입니다. 최가온의 기록표는 벌써 화려하지만, 숫자 사이의 여백은 아직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