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서민규를 기록표로 따라가봤더니, 한국 피겨의 다음 장면이 보였다

숫자부터 눈에 들어온 두 이름
얼마 전 피겨 기록을 다시 훑다가 이해인 서민규라는 두 이름에서 시선이 오래 멈췄다. 둘 다 한국 피겨가 자주 이야기해 온 ‘가능성’의 얼굴이지만, 기록표 안에서 보면 느낌이 꽤 다르다. 이해인은 이미 큰 무대에서 흔들림과 회복을 모두 겪은 시니어 선수이고, 서민규는 주니어 남자 싱글에서 한국 피겨의 기준선을 새로 밀어 올리는 선수다.
이해인의 개인 최고 총점은 ISU 기준 225.47점이다. 2023 월드 팀 트로피에서 나온 점수이고, 쇼트 76.90점과 프리 148.57점도 그 대회에서 개인 최고로 남아 있다. 이 숫자는 그냥 ‘잘했다’ 정도가 아니다. 한국 여자 싱글이 세계 상위권과 같은 경기 언어로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기록이다.
서민규 쪽은 상승 곡선이 더 노골적이다. 2025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총점 255.91점, 프리 171.09점을 찍었다. 특히 프리에서 기술점수 91.64점, 구성점수 79.45점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점프만 몰아붙인 점수가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의 완성도까지 같이 올라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해인, 기록보다 더 복잡한 복귀의 리듬
이해인을 볼 때 흥미로운 건 최고점과 최근 흐름 사이의 간격이다. 2023년 사대륙선수권 우승, 세계선수권 은메달, 월드 팀 트로피 225.47점까지 이어졌던 흐름은 정말 강했다. 그때의 이해인은 기술 요소를 버티는 선수라기보다, 후반부까지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끌고 가는 선수에 가까웠다.
그런데 피겨는 한 시즌이 끝나면 숫자가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컨디션, 구성, 심리, 판정 경향이 전부 바뀐다. 이해인은 복귀 이후 2025 동계체전에서 총점 195.49점으로 우승했고, 2025-2026 시즌 챌린저 시리즈에서도 국제대회 입상 흐름을 만들었다. 이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는 시즌 베스트 210.56점으로 8위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첫 올림픽에서 톱10은 꽤 큰 의미다.
솔직히 이해인의 관전 포인트는 ‘다시 예전 최고점까지 가느냐’만으로 보면 조금 좁다. 225점대 기록은 분명 강력한 기준이지만, 지금 더 중요한 건 200점 안팎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힘이다. 여자 싱글은 트리플 점프의 회전 판정, 연결 동작의 질, 후반 체력에서 점수가 크게 갈린다. 쇼트에서 70점대 초중반, 프리에서 135점 이상을 자주 만들 수 있느냐가 다시 메달권 문을 두드리는 조건이 된다.
서민규, 주니어 무대에서 이미 다른 계산을 시작했다
서민규의 기록은 남자 싱글 팬 입장에서 꽤 짜릿하다. 2008년생인 그는 2024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 2025 준우승, 2026 준우승으로 3년 연속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이 흐름 자체가 역사에 가깝다. 한 번 반짝한 게 아니라, 여러 시즌에 걸쳐 상위권을 유지했다는 점이 훨씬 크다.
2025-2026 시즌만 놓고 봐도 내용이 좋다.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243.27점으로 우승했고, 5차 대회에서는 236.45점으로 또 우승했다. 그리고 파이널에서 255.91점까지 끌어올렸다. 236점, 243점, 255점. 숫자가 계단처럼 올라간다. 이건 시즌 설계가 잘 맞았다는 신호다.
특히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 171.09점은 그냥 높은 점수가 아니다. 쿼드러플 살코와 다수의 트리플 점프를 묶으면서 기술점수 90점대를 넘긴 경기였다. 남자 싱글에서 시니어로 넘어갈 때 가장 큰 벽은 쿼드러플 점프의 수와 성공률인데, 서민규는 이미 그 문 앞에 서 있다. 근데 여기서 성급하게 “시니어에서도 바로 통한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시니어 남자 싱글은 쿼드 2~4개 구성이 기본값처럼 굴러가는 무대라, 점프 난도와 체력 배분을 동시에 올려야 한다.
둘을 같이 보면 한국 피겨의 지형이 달라진다
이해인 서민규를 함께 놓고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둘 다 단순히 ‘국내에서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국제 기록표에서 설명 가능한 성취를 남겼다. 이해인은 여자 싱글에서 225점대 개인 최고와 세계선수권 메달 경험을 갖고 있고, 서민규는 주니어 남자 싱글에서 파이널 우승과 세계주니어 3년 연속 입상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 이해인: ISU 개인 최고 총점 225.47점, 2023 세계선수권 은메달, 2026 올림픽 톱10 흐름
- 서민규: ISU 개인 최고 총점 255.91점, 2025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세계주니어 3년 연속 입상
- 공통점: 한 경기의 화제성이 아니라 여러 대회에서 누적된 경쟁력
차이도 분명하다. 이해인은 이미 시니어 무대의 압박, 대표 선발전의 변수, 큰 대회 운영을 경험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과제는 최고점 재현보다 안정적인 상위권 점수대 회복에 가깝다. 반대로 서민규는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는 기록이다. 점수 자체도 중요하지만, 시니어 전환 과정에서 쿼드 구성과 프로그램 완성도를 어떻게 같이 키우느냐가 더 큰 질문이다.
팬 입장에서 더 재미있는 지점
피겨 기록은 야구의 타율이나 축구의 득점처럼 단순히 숫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200점이라도 쇼트에서 벌어둔 점수인지, 프리에서 뒤집은 점수인지, 점프 가산점으로 만든 점수인지, 구성점수로 버틴 점수인지에 따라 경기의 표정이 완전히 다르다. 이해인은 경기 전체의 감정선을 끌고 가는 장점이 있고, 서민규는 점프 난도와 프로그램 흐름이 같이 올라오는 장면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두 선수를 볼 때는 순위표만 보고 지나치기 아깝다. 이해인의 쇼트 첫 점프 성공 뒤 표정, 서민규의 프리 후반 점프 배치, 회전 판정 뒤 기술점수 박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보면 경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사실 팬이 기록을 챙겨본다는 건 그런 재미다. 점수 뒤에 숨어 있는 선택과 버티는 힘을 읽는 일이다.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
이해인에게는 다시 210점 이상을 꾸준히 찍는 시즌이 중요해 보인다. 이미 225점대까지 간 경험이 있으니, 관건은 최고점의 기억을 현재 경기력으로 얼마나 자주 불러오느냐다. 쇼트에서 실수를 줄이고 프리 후반 점프의 회전 질을 안정시키면, 국제대회 톱10 바깥에서 맴돌 선수는 아니다.
서민규는 조금 다른 기대를 받는다. 주니어 기록만 놓고 보면 이미 한국 남자 피겨의 귀한 자산이다. 다만 시니어 무대는 기술 난도가 훨씬 거칠고, 프로그램 구성도 더 촘촘하다. 지금의 장점인 부드러운 스케이팅과 점프 성공률을 잃지 않으면서 쿼드 수를 늘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균형을 잡는 순간, 한국 남자 싱글의 다음 대표 서사가 꽤 선명해질 수 있다.
이해인 서민규라는 키워드는 그래서 단순한 검색어가 아니다. 한쪽은 다시 올라서는 선수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더 큰 무대로 넘어가려는 선수의 이야기다. 기록표를 오래 보고 있으면 결국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 피겨는 이제 한 명의 스타만 바라보는 시기를 지나, 서로 다른 궤도의 선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리는 단계에 들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