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정말 33세에 마지막 월드컵을 뛰고 있을까, 기록을 따라가 보니 보이는 이야기

요즘 손흥민 경기를 보면 나이보다 시간이 먼저 보인다
얼마 전 손흥민의 대표팀 경기를 보는데, 이상하게 스프린트 하나보다 화면에 잡힌 표정이 더 오래 남았다. 예전에는 공을 잡는 순간 ‘저기서 감아 차겠네’라는 기대가 먼저 왔다면, 이제는 ‘이 장면을 월드컵에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같이 따라온다. 손흥민은 1992년 7월생이다. 2026년 월드컵 시점에는 만 33세, 대회가 끝난 직후 34세가 된다. 축구에서 33세는 은퇴 직전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월드컵이라는 4년 단위 무대에서는 꽤 무거운 숫자다.
특히 손흥민은 단순히 오래 뛴 선수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공격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선수에 가깝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때는 막내급 에이스였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독일전 쐐기골의 주인공이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안와골절 수술 뒤 마스크를 쓰고 뛰었고, 포르투갈전 황희찬 결승골을 만든 패스는 아직도 대표팀 월드컵 서사에서 빼기 어려운 장면이다.
33세 월드컵, 숫자로 보면 마지막 가능성이 커진다
손흥민에게 2026년 월드컵이 ‘마지막일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감성이 아니라 계산 때문이다. 다음 월드컵은 2030년이다. 그때 손흥민은 만 37세다. 공격수, 그것도 폭발적인 가속과 방향 전환, 뒷공간 침투를 큰 무기로 삼아온 선수에게 37세 월드컵은 쉬운 시나리오가 아니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30대 중후반에도 월드컵에 나서는 공격수들이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37세에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뛰었고, 리오넬 메시는 35세에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루카 모드리치처럼 37세에도 경기 템포를 조율한 사례도 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의 공통점은 역할 변화였다. 전성기처럼 모든 장면을 속도로 해결하기보다, 위치 선정과 판단, 킥 퀄리티, 경기 운영으로 영향력을 유지했다.
손흥민도 이미 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토트넘과 대표팀에서 예전처럼 왼쪽 터치라인에 붙어 90분 내내 질주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선수는 아니다. 중앙으로 들어와 마무리하거나, 압박의 출발점이 되거나, 후배 공격수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플레이가 많아졌다. 그래서 2026년은 ‘마지막 월드컵’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손흥민이 어떤 방식으로 늙어가는지를 확인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손흥민의 월드컵 기록은 이미 한국 축구의 기준점이다
손흥민은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선수로는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다. 2014년 알제리전에서 월드컵 첫 골을 넣었고, 2018년 멕시코전과 독일전에서 연속으로 골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득점보다 플레이메이킹에 가까운 장면으로 강하게 남았다. 월드컵 통산 득점만 놓고 봐도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앞쪽에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재미있는 건 손흥민의 월드컵 서사가 늘 팀 성적과 엇갈렸다는 점이다. 2014년에는 본인이 골을 넣었지만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8년에는 세계 챔피언 독일을 꺾는 역사적인 승리를 만들었지만 16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2022년에는 본인의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은 극적으로 16강에 갔다. 개인 기록, 팀 성적, 몸 상태가 한 번에 딱 맞아떨어진 월드컵은 아직 없었다고 봐도 된다.
- 2014년: 월드컵 첫 출전과 첫 득점, 하지만 팀은 조별리그 탈락
- 2018년: 멕시코전·독일전 득점, 독일전 승리의 상징
- 2022년: 부상 투혼, 포르투갈전 결정적 도움성 패스로 16강 진출 기여
- 2026년: 33세 에이스로 맞는 네 번째 월드컵 가능성
대표팀에서 손흥민의 의미는 골 수보다 크다
사실 손흥민을 이야기할 때 골만 세면 조금 억울하다. 대표팀에서 손흥민은 상대 수비 라인을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선수다. 이게 기록지에는 잘 안 남는다. 상대 풀백이 마음껏 올라오지 못하고, 센터백이 뒷공간을 의식하며, 수비형 미드필더가 커버 위치를 계속 계산하게 만든다. 그 덕분에 이강인, 황희찬, 조규성, 오현규 같은 선수들이 받는 공간의 질도 달라진다.
근데 월드컵에서는 이 효과가 더 크게 드러난다. 한국은 대부분의 강팀을 상대로 점유율을 압도하는 팀이 아니다. 결국 몇 번 안 오는 전환 상황에서 얼마나 날카롭게 찌르느냐가 중요하다. 손흥민은 그 몇 번의 장면을 진짜 기회처럼 보이게 만드는 선수다. 수비수가 이미 알고도 불안해하는 유형이라는 점에서, 나이가 들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
다만 체력 관리와 역할 조정은 분명 필요하다. 33세 손흥민에게 24세 손흥민의 압박량과 스프린트 빈도를 그대로 기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중요한 건 언제 뛰고, 어디서 쉬고, 어느 순간에 최대 속도를 꺼내느냐다. 대표팀이 손흥민을 잘 쓰려면 그를 ‘무조건 해결사’로만 두기보다, 결정적인 20분과 결정적인 3초를 살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일 수도 있어서 더 기록보다 장면을 보게 된다
손흥민에게 2026년 월드컵이 진짜 마지막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본인이 2030년까지 몸을 유지할 수도 있고, 역할을 바꿔 대표팀에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팬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33세 월드컵은 마지막 전성기 버전의 손흥민을 볼 가능성이 높은 무대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을 볼 때는 득점 여부만큼이나 움직임의 선택을 보고 싶다. 어느 타이밍에 스프린트를 아끼는지, 언제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는지, 후배들에게 어떤 공간을 만들어주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손흥민의 월드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늘 감정이 앞선 장면들이다. 알제리전 만회골 뒤의 눈물, 독일전 마지막 질주, 포르투갈전에서 끝까지 고개를 들고 패스 길을 찾던 모습. 그런데 그 감정 뒤에는 늘 숫자가 있었다. 출전 시간, 슈팅 수, 득점, 도움, 스프린트, 나이. 2026년의 손흥민은 그 숫자들이 한 선수의 마지막 페이지인지, 아니면 또 다른 역할의 시작인지 보여주는 시험대에 서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골 장면만 기다리기보다, 손흥민이 경기 안에서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까지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