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생이 홍명보를 다시 불렀을 때, 책임 논란이 커진 진짜 이유

얼마 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다시 되짚어보다가, 이상하게 경기보다 절차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일 자체도 컸지만, 팬들이 더 날카롭게 반응한 지점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느 단계에서 책임지고 결정했느냐”였다. 그 중심에 이임생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 있었다.
승패보다 먼저 터진 절차의 문제
축구에서 감독 선임은 결국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첫 경기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불이 붙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대표팀은 몇 달 동안 정식 사령탑을 찾지 못했고, 임시 감독 체제로 A매치를 치렀다. 그 사이 후보군은 국내파와 외국인 지도자를 오갔고, 팬들은 적어도 명확한 선임 기준이 공개되기를 기다렸다.
문제는 막판 흐름이었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감독 후보를 논의하던 과정에서 정해성 위원장이 물러났고, 이후 이임생 기술총괄이 협상과 최종 조율의 전면에 섰다. 협회는 외국인 후보 면담도 진행했다고 설명했지만, 팬들이 체감한 발표는 꽤 갑작스러웠다. 울산 HD를 이끌던 홍명보 감독이 시즌 중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고, K리그 팬들 입장에서는 리그 운영의 신뢰까지 흔들린 사건이 됐다.
이임생에게 책임론이 집중된 이유
이임생 책임 논란은 단순히 “홍명보를 골랐다”는 데서 나온 게 아니다. 더 정확히는 절차의 빈칸을 누가 메웠는지, 그 권한이 어디서 왔는지가 불명확했다는 점이 컸다. 전력강화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후보를 압축하고 추천하는 구조였다면, 마지막 협상권과 결정권의 경계가 선명했어야 했다.
그런데 팬들이 본 장면은 달랐다. 이임생 기술총괄이 직접 홍명보 감독을 찾아가 설득했고, 기자회견에서는 “부탁했다”는 뉘앙스의 설명까지 나왔다. 솔직히 스포츠 행정에서 이런 표현은 위험하다. 감독 선임은 감정의 호소가 아니라 평가표, 인터뷰, 전술 방향, 계약 조건, 리스크 검토가 쌓여야 하는 자리다. ‘간청’이라는 인상이 남는 순간, 데이터보다 관계가 앞섰다는 의심이 생긴다.
- 클린스만 경질 이후 장기간 공석이 이어졌다.
- 전력강화위원회 내부 소통 논란이 외부로 드러났다.
- 박주호 위원의 문제 제기로 절차 투명성 논란이 커졌다.
- 울산 감독을 시즌 중 데려오며 K리그 구단과 팬의 반발을 불렀다.
- 문체부 감사에서 협회 운영 절차 문제가 지적됐다.
홍명보라는 이름이 논란을 더 키웠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에서 상징성이 큰 인물이다. 선수로는 A매치 136경기, 2002 월드컵 4강, FIFA 월드컵 브론즈볼까지 가진 이름이다. 지도자로도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울산의 K리그1 연속 우승이라는 성과가 있다. 숫자로만 보면 대표팀 후보군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상징성 때문에 검증은 더 촘촘했어야 했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조별리그 1무 2패로 물러난 경험이 있다. 이후 클럽에서 성과를 쌓았다고 해도, 대표팀은 완전히 다른 무대다. 리그처럼 매일 선수를 훈련시키는 환경이 아니고, 짧은 소집 기간 안에 전술과 분위기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공개적으로 설명됐어야 했다.
근데 선임 과정의 메시지는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팬들이 듣고 싶었던 건 “왜 지금 홍명보인가”였는데, 들려온 건 “어렵게 설득했다”에 가까웠다. 이 차이가 크다. 전자는 전략이고, 후자는 사정이다.
숫자로 보면 더 아쉬운 협회의 대응
대표팀 감독 선임은 한국 축구의 가장 비싼 의사결정 중 하나다. 월드컵 예선, 아시안컵, 선수 유럽파 관리, K리그와의 관계까지 한 번에 묶인다. 감독 한 명을 뽑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4년짜리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임 기준은 최소한 몇 가지 축으로 설명돼야 한다. 최근 성적, 전술 적합도, 선수단 장악력, 국제대회 경험, 한국 축구 장기 플랜과의 연결성 같은 것들이다.
홍명보 감독의 울산 시절 성과는 분명 강점이었다. K리그1 우승을 만든 감독이고, 리그 운영 능력도 증명했다. 하지만 대표팀 선임에서는 그 강점이 다른 후보 대비 얼마나 우위였는지 공개 설득이 부족했다. 외국인 후보들과 어떤 항목에서 비교됐고, 면접 점수나 평가 기준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 수 없으니 팬들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매달리게 됐다.
사실 스포츠 팬들은 생각보다 숫자에 냉정하다. 지면 화를 내지만, 납득 가능한 플랜이 있으면 기다리기도 한다. 반대로 이겨도 과정이 흐릿하면 불신은 남는다. 이임생 책임 논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커졌다. 개인의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이전에, 협회 시스템이 개인에게 너무 많은 설명 부담을 떠넘긴 모양새가 됐다.
책임은 한 사람의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 논란을 이임생 한 명의 책임으로만 몰아가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물론 그는 선임 국면에서 전면에 섰고, 팬들에게 설명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 선임은 기술총괄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협회장, 전력강화위원회, 이사회, 실무 라인 전체가 절차를 만들고 승인하는 구조다.
그래서 진짜로 따져야 할 건 책임의 분배다. 누가 후보 평가표를 만들었는가. 누가 최종 후보군을 승인했는가. 누가 시즌 중 K리그 감독 선임에 따른 파장을 계산했는가. 누가 팬과 구단을 상대로 설명할 문장을 준비했는가.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비슷한 논란은 다음 감독 선임 때도 반복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안을 보며 가장 아쉬웠던 건 홍명보 감독의 능력 논쟁이 절차 논쟁에 묻혔다는 점이다. 감독은 전술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출발선부터 행정 불신을 짊어졌다. 한국 축구가 정말 기록과 흐름으로 평가받는 조직이 되려면, 감독 선임도 경기 분석처럼 남겨야 한다. 누가 봐도 추적 가능한 데이터와 회의 기록, 그리고 납득 가능한 설명이 있어야 팬들도 결과를 기다릴 힘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