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를 기록으로 다시 봤더니, 높이보다 더 오래 남는 장면들

얼마 전 지난 시즌 DB 경기 영상을 다시 보다가 김종규가 공을 많이 만지지 않았는데도 경기 흐름을 바꾸는 장면이 꽤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박스스코어만 보면 득점 10점 안팎, 리바운드 몇 개로 지나갈 수 있는데, 코트 위에서는 상대 빅맨의 위치를 밀어내고 가드의 동선을 열어주는 시간이 분명히 있더군요.
207cm라는 숫자가 만든 기대치
김종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숫자는 역시 신장입니다. 207cm 센터. 한국 농구에서 이 정도 높이는 늘 기대를 부릅니다. 2013년 KBL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창원 LG에 입단했을 때도 그 기대가 컸습니다. 경희대 시절부터 국가대표급 빅맨으로 평가받았고, 프로 입성 직후에는 신인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김종규의 커리어는 단순히 ‘큰 선수’라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LG에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뛰었고, 이후 원주 DB로 옮겨 2025년까지 중심축 역할을 맡았습니다. 2025년에는 안양 정관장 유니폼을 입으며 커리어의 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습니다. 팀을 옮길 때마다 팬들의 시선이 뜨거웠던 이유도 명확합니다. 국내 센터 중에서 높이, 기동력, 경험을 동시에 가진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요.
득점보다 먼저 봐야 할 건 공간
김종규의 경기를 볼 때 득점만 따라가면 놓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현대 농구에서 국내 빅맨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포스트업으로 20점을 넣는 센터보다, 수비를 끌고 들어가고, 스크린 각도를 만들고, 외국 선수와 공존하면서 국내 가드가 편하게 공격하도록 도와주는 센터의 가치가 커졌습니다.
김종규가 좋은 날에는 이 부분이 눈에 잘 보입니다.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받는 순간 상대 수비가 반 발짝 안으로 들어오고, 그 사이 코너 슈터에게 패스 길이 생깁니다. 픽앤롤에서도 직접 마무리하지 않아도 롤 움직임 하나로 약한 쪽 수비를 묶어둡니다. 박스스코어에는 어시스트가 1개만 찍혀도 실제로는 공격의 첫 번째 균열을 만든 장면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 207cm 신장을 활용한 림 근처 존재감
- 가드와 맞추는 픽앤롤 타이밍
- 수비 리바운드 이후 빠른 전개 연결
- 외국 선수 중심 공격에서 국내 빅맨이 버텨주는 균형
DB 시절이 남긴 이미지
원주 DB 시절 김종규는 팀 컬러와 잘 맞는 장면을 여러 번 만들었습니다. DB는 높이와 활동량을 동시에 가져가려는 팀이었고, 김종규는 그 안에서 국내 빅맨의 기준선을 다시 보여줬습니다. 특히 정규리그 흐름이 좋을 때는 득점이 폭발하지 않아도 코트 마진이 좋아 보이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센터의 영향력은 종종 ‘상대가 무엇을 포기하게 만들었는가’로 드러납니다. 김종규가 페인트존에 서 있으면 상대 가드가 레이업을 한 박자 늦춥니다. 빅맨이 따라 나오면 골밑 뒷공간이 열리고, 나오지 않으면 미드레인지나 짧은 플로터 각도가 생깁니다. 이런 장면은 화려한 하이라이트보다 덜 보이지만, 긴 시즌에서는 꽤 큰 차이를 만듭니다.
국내 빅맨에게 붙는 냉정한 잣대
솔직히 김종규에게는 늘 엄격한 평가가 따라다녔습니다. 전체 1순위, 국가대표, 고액 계약, 207cm 센터라는 배경이 있으니 팬들이 원하는 기준도 높았습니다. 어떤 날은 “더 지배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어떤 날은 “기록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둘 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센터는 컨디션과 매치업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상대 외국 선수가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날에는 파울 관리가 중요해지고, 빠른 팀을 만나면 전환 수비에서 체력 소모가 커집니다. 김종규처럼 큰 선수가 계속 뛰려면 단순히 높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발, 손, 판단 속도, 그리고 몸싸움을 버티는 시간이 함께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의 기록을 볼 때는 평균 득점 하나보다 출전 시간, 리바운드 점유, 블록 위협, 팀 수비 위치까지 같이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안양에서 더 궁금해진 다음 장면
2025년 안양 정관장으로 옮긴 뒤 김종규에게 붙는 질문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팀의 미래를 혼자 짊어지는 20대 빅맨이 아니라, 경험으로 팀의 구조를 잡아줘야 하는 베테랑 센터에 가깝습니다. 이 변화가 꽤 흥미롭습니다. 같은 207cm라도 20대의 207cm와 30대 중반으로 향하는 207cm는 쓰임새가 다르니까요.
팬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매 경기 압도적인 숫자를 기대하기보다, 중요한 구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는 맛이 커졌습니다. 스크린을 다시 걸어주는지, 무리한 점퍼 대신 다음 패스를 선택하는지, 파울 3개 상황에서 림을 어떻게 지키는지 같은 장면들입니다. 이런 장면이 쌓이면 평균 기록보다 팀의 안정감에 더 직접적으로 남습니다.
김종규의 커리어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농구에서 국내 센터를 바라보는 기준도 함께 보입니다. 우리는 큰 선수에게 늘 더 많은 걸 기대합니다. 높이로 막고, 달리고, 리바운드 잡고, 득점까지 해주길 바랍니다. 근데 경기를 오래 보다 보면 숫자 사이에 남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김종규는 바로 그 지점에서 계속 이야기할 만한 선수입니다. 화려함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흐름을 읽는 팬에게는 아직 볼거리가 많은 이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