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링 홀란드 기록을 따라가 봤더니, 골보다 먼저 보인 이상한 속도감

얼마 전 맨체스터 시티 경기를 다시 보는데, 엘링 홀란드는 이상하게도 골 장면보다 그 직전 5초가 더 눈에 남았다. 수비수와 나란히 서 있다가, 크로스가 올라오는 순간 반 박자 먼저 움직이고, 슈팅은 거의 설명 없이 끝난다. 숫자로 보면 그냥 득점 하나인데, 경기 흐름으로 보면 상대 수비 라인을 통째로 흔드는 사건에 가깝다.
36골이라는 숫자가 말해준 첫 충격
홀란드가 프리미어리그에 들어온 2022-23시즌은 아직도 기준점처럼 남아 있다. 리그 36골. 38경기 체제 프리미어리그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기존에 앨런 시어러와 앤디 콜이 34골을 넣었지만, 그때는 42경기 체제였다. 그래서 홀란드의 36골은 단순히 두 골 더 넣은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 수가 줄어든 시대에 득점 밀도를 다시 써버린 쪽에 가깝다.
더 흥미로운 건 해리 케인이 같은 시즌 30골을 넣고도 득점왕 싸움에서 꽤 멀어 보였다는 점이다. 보통 30골이면 리그를 지배한 공격수의 숫자다. 그런데 홀란드가 36골을 찍으면서 30골은 '엄청난 시즌'이면서도 2위 기록이 됐다. 이게 기록의 잔인한 부분이다. 한 선수가 기준선을 너무 위로 올려버리면, 다른 위대한 시즌까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득점 기계라는 말이 조금 억울한 이유
홀란드를 두고 흔히 '박스 안 마무리형'이라고 부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표현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그는 슈팅을 잘하는 선수라기보다, 슈팅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반복해서 도착하는 선수다. 이 차이가 크다.
맨시티의 공격은 점유율, 하프스페이스, 컷백, 세컨드볼 회수로 굴러간다. 홀란드는 그 안에서 공을 오래 만지는 쪽이 아니다. 대신 센터백의 시야 밖에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앞으로 튀어나온다. 수비수가 공과 홀란드를 동시에 봐야 하는데, 그 0.5초의 선택지가 늘 틀어진다. 솔직히 이건 골 장면만 모아 보면 잘 안 보인다. 풀경기로 보면 계속 반복되는 압박이다.
- 2022-23 프리미어리그: 36골로 단일 시즌 최다 득점
- 2022-23 모든 대회: 52골로 맨시티 트레블 시즌의 공격 중심
- 2023-24 프리미어리그: 27골로 두 시즌 연속 골든부트
- 챔피언스리그: 잘츠부르크, 도르트문트, 맨시티를 거치며 어린 나이에 50골대 진입
도르트문트 시절과 맨시티 시절은 꽤 다르다
도르트문트 때 홀란드는 훨씬 직선적이었다. 공간이 열리면 긴 보폭으로 달려가고, 수비 라인 뒤를 찢고, 전환 공격에서 거의 육상 선수처럼 보였다. 당시 기록도 무시무시했다. 도르트문트 공식전 89경기 86골 수준의 페이스는 리그 적응기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다.
맨시티에 와서는 장면의 성격이 바뀌었다. 공간이 넓지 않다. 상대는 대개 낮게 내려앉고, 센터백 둘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박스 주변을 채운다. 그런데도 홀란드는 득점을 줄이지 않았다.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전환 속도의 괴물에서, 좁은 박스 안의 타이밍 괴물로 변한 셈이다. 이 적응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많은 공격수는 리그를 옮기면 슈팅 수부터 흔들리는데, 홀란드는 팀 구조에 맞춰 슈팅 위치를 바꿨다.
기록을 볼 때 놓치기 쉬운 장면들
홀란드의 골 기록을 볼 때 개인 능력과 팀 시스템을 따로 떼어놓기는 어렵다. 케빈 더브라위너의 패스, 베르나르두 실바의 압박 회피, 필 포든의 하프스페이스 움직임, 로드리의 전진 패스가 함께 있다. 그런데 이걸 이유로 홀란드의 득점을 깎아내리기도 애매하다. 좋은 팀에서 뛰는 공격수는 많지만, 그 공급을 30골대 기록으로 바꾸는 선수는 드물다.
사실 가장 무서운 지점은 골이 없는 경기에서도 남는다. 홀란드가 수비수 둘을 끌고 있으면, 맨시티의 2선은 더 편하게 전진한다. 포든이나 알바레스, 실바 같은 선수들이 박스 근처에서 여유를 얻는 장면이 그렇다. 공격수가 직접 골을 넣지 않아도 수비 배치를 바꾸면, 그 자체가 전술적 생산성이다. 기록지에는 어시스트도, 키패스도 안 찍히는 날이 있지만 경기 영상에는 남는다.
홀란드의 다음 기록은 어디까지 열려 있을까
홀란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비교 대상이 자연스럽게 메시, 호날두, 레반도프스키, 케인 쪽으로 간다. 그런데 아직은 커리어 누적보다 속도의 문제로 보는 게 더 재미있다.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 36골, 다음 시즌 27골. 이 정도면 부상과 일정 변수까지 감안해도 리그 득점왕 레이스의 기본값이 이미 25골 이상으로 잡힌 선수다.
다만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단순 득점 수만은 아닐 것 같다. 상대 팀들이 홀란드를 막는 방식은 더 집요해지고 있다. 박스 안에서 몸싸움을 먼저 걸고, 크로스 길목을 막고, 더브라위너에게 압박을 빨리 붙인다. 그럴수록 홀란드가 내려와 연계하는 빈도, 오른쪽과 왼쪽으로 빠지는 선택, 큰 경기에서 적은 슈팅을 골로 바꾸는 비율이 중요해진다.
참고한 기록은 Premier League 공식 득점 기록과 UEFA 챔피언스리그 기록 흐름,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 이적 이후 시즌별 득점 데이터를 기준으로 봤다. 숫자만 놓고 보면 홀란드는 이미 비정상적인 득점자다. 그런데 경기를 길게 보고 있으면 더 흥미로운 쪽은 따로 있다. 그는 골을 많이 넣는 선수라기보다, 상대가 90분 내내 자기 수비 위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선수다. 그래서 홀란드의 기록은 앞으로도 단순한 득점표보다 경기 안의 압력으로 읽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