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200억 투자 실패를 다시 봤더니, 백민기 이름이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롯데의 FA 투자 목록을 다시 훑어보다가 이상하게 백민기 이름에서 오래 멈췄다. 대형 계약서에 찍힌 금액은 화려한데, 시간이 지나 팬 기억에 남는 장면은 꼭 돈의 크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롯데가 공격적으로 돈을 쓴 시기마다 기대치는 높았고, 그 기대가 무너지면 숫자는 더 크게 돌아왔다.
200억이라는 숫자가 만든 기대값
롯데의 최근 FA 투자는 단순히 한두 명 영입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민병헌 4년 80억, 유강남 4년 80억, 노진혁 4년 50억, 한현희 3+1년 40억까지 묶어 보면 200억을 훌쩍 넘는 흐름이 나온다. 팬들이 “200억 투자 실패”라고 부르는 건 정확한 회계 장부라기보다, 큰돈을 쓰고도 순위표와 전력 안정감이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았다는 체감에 가깝다.
사실 FA는 성적표를 단순 타율이나 평균자책점 하나로만 보긴 어렵다. 포지션 안정, 라커룸 영향, 젊은 선수 성장에 주는 여유도 비용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롯데의 문제는 그 부가가치가 충분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포수, 내야, 선발·불펜 자원에 돈을 넣었는데도 시즌 중반 이후 전력의 출렁임은 반복됐다. 큰 계약이 팀의 바닥을 높여줘야 하는데, 롯데는 그 바닥이 생각보다 자주 꺼졌다.
민병헌 계약과 백민기라는 작은 반전
백민기는 이 흐름에서 상징적인 이름이다. 롯데가 2017년 말 민병헌을 FA로 데려오면서 두산은 보상선수로 백민기를 지명했다. 민병헌은 당시 리그 정상급 외야수였고, 계약 규모도 4년 80억이었다. 롯데 입장에서는 즉시 전력 외야수를 얻는 선택이었다. 반대로 백민기는 주전 보장형 선수라기보다는 백업 외야수, 대주자, 수비 카드에 가까웠다.
기록만 놓고 보면 백민기의 KBO 통산 성적은 거창하지 않다. 1군에서 남긴 타율은 1할대였고 홈런도 1개다. 그런데 스포츠 기록을 보다 보면 이런 선수가 오히려 이야기의 결을 만든다. 대형 FA 계약의 반대편에 있던 보상선수가 새 팀에서 제한된 기회를 받아내고, 경기 후반 흐름을 바꾸는 장면을 만들면 팬들은 금액표보다 그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한다.
실패는 금액보다 역할 미스에서 커졌다
롯데의 투자 실패론을 볼 때 아쉬운 지점은 “돈을 썼다” 자체가 아니다. 돈을 썼는데 팀의 약점이 선명하게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수 유강남은 수비 안정이라는 명분이 컸지만 공격 생산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진혁은 장타력 있는 내야수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부상과 기복이 겹쳤다. 한현희도 선발과 불펜 사이에서 확실한 고정값을 주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백민기 같은 선수의 가치는 비용 대비 역할에서 나온다. 풀타임 중심타자는 아니어도 수비, 주루, 백업 깊이를 채우면 벤치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물론 이것을 대형 FA 한 명의 가치와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그래도 팬들이 이런 이름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비싼 선수보다 싼 선수가 무조건 낫다는 말이 아니라, 팀 구성에서는 ‘얼마짜리 선수인가’보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해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롯데가 배워야 할 건 계약보다 설계다
롯데는 전통적으로 팬덤이 뜨겁고, 성적이 오를 조짐만 보여도 사직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팀이다. 그래서 프런트가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선택 자체는 이해된다. 문제는 FA 영입이 단발 처방처럼 보일 때다. 포수 한 명, 유격수 한 명, 투수 한 명을 데려오는 것만으로 팀의 수비 조직력과 투수 운용, 백업 뎁스가 동시에 좋아지지는 않는다.
최근 KBO에서 강팀으로 버티는 팀들은 스타 영입과 내부 육성이 같이 간다. 비싼 계약은 중심을 잡고, 젊은 선수와 저비용 자원은 긴 시즌의 틈을 메운다. 롯데가 놓친 건 이 균형이었다. 200억대 투자라는 큰 숫자가 앞에 서면 팬들은 당연히 가을야구와 우승 경쟁을 기대한다. 그런데 실제 경기에서는 7회 이후 대수비, 대주자, 백업 포수, 5선발, 추격조 같은 작은 퍼즐들이 시즌을 버티게 만든다.
백민기 이름이 남긴 묘한 여운
백민기의 활약을 대단한 성공 신화처럼 포장할 필요는 없다. 기록표만 보면 그는 리그를 흔든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롯데의 대형 투자 실패론 속에서 그의 이름이 자꾸 떠오르는 건, 야구가 돈과 예측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거액 계약이 기대만큼 팀을 끌어올리지 못할 때, 팬들은 자연스럽게 반대편에 있던 작은 선택들을 다시 본다.
솔직히 롯데가 앞으로도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써야 할 때는 더 분명하게 써야 한다. 대신 그 돈이 어떤 역할을 사고 있는지, 그 역할이 기존 선수들과 어떻게 맞물리는지까지 보여줘야 한다. 백민기라는 이름은 그래서 묘하다. 큰 계약서 한 장보다 작은 역할 하나가 더 또렷하게 남을 때, 팀 빌딩의 민낯도 같이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