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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스틱 들고 산에 올라봤더니,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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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스틱 들고 산에 올라봤더니,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처음엔 장비 욕심인 줄 알았다

얼마 전 북한산 둘레길과 관악산 코스를 이어서 걸었는데, 그날 가장 크게 체감한 장비가 등산화가 아니라 등산스틱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등산스틱을 보면 ‘저 정도까지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걸음 수, 심박, 하산 속도를 같이 보니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등산스틱은 멋으로 드는 물건이라기보다 체력 배분을 숫자로 바꿔주는 도구에 가까웠다.

특히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차이가 뚜렷했다. 같은 코스를 스틱 없이 내려왔을 때는 무릎 주변 피로감이 하산 후반에 확 올라왔고, 보폭도 자연스럽게 짧아졌다. 반대로 등산스틱을 쓴 날은 하산 평균 페이스가 크게 빨라진 건 아니었지만, 마지막 1km에서 속도 저하가 덜했다. 스포츠 기록으로 치면 초반 스퍼트보다 후반 랩타임 관리가 좋아진 느낌이었다.

등산스틱이 기록에 주는 변화

등산은 경기처럼 공식 기록이 남는 종목은 아니지만, 요즘은 GPS 앱과 스마트워치 덕분에 꽤 세밀하게 볼 수 있다. 이동 거리, 누적 고도, 평균 심박, 구간별 페이스까지 확인된다. 내가 느낀 등산스틱의 장점은 최고 속도를 올리는 쪽이 아니었다. 오히려 페이스 편차를 줄이는 쪽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7km 안팎의 산행에서 초반 오르막을 무리하면 후반 하산 때 무릎과 종아리에 부담이 몰린다. 그런데 스틱을 양손에 나눠 잡으면 상체가 일정 부분 일을 나눠 갖는다. 체감상 팔과 어깨가 가볍게 리듬을 만들어주고, 다리만으로 버티는 시간이 줄어든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크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팔 치기가 무너지면 페이스가 흔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 오르막에서는 추진 리듬을 만들기 쉽다.
  • 내리막에서는 무릎에 몰리는 충격을 분산한다.
  • 미끄러운 흙길이나 잔돌 구간에서 균형 회복이 빠르다.
  • 후반 구간에서 보폭과 자세가 덜 무너진다.

높이 조절 하나로 체감이 갈린다

솔직히 처음엔 등산스틱을 대충 길게 빼서 썼다. 그랬더니 손목이 불편하고 어깨가 올라갔다. 기록을 챙겨보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세팅 실수는 장비 효과를 반으로 깎아먹는 변수다. 일반적으로 평지에서는 팔꿈치가 90도 정도 되는 높이가 무난하고, 오르막에서는 조금 짧게, 내리막에서는 조금 길게 잡는 편이 안정적이었다.

이 차이는 작은 것 같지만 실제 산길에서는 계속 누적된다. 오르막에서 너무 긴 스틱을 쓰면 몸이 뒤로 밀리고, 내리막에서 너무 짧으면 상체가 앞으로 쏠린다. 그러면 무릎이 아니라 허리와 손목에 부담이 온다. 장비가 내 몸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장비에 맞춰 끌려가는 모양이 된다.

두 개를 쓰는 게 왜 유리할까

하나만 쓰는 등산스틱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다만 긴 산행에서는 양손 스틱이 확실히 리듬을 만들기 좋았다. 좌우 균형이 맞으니까 보행 패턴이 안정되고, 오르막에서 ‘찍고 밀고 딛는’ 동작이 반복된다. 스포츠로 보면 양발 스텝과 상체 밸런스가 같이 돌아가는 셈이다.

물론 사람이 많은 탐방로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스틱 끝이 뒤 사람에게 향하지 않게 하고, 바위 구간에서는 과하게 의존하지 않는 게 좋다. 등산스틱은 균형을 보조하는 장비이지, 중심을 대신 잡아주는 장비는 아니다.

좋은 등산스틱을 고를 때 보는 숫자

등산스틱을 고를 때 디자인보다 먼저 볼 건 무게, 수납 길이, 잠금 방식, 그립 소재다. 한 쌍 기준 400~600g대 제품이 흔하고, 장거리 산행을 자주 한다면 무게 차이가 은근히 체감된다. 100g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3시간 넘게 손에 들고 리듬을 만들면 팔 피로에 영향을 준다.

잠금 방식은 크게 돌려 잠그는 방식과 레버로 고정하는 방식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장갑 낀 상태에서도 조절하기 쉬운 레버 방식이 편했다. 다만 레버가 헐거우면 산행 중 길이가 밀릴 수 있으니 출발 전에 한 번 힘을 줘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립은 코르크, EVA 폼, 고무가 있는데 땀이 많은 편이면 코르크나 폼이 손에 덜 미끄러웠다.

  • 가벼움만 보지 말고 잠금 안정성까지 확인한다.
  • 수납 길이는 대중교통 이동이나 배낭 보관에 영향을 준다.
  • 그립 소재는 손汗과 계절에 따라 체감이 다르다.
  • 팁 보호캡과 바스켓 구성도 실제 사용 빈도가 높다.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재밌는 장비

등산스틱을 쓰고 나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속도가 아니라 회복감이었다. 같은 거리라도 다음 날 계단을 내려갈 때 느낌이 달랐다. 특히 하산 충격이 줄어든 날은 종아리와 무릎 주변의 묵직함이 덜했다. 이건 산행 기록 앱에 바로 찍히는 숫자는 아니지만, 다음 산행을 얼마나 자주 갈 수 있는지에 영향을 준다.

운동을 오래 즐기는 사람은 결국 누적 피로를 관리한다. 야구에서 선발투수가 투구 수를 관리하고, 축구에서 후반 70분 이후 활동량이 승부를 가르듯이 산행도 비슷하다. 초반에 힘이 남는다고 다 써버리면 내려올 때 자세가 무너진다. 등산스틱은 그 에너지 분배를 조금 더 똑똑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등산스틱을 ‘초보자용 보조 장비’라고만 부르기엔 아깝다고 본다. 기록을 보는 사람일수록 이 장비의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평균 페이스가 몇 분 빨라졌는지보다, 마지막 구간에서 얼마나 덜 무너졌는지, 다음 날 몸이 얼마나 빨리 돌아왔는지가 더 진짜 데이터처럼 느껴진다. 산을 오래 보고 싶은 사람에게 등산스틱은 꽤 현실적인 투자다.

등산스틱 들고 산에 올라봤더니,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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