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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스틱 들고 걸어봤더니, 무릎보다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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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스틱 들고 걸어봤더니, 무릎보다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처음엔 장비빨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봤다. 비슷한 속도로 출발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명은 빈손이고 한 명은 등산스틱을 썼다. 초반 20분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내리막이 길어지는 구간에서 걸음 리듬이 확 갈렸다. 빈손으로 걷던 사람은 무릎을 살짝 잠그듯 버티고 내려왔고, 스틱을 쓰던 사람은 상체와 팔로 충격을 나눠 받으면서 보폭을 유지했다.

스포츠를 볼 때도 비슷하다. 점수만 보면 경기 흐름을 놓칠 때가 있다. 야구에서 3대2라는 스코어보다 투구 수, 출루 흐름, 수비 위치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듯이 등산도 정상 도착 여부만 보면 아쉬운 장면이 많다. 등산스틱은 단순히 손에 드는 막대가 아니라, 몸의 부하를 어디로 분산시키느냐를 바꾸는 장비에 가깝다.

특히 기록을 재보면 차이가 꽤 선명하다. 같은 코스에서 왕복 8km, 누적 상승고도 500m 정도를 걸었을 때 스틱 없이 걸으면 후반 내리막 2km에서 페이스가 1km당 1분 가까이 느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등산스틱을 쓰면 오르막에서 심박은 조금 올라가도 내리막 페이스 저하가 덜했다. 체감상 ‘덜 힘들다’보다 더 중요한 건 ‘흐름이 덜 무너진다’는 점이었다.

등산스틱이 바꾸는 건 속도보다 리듬이다

등산스틱을 쓰면 무조건 빨라질까. 솔직히 그건 아니다. 평지나 완만한 임도에서는 손이 바빠져서 오히려 번거롭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경사가 생기고 노면이 울퉁불퉁해지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틱은 다리 두 개로 처리하던 균형과 충격 일부를 팔과 어깨 쪽으로 나눠준다.

걷기를 경기 기록처럼 본다면 등산스틱의 효과는 세 가지 지표에서 보인다. 첫째, 내리막에서 보폭이 급격히 줄어드는 구간이 적다. 둘째, 미끄러운 흙길이나 잔돌 구간에서 멈칫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셋째, 후반부에 허벅지 앞쪽이 터지는 느낌이 늦게 온다. 이건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하산 때 무릎과 대퇴사두근이 받는 반복 충격이 줄면 전체 페이스가 더 안정적으로 남는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스틱을 들었다고 자동으로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농구에서 좋은 러닝화를 신었다고 슛 성공률이 바로 오르지 않는 것처럼, 등산스틱도 길이와 리듬이 맞아야 제 역할을 한다. 오르막에서는 조금 짧게, 내리막에서는 조금 길게 쓰는 편이 자연스럽다. 팔꿈치가 대략 90도 안팎으로 접히는 길이를 기준으로 잡고, 경사에 따라 5~10cm 정도 조절하면 체감이 확 달라진다.

오르막과 내리막, 쓰임새가 완전히 다르다

오르막에서는 추진력보다 호흡 관리

오르막에서 등산스틱을 쓰면 팔로 땅을 밀어 올라간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실제로 상체 개입이 늘어나니까 추진력이 생긴다. 다만 너무 세게 찍고 밀면 초반에 심박이 빨리 오른다. 5km 러닝에서 첫 1km를 과하게 달리면 뒤가 무너지는 것과 비슷하다.

오르막에서는 스틱을 발보다 살짝 앞쪽에 두고 짧게 짚는 게 좋았다. 팔을 크게 휘두르기보다 보폭에 맞춰 톡톡 찍는 느낌이다. 이렇게 하면 허벅지만으로 버티는 시간이 줄고, 종아리와 둔근, 팔까지 전체적으로 일을 나눠 한다. 장거리 산행에서는 이 분산이 꽤 큰 차이를 만든다.

내리막에서는 기록보다 부상 방어

내리막은 등산스틱의 진짜 무대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다리가 이미 피곤한 상태라 작은 돌 하나에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이때 스틱 두 개가 먼저 지면을 확인해주면 발을 놓을 곳을 고르는 시간이 줄어든다. 특히 비 온 뒤 흙길이나 낙엽이 덮인 길에서는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내리막에서는 스틱을 몸보다 약간 앞에 두고, 체중을 일부 실어 충격을 나눠 받는 방식이 안정적이다. 다만 손목으로만 버티면 금방 피로가 온다. 스트랩을 제대로 끼우고 손바닥 아래쪽으로 하중을 받으면 손아귀 힘을 덜 쓰게 된다. 야구 포수 미트처럼 장비를 몸에 맞게 써야 효과가 살아난다.

좋은 등산스틱을 고를 때 보는 숫자들

등산스틱을 고를 때 광고 문구보다 먼저 볼 건 숫자다. 무게, 수납 길이, 최대 길이, 잠금 방식, 소재가 기본 지표다. 초보자에게는 한 쌍 기준 450~600g 정도가 무난하다. 너무 가벼운 모델은 장거리에서 편하지만 가격이 올라가고, 거친 바위 구간에서 안정감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 알루미늄 소재: 내구성이 좋고 가격대가 비교적 현실적이다. 처음 쓰기 좋다.
  • 카본 소재: 가볍고 진동 흡수가 좋지만 충격에 예민한 편이다.
  • 레버 잠금식: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조절이 쉽고 관리가 편하다.
  • 접이식: 수납이 짧아 이동이 편하지만 길이 조절 폭은 모델마다 다르다.
  • 텔레스코픽 방식: 길이 조절이 자유롭고 범용성이 좋다.

키가 170cm 안팎이라면 평지 기준 110~115cm 정도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180cm 전후라면 120cm 안팎이 편한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건 평균값일 뿐이다. 팔 길이, 배낭 무게, 경사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구매할 때는 최대 길이만 보지 말고 최소 길이와 조절 단위도 같이 봐야 한다.

가격도 기록처럼 봐야 한다. 2만~3만원대 제품은 가볍게 둘레길을 걷는 용도로 충분할 때가 있다. 5만~10만원대부터는 잠금 안정성과 손잡이 재질, 촉 내구성에서 차이가 난다. 15만원 이상으로 가면 무게와 수납성, 진동 억제 같은 디테일 싸움이다. 산행 횟수가 한 달 1회 미만이라면 중급형까지도 충분하고, 종주나 장거리 산행을 자주 한다면 가벼운 모델의 값어치가 살아난다.

직접 써보니 가장 크게 남은 차이

등산스틱을 들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정상까지 걸린 시간이 아니었다. 하산 후 컨디션이었다. 예전에는 내려온 뒤 계단을 만날 때 무릎 앞쪽이 묵직했는데, 스틱을 쓴 날은 피로가 허벅지와 어깨 쪽으로 더 넓게 퍼져 있었다. 특정 부위가 혼자 두들겨 맞는 느낌이 줄었다고 해야 맞다.

기록으로 보면 평균 페이스가 엄청나게 빨라진 건 아니었다. 대신 페이스 그래프가 덜 출렁였다. 초반 2km와 후반 2km 차이가 줄고, 쉬는 횟수도 줄었다. 스포츠에서 강팀이 늘 화려한 장면만 만드는 게 아니라 실점 구간을 짧게 끊는 것처럼, 등산스틱은 산행의 나쁜 흐름을 길게 끌고 가지 않게 해준다.

물론 모든 산행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는 아니다. 짧은 공원 산책이나 완만한 산책로에서는 손이 자유로운 편이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사가 있고, 하산이 길고, 무릎 피로가 신경 쓰이는 코스라면 등산스틱은 꽤 설득력 있는 선택이다. 산에서 좋은 장비란 멋있어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후반부에도 몸의 움직임을 지켜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등산스틱은 기록을 단축하는 도구라기보다, 내 산행의 흐름을 끝까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장비에 가깝다.

등산스틱 들고 걸어봤더니, 무릎보다 기록이 먼저 달라졌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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