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손아섭 은퇴 기로에서 황재균 메시지까지, 숫자로 다시 읽어본 겨울 이야기

얼마 전 손아섭 이름을 기록표에서 다시 찾다가, 이 선수의 커리어가 단순히 ‘팀을 옮겼다’는 문장으로 끝낼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KBO 통산 최다 안타라는 숫자는 묵직한데, 2025시즌 뒤 FA 시장의 공기는 꽤 차가웠다. 그래서 ‘한화 손아섭 은퇴 기로 황재균 메시지’라는 말이 팬들 사이에서 유독 크게 번졌다.
기록은 여전히 큰데, 시장은 냉정했다
손아섭은 2007년 프로 데뷔 이후 KBO에서 가장 꾸준히 안타를 쌓아온 타자다. 2025시즌 종료 시점 통산 2169경기, 2618안타. 이 숫자는 그냥 오래 뛰었다는 뜻이 아니다. 타석에 계속 설 실력, 컨디션을 유지하는 몸, 그리고 팀이 그를 필요로 했던 시간이 겹쳐야 가능한 기록이다.
그런데 FA 시장은 과거의 총합만 보지 않는다. 2025년 손아섭은 NC와 한화를 거치며 111경기에서 타율 0.288, 107안타, 1홈런, 50타점을 기록했다. 나쁜 성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근데 손아섭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구단들이 ‘주전 지명타자 한 자리’를 맡길 만큼 확신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한화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상징은 컸다
손아섭은 2025년 7월 NC에서 한화로 옮겼고, 한화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손아섭 개인에게도 데뷔 19년 만의 한국시리즈였다. 팬 입장에선 꽤 드라마틱했다. 최다 안타 보유자가 커리어 후반에 새 유니폼을 입고 큰 무대를 밟는 장면은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화는 타선 구성을 새로 짰고, 베테랑 외야수 겸 지명타자 자원의 우선순위는 자연스럽게 밀렸다. 2026년 1월에는 캠프 명단에서 손아섭 이름이 보이지 않았고, FA 미계약 상태가 길어지며 은퇴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이때부터 팬들의 시선은 ‘2618안타 다음’으로 옮겨갔다.
왜 2618안타가 더 아프게 보였나
- 통산 최다 안타 1위 기록을 가진 선수가 계약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 2023년 타율 0.339로 타격왕에 올랐던 기억이 아직 선명했다.
- 2024년과 2025년 성적이 급락은 아니었지만, 나이와 수비 활용도 문제가 동시에 붙었다.
- 3000안타까지는 382개가 남아 있어 도전 서사가 살아 있었다.
황재균 메시지는 왜 크게 들렸을까
황재균의 메시지가 팬들에게 크게 다가온 이유는 단순하다. 그도 같은 세대의 베테랑이고, FA와 은퇴의 문턱을 몸으로 겪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황재균은 2025년 말 은퇴를 택했고, 이후 행사 자리에서 손아섭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취지로 절친을 응원했다. 이 말은 이적설을 부추기는 단서라기보다, 베테랑 선수가 베테랑에게 건넨 현실적인 위로에 가까웠다.
사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건 두 선수가 걸어온 길 때문이다. 손아섭은 안타의 누적, 황재균은 내야 전 포지션과 장타력, 국가대표 경험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둘 다 롯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30대 후반에 시장의 평가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황재균의 말은 팬들에게 ‘친구의 응원’이면서 동시에 ‘세대교체의 온도계’처럼 읽혔다.
은퇴 기로에서 다시 열린 출전 기회
손아섭은 결국 2026시즌 개막 직전 한화와 1년 1억 원에 계약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화 1군에서의 기회는 거의 없었다. 개막전 교체 출전 1타수 무안타 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4월 14일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 조건은 투수 이교훈과 현금 1억5000만 원. 이름값만 보면 꽤 낯선 거래였지만, 팀 사정으로 보면 이해되는 선택이었다.
두산 이적 초반도 순탄하진 않았다. 이적 첫날 홈런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후 11경기 타율 0.114에 그치며 다시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런데 5월 중순 복귀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뉴시스 보도 기준 5월 26일 무렵 손아섭은 1군 복귀 후 10경기에서 타율 0.364, 33타수 12안타를 기록했다. 퓨처스리그에서 타격감을 되찾고 올라온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이 흐름이 중요한 이유
베테랑 타자에게 가장 무서운 평가는 ‘못 친다’보다 ‘쓸 자리가 없다’다. 손아섭은 장타 생산보다 컨택, 출루, 타석 운영으로 가치를 만들어온 선수다. 그런데 지명타자 자리는 보통 장타자에게 먼저 돌아간다. 외야 수비 이닝까지 줄어들면 타석을 받을 명분이 좁아진다. 그래서 두산에서 다시 안타를 쌓기 시작한 건 단순한 반등 이상이다. 아직 1군 타석에서 팀에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최형우와의 안타왕 경쟁까지 붙었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통산 안타왕 경쟁이다. 2026년 5월 초 최형우가 손아섭을 제치고 통산 안타 1위로 올라섰고, 5월 26일 기준 최형우 2643안타, 손아섭 2634안타로 격차는 9개까지 좁혀졌다. 여기에 김현수도 2588안타로 뒤를 따라왔다. KBO 기록실을 펼쳐보면 이건 단순한 순위표가 아니라, 1980년대생 타자들이 마지막 큰 산을 오르는 장면처럼 보인다.
솔직히 손아섭의 한화 시절만 떼어놓고 보면 아쉬움이 더 많다. 출전 기회는 제한됐고, FA 시장에서는 은퇴 기로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 짧은 흔들림이 오히려 손아섭 커리어의 다음 장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황재균 메시지가 남긴 감정선, 한화에서의 제한된 시간, 두산에서 다시 살아난 타격감까지 이어서 보면 이 이야기는 ‘끝날 뻔한 선수’가 아니라 ‘아직 끝내지 않은 타자’의 기록으로 읽힌다.
손아섭의 가치는 이제 전성기처럼 매일 3안타를 치는 폭발력보다, 필요한 타석에서 하나씩 기록을 밀어 올리는 집요함에 가깝다. 그래서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도 단순하다. 어느 팀 유니폼을 입었느냐보다, 그가 다시 타석에 설 수 있느냐. 그리고 그 타석에서 1루까지 뛰는 발걸음이 아직 KBO 기록표를 얼마나 더 움직일 수 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