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홍명보·정몽규를 같이 놓고 봤더니, 책임감은 성적표보다 태도에서 갈렸다

얼마 전 대표팀 관련 뉴스를 보다가 묘하게 답답했던 장면이 있었다. 팬들이 화난 지점은 단순히 졌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결정했고, 결과가 나빴을 때 누가 앞에 서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 차범근, 홍명보, 정몽규라는 세 이름을 같이 놓고 보면 한국 축구가 책임감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꽤 선명하게 보인다.
차범근의 책임감은 성적보다 먼저 쌓인 신뢰였다
차범근이라는 이름은 한국 축구에서 숫자로도 무겁다. 국가대표 A매치 121경기 58골, 독일 분데스리가 통산 98골, UEFA컵 우승 2회. 지금 기준으로 봐도 쉽게 따라가기 힘든 커리어다. 그런데 차범근의 책임감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잘해서가 아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자기 실력으로 증명했고, 지도자가 된 뒤에도 결과 앞에서 핑계를 길게 늘어놓는 타입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잔인했다. 한국은 멕시코전 1-3 패배, 네덜란드전 0-5 패배를 당했고 차범근 감독은 대회 도중 경질됐다. 지금 봐도 충격적인 장면이다. 감독이 월드컵 본선 도중 물러나는 건 단순한 인사 조치가 아니라 한 시대의 실패를 한 사람에게 몰아넣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팬들이 차범근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은 이유는 있다. 적어도 그는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축구장 안에서 자신의 이름값을 걸고 싸웠다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차범근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감독으로서 월드컵 성적은 실패였고, 전술적 대응에도 비판은 있었다. 다만 차이는 책임의 위치다. 차범근은 경기 결과의 최전선에 있었다. 팬들이 비판할 수 있는 대상이었고, 동시에 그 비판을 감당한 사람으로 남았다. 스포츠에서 책임감은 말보다 위치에서 드러날 때가 많다.
홍명보는 두 번의 대표팀 이야기로 갈린다
홍명보도 기록만 놓고 보면 한국 축구의 상징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주장, 브론즈볼, A매치 136경기. 선수 홍명보는 한국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던 시기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감독 홍명보에게 팬들이 기대한 기준도 높았다. 이름이 크면 기대도 같이 커진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홍명보에게 첫 번째 큰 상처였다. 한국은 러시아전 1-1 무승부, 알제리전 2-4 패배, 벨기에전 0-1 패배로 1무 2패, 승점 1에 그쳤다. 대회 뒤 홍명보 감독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때 팬들의 감정은 복잡했다. 성적은 분명 실망스러웠지만, 적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직책과 연결해 받아들이는 장면은 있었다.
문제가 더 커진 건 2024년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이다. 홍명보 감독이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과정에서 절차 공정성 논란이 크게 번졌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와 언론 보도에서 전력강화위원회 운영, 외국인 후보 면접 방식,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차이가 쟁점이 됐다.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건 홍명보 개인의 전술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울산을 이끌던 현직 감독이 갑자기 대표팀으로 이동했고, 그 과정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았다고 느낀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홍명보의 책임감은 애매한 지점에 놓인다. 현장의 감독은 경기 결과를 책임지는 자리다. 하지만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은 감독 혼자 만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수락한 순간부터는 설명 책임이 따라온다. 팬들은 홍명보가 축구인으로서 쌓은 무게만큼, 왜 이 선택이 한국 축구에 필요한지 더 직접적인 언어를 기대했다.
정몽규의 책임은 경기장 밖 숫자로 읽힌다
정몽규 회장의 책임감은 차범근, 홍명보와 성격이 다르다. 그는 골을 넣거나 전술을 짜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감독을 뽑는 구조, 협회 운영 방식, 위기 때의 의사결정 체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의 성적표는 승패보다 절차와 신뢰에 가깝다.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경질, 임시 감독 체제, 새 감독 선임 논란까지 이어지며 꽤 긴 시간 흔들렸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3년 2월 선임됐고, 2024년 2월 아시안컵 이후 경질됐다.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이었다. 이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은 다시 논란을 낳았다. 팬 입장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아니라 같은 유형의 의문이 반복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행정 책임자의 어려움도 있다. 협회장은 모든 실무를 직접 처리하지 않는다. 위원회가 있고, 기술 파트가 있고, 이사회가 있다. 그런데 스포츠 행정에서 최종 책임자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 복잡한 구조를 팬들이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일이 잘될 때만 대표 얼굴이 되고, 일이 꼬이면 절차 뒤로 숨는다면 그건 책임감이라기보다 권한 관리에 가깝게 보인다.
세 사람의 차이는 실패 이후의 거리감에서 나온다
차범근, 홍명보, 정몽규를 같은 기준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은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이고, 한 사람은 2002년의 주장 출신 지도자이며, 한 사람은 축구 행정의 최상단에 있었던 인물이다. 역할이 다르니 책임의 방식도 다르다. 그런데 팬들이 느끼는 온도 차이는 분명하다.
- 차범근은 경기장 안에서 쌓은 신뢰가 실패 뒤에도 남았다.
- 홍명보는 선수 시절의 상징성과 감독 선임 논란 사이에서 평가가 갈린다.
- 정몽규는 성적보다 반복된 절차 논란 때문에 책임감의 기준대에 섰다.
스포츠 팬은 의외로 냉정하면서도 관대하다. 졌다고 무조건 등을 돌리지는 않는다. 납득 가능한 과정, 실패를 인정하는 태도, 다음 선택을 설명하는 언어가 있으면 기다린다. 하지만 같은 의문이 반복되면 숫자보다 불신이 먼저 쌓인다. 1승 1패의 문제가 아니라, 이 조직이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책임감은 사퇴 한마디보다 긴 시간의 태도다
책임감은 꼭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남아서 고치는 것도 책임이고, 때로는 더 늦기 전에 떠나는 것도 책임이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자기 권한과 얼마나 정확히 연결되어 있느냐다. 차범근의 책임감은 축구 인생 전체에서 나온 신뢰에 가깝고, 홍명보의 책임감은 현장 지도자로서 선택과 설명 사이에서 계속 검증받고 있다. 정몽규의 책임감은 한국 축구 행정이 팬에게 납득 가능한 구조였는지를 묻는 쪽에 있다.
나는 그래서 이 세 사람을 볼 때 단순히 누가 더 훌륭했느냐보다, 누가 자기 자리의 무게를 더 선명하게 감당했느냐를 보게 된다.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남지만, 책임감은 위기의 순간에 표정과 말, 그리고 선택으로 훨씬 또렷하게 남는다. 한국 축구가 앞으로 더 강해지려면 승리보다 먼저 필요한 것도 어쩌면 그 부분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