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저축은행 배구단 매각설을 따라가 봤더니, 소문보다 숫자가 더 세게 말하고 있었다

광주 홈경기 분위기보다 먼저 보인 불안한 숫자
얼마 전 V리그 비시즌 소식을 훑다가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이야기를 다시 읽었는데, 이상하게 경기 결과표보다 구단 뉴스가 더 크게 들어왔습니다. 원래 팬들은 연패가 길어지면 답답해하고, 외국인 선수 교체가 꼬이면 한숨을 쉬죠. 그런데 이번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매각설 논란은 단순히 성적이 안 좋아서 나온 불평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팀이 다음 시즌에도 같은 이름으로 코트에 설 수 있느냐는 질문까지 번졌으니까요.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는 2021년 여자부 제7구단으로 출발했습니다. 신생팀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초반 성적은 혹독했습니다. 2021-22시즌 3승 28패, 2022-23시즌 5승 31패, 2023-24시즌 5승 31패. 세 시즌 합산 13승 90패입니다. 승률로 보면 1할대 초반에 머물렀고, 특히 2023-24시즌에는 23연패라는 기록까지 남겼습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꼴찌 기록이 아니라, 구단 운영의 설득력이 흔들리는 지점이었습니다.
매각설은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었다
사실 프로구단 매각설은 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누가 인수한다더라, 얼마에 팔린다더라 같은 말은 팬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커지지만, 실제 절차는 훨씬 느리고 복잡하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페퍼저축은행의 경우에는 모기업 경영난, 구단 성적 부진, 선수단 운영 잡음이 동시에 겹쳤습니다. 그래서 팬들이 “설마”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겁니다.
2026년 5월 들어 분위기는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배구연맹과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페퍼저축은행은 모기업 재정 문제로 배구단 매각을 추진했고, 인터넷 방송 플랫폼 기업 SOOP이 인수 의사를 공식 전달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장면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불참입니다.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 선발은 사실상 1년 농사의 출발선인데, 여기에 빠졌다는 건 단순한 행정 공백 이상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유계약선수였던 박정아와 이한비가 사인 앤드 트레이드 방식으로 각각 한국도로공사와 현대건설로 떠난 점도 상징적이었습니다. 팀의 중심 전력과 상징성이 동시에 빠져나가면 팬들은 자연스럽게 구단의 지속 의지를 의심하게 됩니다. 성적이 나빠도 “다음 시즌에 다시 만들자”는 신호가 있으면 기다릴 수 있는데, 그 신호가 약해졌던 시기였죠.
논란의 진짜 무게는 돈보다 신뢰였다
프로배구단은 입장권과 굿즈만으로 운영비를 모두 회수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기업 홍보, 지역 밀착, 브랜드 이미지, 팬덤 접점이 합쳐져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모기업이 어려워지면 구단은 가장 먼저 “비핵심 자산”이라는 표현과 마주합니다. 냉정하지만 스포츠 비즈니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매각설 논란이 더 크게 번진 이유는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창단 이후 성적 부진이 길었고, 내부 갈등과 징계 이슈, 선수 이탈 이야기가 반복됐습니다. 여기에 경기 전 정보나 선수단 운영 관련 이야기가 외부로 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붙었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패배보다 더 불편한 게 있습니다. 팀이 지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고, 구단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설명이 부족할 때입니다.
기록으로 보면 페퍼저축은행은 리그의 균형을 넓히기 위해 들어온 팀이었습니다. 여자부 6개 구단 체제에서 7개 구단 체제로 바뀌면서 경기 수, 선수 일자리, 지역 확장성 모두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 팀이 리그에 들어오는 것과 경쟁력 있는 팀으로 자리 잡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3승, 5승, 5승의 흐름은 팬들이 기다릴 수 있는 성장 곡선이라기보다, 운영 전반을 다시 물어야 하는 신호에 가까웠습니다.
SOOP 인수로 7구단 체제는 지켰지만 숙제는 남았다
2026년 6월 2일, 한국배구연맹 이사회 및 임시총회에서 SOOP의 신규 회원 가입이 만장일치로 승인됐습니다. 이 장면으로 여자부 7개 구단 체제는 2026-27시즌에도 유지되는 흐름을 탔습니다. 구단 해체나 선수단 분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단 피한 셈입니다. 이민원 SOOP 대표이사가 구단주로, 이병호 전무가 단장으로 선임됐다는 내용도 공개됐습니다.
SOOP 입장에서 배구단은 단순한 광고판이 아닐 수 있습니다. 라이브 스트리밍, 스포츠 중계, 숏폼 클립, 팬 커뮤니티 운영 경험을 실제 프로구단에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가 전한 SOOP의 2026년 2분기 실적 관련 발언을 보면 배구단 연간 경상비용은 50억~60억원 수준으로 언급됐습니다. 이 정도 비용은 부담이지만, 플랫폼 트래픽과 광고·커머스 연결까지 계산한다면 다른 방식의 스포츠 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팬들이 바로 안심하기에는 체크할 게 많습니다. 새 구단명과 브랜드가 팬덤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받을지, 광주 연고가 안정적으로 유지될지, 감독 선임과 외국인 선수 구성에서 얼마나 빠르게 리그 평균선에 도달할지가 중요합니다. 특히 뒤늦게 시즌 준비에 들어간 팀은 선수단 컨디션, 전술 구축, 외국인 선수 적응에서 모두 손해를 안고 출발합니다. 인수 승인은 출발선이지, 전력 복구 자체는 아닙니다.
팬들이 봐야 할 다음 기록들
이제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매각설 논란은 “팔리느냐 마느냐”의 단계를 지나 “새 주인이 어떤 팀을 만드느냐”의 단계로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경기 승패만큼이나 운영 지표를 같이 봐야 합니다.
- 연고지 협약이 장기적으로 안정되는지
-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성이 시즌 전 충분히 완성되는지
-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발이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지
- 홈 관중, 온라인 중계 지표, 팬 콘텐츠가 실제 성장으로 이어지는지
- 기존 선수단 승계 이후 팀 문화가 다시 세워지는지
솔직히 말하면, 이 논란은 페퍼저축은행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기업 구단은 늘 모기업 사정과 함께 흔들립니다. 성적이 좋으면 투자가 명분을 얻고, 성적이 나쁘면 비용표가 먼저 보입니다. 그런데 팬들은 숫자만 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23연패를 보면서도 체육관에 가는 팬이 있고, 꼴찌 팀의 첫 연승을 오래 기억하는 팬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 구단이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선언보다 분명한 운영입니다. 매각설이 남긴 상처를 덮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코트 위에서 방향이 보이는 팀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