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닌의 백플립을 다시 보다가 50년 전 기록까지 따라가 봤다

얼마 전 말리닌의 경기 영상을 다시 보는데, 이상하게 쿼드러플 점프보다 백플립에서 먼저 몸이 반응했다. 점수표를 보면 더 큰 숫자는 쿼드 플립, 쿼드 러츠, 쿼드 악셀 쪽에 붙어 있다. 그런데 관중석의 온도는 달랐다. 공중에서 몸을 뒤집는 그 한 장면은 피겨스케이팅이 얼마나 오래 규칙과 쇼맨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는지 한 번에 보여줬다.
왜 하필 백플립이 이렇게 크게 보였을까
말리닌은 이미 기술 쪽에서는 설명이 많이 필요 없는 선수다. 2022년 국제 대회에서 쿼드 악셀을 성공시킨 첫 선수로 이름을 남겼고, ‘쿼드 갓’이라는 별명도 그냥 붙은 게 아니다. 2025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프리스케이팅 238.24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고, 7개의 4회전 점프를 한 프로그램 안에 넣는 식으로 남자 싱글의 난도를 밀어 올렸다.
근데 백플립은 성격이 다르다. 이 기술은 기본 점수가 없다. 성공해도 기술점에 직접 올라가는 숫자는 없다. 실패하면 넘어짐 감점과 수행 흐름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점수 계산만 하면 굳이 넣을 이유가 약하다. 그럼에도 말리닌은 넣었다. 바로 그 지점이 흥미롭다. 선수 입장에서는 위험 대비 보상이 낮은 선택인데, 관객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의 기억점이 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1976년 테리 쿠비츠카에서 시작된 긴 공백
백플립 이야기는 1976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의 테리 쿠비츠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올림픽 무대에서 백플립을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로 기록됐고, 같은 해 세계선수권에서도 이 기술을 선보였다. 그런데 국제빙상경기연맹은 이후 공중제비형 점프를 금지 요소로 묶었다. 이유는 안전이었다.
그 뒤로 백플립은 피겨의 공식 경기 안에서 묘한 존재가 됐다. 할 수는 있지만 하면 손해인 기술. 관중은 기억하지만 심판지는 반기지 않는 장면.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수리야 보날리가 한 발 착지 백플립을 보여줬을 때도 그 장면은 엄청난 상징성을 얻었지만, 당시 규정상 감점 대상이었다. 그래서 보날리의 백플립은 기술 하나라기보다 저항의 이미지로 더 오래 남았다.
그리고 2024년, ISU 총회에서 공중제비형 점프가 불법 요소 목록에서 빠졌다. 2024-25시즌부터는 적어도 규정 위반으로 벌점을 받는 기술은 아니게 된 셈이다. 1976년 금지 흐름이 시작됐다고 보면, 거의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공식 경기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말리닌이 만든 2026년의 장면
2026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에서 말리닌의 백플립은 그래서 더 크게 보였다. 팀 이벤트 남자 쇼트프로그램에서 그는 백플립을 넣었고, 98.00점으로 해당 세그먼트 2위에 올랐다. 일본의 가기야마 유마가 108.67점을 받아 앞섰지만, 미국은 팀 이벤트 전체에서 일본을 1점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가져갔다. 기록지에는 9점짜리 팀 포인트가 남았고, 팬들의 기억에는 합법 백플립의 귀환이 남았다.
개인전에서도 흐름은 극적이었다. 말리닌은 쇼트프로그램에서 108.16점을 받아 선두로 나섰다. 쿼드 플립은 높은 수행가산점을 받았고, 후반 쿼드 러츠-트리플 토루프 조합도 강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압도적인 말리닌의 길이었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은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그는 156.33점에 그쳤고, 총점 264.49점으로 8위까지 내려갔다. 우승은 카자흐스탄의 미하일 샤이도로프에게 돌아갔다. 이 장면까지 같이 봐야 말리닌의 백플립이 단순한 화제성 기술로만 남지 않는다. 최고의 기술을 가진 선수도 올림픽 압박 앞에서는 흔들릴 수 있고, 쇼맨십의 상징 같은 동작도 경기 전체를 구해주지는 못한다.
점수 없는 기술이 남긴 점수 이상의 효과
백플립은 현재 채점 체계에서 독립된 기술점이 없다. 다만 안무 흐름 안에서 프로그램의 인상을 키울 수는 있다. 피겨 채점은 기술점과 구성점으로 나뉘고, 구성점에는 스케이팅 스킬, 표현, 구성 같은 요소가 들어간다. 백플립 자체가 점수표에 큰 숫자로 박히지는 않지만, 관객 반응과 프로그램의 에너지에는 분명 영향을 준다.
- 성공 보상: 직접 기술점은 거의 없지만 프로그램의 장면성이 커진다.
- 실패 위험: 넘어지면 감점, 흐름 손상, 심리적 타격이 따라온다.
- 상징성: 1976년 이후 금지됐던 기술이 2026년 올림픽에서 합법적으로 돌아왔다.
- 말리닌 효과: 이미 최고난도 점프를 가진 선수가 쇼맨십까지 전면에 세웠다.
사실 스포츠에서 모든 가치가 점수로 환산되지는 않는다. 야구에서 비거리 큰 파울홈런이 기록상 스트라이크 하나로 남아도 경기장의 공기는 바뀐다. 농구에서 덩크가 2점에 불과해도 흐름을 흔든다. 백플립도 비슷하다. 피겨의 공식 숫자는 냉정하지만, 관중이 경기를 기억하는 방식은 훨씬 더 감각적이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도 말리닌답다
더 흥미로운 건 그 뒤의 흐름이다. 올림픽 개인전에서 8위로 밀린 말리닌은 2026년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우승했다. 프라하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에서 218.11점을 받았고, 총점 329.40점으로 세 번째 세계 타이틀을 따냈다. 그 경기에서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백플립은 관중 반응을 끌어냈다.
그래서 말리닌의 50년만의 백플립 부활은 단순한 묘기 복원이 아니다. 금지됐던 기술이 돌아왔고, 점수 없는 기술이 경기의 언어를 바꿨고, 한 선수의 성공과 실패가 그 위에 겹쳤다. 나는 이 장면이 피겨스케이팅의 다음 방향을 꽤 잘 보여준다고 본다. 숫자는 더 정교해지고, 선수들은 더 위험한 계산을 하고, 팬들은 결국 숫자와 장면을 같이 기억한다. 말리닌의 백플립이 오래 남을 이유도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