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 중견수 경쟁, 조기 종료처럼 보였던 진짜 이유

얼마 전 한화 경기를 보다가 오재원이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서는 장면을 다시 봤는데, 이상하게 ‘신인 테스트’ 느낌보다 ‘이미 계산에 넣은 선수’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보통 고졸 신인이 캠프에서 주목받아도 정규시즌에 들어가면 기회가 잘게 쪼개지기 마련인데, 오재원은 출발선부터 달랐습니다.
중견수 경쟁이 길어질 줄 알았던 이유
한화의 중견수 자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늘 숙제에 가까웠습니다. 코너 외야나 중심타선은 이름값 있는 선수들로 채울 수 있어도, 가운데 외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넓은 범위, 첫 스타트, 타구 판단, 송구 동작까지 모두 필요하고, 거기에 1번 타순까지 맡기려면 타석 내용도 버텨야 합니다.
그래서 시즌 전만 해도 이 자리는 쉽게 닫힐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이원석, 권광민, 문현빈 같은 카드가 있었고, 오재원은 아무리 1라운드 전체 3순위 신인이라도 아직 19세였습니다. KBO 기록실 기준으로 오재원은 2007년생, 우투좌타 외야수, 신장 176cm에 체중 75kg입니다. 프로 무대에서 체격보다 더 중요한 건 반복되는 실전 압박인데, 이 부분은 아무리 재능이 좋아도 바로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캠프에서 흐름이 너무 빨리 바뀌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스프링캠프부터였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서 김경문 감독은 오재원을 두고 1군에서 쓸 정도의 기량이라는 취지로 평가했습니다. 이 말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김 감독이 신인에게 공개 칭찬을 쉽게 던지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도 따라왔습니다. 오재원은 호주 멜버른 캠프 연습경기에서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3안타를 기록했고, 구단 청백전에서도 3안타를 쳤습니다. 물론 캠프 기록은 정규시즌 기록과 같은 무게로 둘 수 없습니다. 투수 컨디션, 수비 집중도, 교체 타이밍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신인 외야수가 캠프 초반부터 ‘타격감이 좋다’는 평가와 ‘중견수로 쓸 수 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건 꽤 큰 신호입니다.
사실 여기서 경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원석은 수비와 주루에서 장점이 있고, 문현빈은 타격 재능과 멀티 포지션 활용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감독 입장에서 개막 구상을 할 때 가장 끌리는 카드는 결국 ‘중견수 수비를 맡기면서 상위 타순에 세워볼 수 있는 선수’입니다. 오재원은 그 조건을 가장 빨리 충족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개막 초반 16타석이 만든 착시와 기대
정규시즌 초반 기록만 보면 기대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KBO 기록실 기준으로 오재원은 3월 3경기에서 16타석 14타수 6안타, 타율 0.429를 기록했습니다. 개막전이던 3월 28일 키움전에서는 6타수 3안타를 때렸고, 3월 31일 KT전에서는 3타수 2안타에 볼넷 2개까지 골랐습니다.
이 정도 출발이면 팬들은 당연히 생각이 빨라집니다. ‘중견수 경쟁은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화처럼 상위 타선에 강한 타자들이 모여 있는 팀은 1번 타자가 출루만 해줘도 경기 그림이 확 달라집니다. 오재원이 1루에 서 있으면 페라자, 문현빈, 강백호, 노시환으로 이어지는 타순 앞에 주자가 생깁니다. 이건 단순한 1안타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야구는 늘 여기서 장난을 칩니다. 초반 타율은 표본이 작고, 상대 배터리는 시간이 지나면 약점을 파고듭니다. 오재원에게도 그 시간이 왔습니다. 6월 초에는 1번 타순에서 타율 1할대, OPS 0.4대까지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왔고, 한화의 리드오프 자리는 다시 흔들렸습니다.
조기 종료가 아니라 조기 낙점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재원 중견수 경쟁 조기 종료’라는 표현은 조금 더 섬세하게 봐야 합니다. 경쟁이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 구단이 먼저 방향을 정한 쪽에 가깝습니다. 즉 오재원을 당장의 완성형으로 본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감수하고라도 키워야 할 중견수로 본 겁니다.
- 신인 드래프트 전체 3순위라는 투자 규모가 컸습니다.
- 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중견수 수비 가능성을 빠르게 보여줬습니다.
- 개막 초반 상위 타순 실험에서 강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 한화의 기존 중견수 고민이 워낙 길었습니다.
물론 약점도 선명합니다. 야구나라 집계 기준으로 시즌 76경기에서 타율 0.265, 출루율 0.341, 장타율 0.320, OPS 0.661, 홈런 0개, 도루 6개를 기록했습니다. 고졸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지만, 장타율 0.320은 상위 타순 고정 자원으로 보기엔 아쉬운 숫자입니다. 순수장타율도 낮고, 땅볼 비율이 높은 유형이면 상대 내야가 전진 압박을 걸 때 타구 질 싸움에서 밀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화가 기다릴 만한 선수인 이유
오재원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부진 뒤에 다시 반응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6월 7일 롯데전에서는 6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4안타 경기를 만들었습니다. 후반기에는 더 눈에 띄었습니다. 7월 7일부터 23일까지 타율 0.421, OPS 1.016을 기록했다는 보도도 있었고, 뉴시스는 후반기 8경기에서 타율 0.371, OPS 0.878 흐름을 짚었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신인은 처음 잘하는 것보다 한 번 막힌 뒤 다시 올라오는지가 더 큰 지표가 될 때가 많습니다. 상대가 약점을 찾았고, 벤치가 기용 방식을 조정했고, 선수 본인도 타석에서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안타를 만들고, 출루하고, 득점으로 연결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건 단순히 운 좋은 한 주가 아니라 적응력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오재원의 중견수 경쟁은 ‘완승’보다 ‘선점’에 가까웠습니다. 아직 수비 디테일, 장타 생산, 좌우 투수 대응, 체력 관리라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한화가 오래 찾던 답의 윤곽을 이렇게 어린 선수에게서 봤다는 건 꽤 상징적입니다. 팬 입장에서도 숫자만 보면 OPS 0.661의 신인 외야수지만, 흐름까지 보면 팀이 왜 이렇게 빨리 가운데 외야를 맡기려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저는 이 경쟁이 빨리 끝났다기보다, 한화가 드디어 오래 기다린 질문에 먼저 연필로 답을 써놓은 시즌처럼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