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예나 지명 불발, 득점왕 숫자 뒤에 남은 진짜 이야기

요즘 남자배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결과를 다시 보다가, 비예나 이름이 끝내 불리지 않은 장면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그냥 성적이 떨어진 선수라면 이해가 쉬운데, 안드레스 비예나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거든요. 2025~2026시즌에도 829점으로 정규리그 득점 2위, 공격 성공률 52.07%로 공격종합 5위에 오른 선수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왜 안 뽑혔지?’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잘해서 더 묘했던 지명 불발
비예나는 V리그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아포짓입니다. 2019~2020시즌 대한항공에서 처음 뛰었고, 2022년 12월부터는 KB손해보험의 공격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4~2025시즌에는 846점으로 남자부 득점 1위까지 찍었죠. 전 시즌에도 923점으로 득점 3위였으니, 단순히 반짝한 선수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통산 기록도 묵직합니다. 167경기 4098득점, 공격 성공률 53.93%. 외국인 선수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매 경기 일정량을 때려주는 능력’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지명 불발은 기량 저하라기보다, 구단들이 외국인 한 자리에 무엇을 기대했는지가 바뀐 사건에 가깝습니다.
KB손해보험은 왜 변화를 택했나
KB손해보험은 비예나와 재계약하지 않고 독일 출신 리누스 베버를 선택했습니다. 구단 쪽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비예나가 못해서가 아니라, 우승을 향한 변화가 필요했다는 쪽이었습니다. 실제로 하현용 감독대행도 비예나의 기량 문제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해 내린 결정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봐야 할 부분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의 간극입니다. 비예나는 정규리그에서는 꾸준했습니다. 그런데 봄배구만 가면 파괴력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2025~2026시즌 단판 준플레이오프에서는 11득점에 그쳤고, 2024~2025시즌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는 47득점, 경기당 15.67점이었습니다. 같은 시즌 정규리그 경기당 24.17점과 비교하면 낙폭이 꽤 컸습니다.
외국인 선수는 정규리그 36경기만 책임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특히 우승권을 바라보는 팀이라면 상대가 집요하게 분석하고 서브 목적타, 블로킹 위치, 수비 라인을 다 걸어 잠그는 경기에서도 마지막 한 방을 기대합니다. 비예나는 충분히 좋은 선수였지만, KB손해보험이 원한 건 안정적인 20점대 득점원보다 포스트시즌에서 판을 흔들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카드였던 셈입니다.
드래프트 판 자체도 비예나에게 불리했다
이번 2026~2027시즌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는 자리 싸움이 빡빡했습니다. 현대캐피탈은 레오, 우리카드는 아라우조, 한국전력은 베논과 재계약했습니다. 7개 구단 중 이미 3개 구단이 기존 선택을 끝낸 상태였으니, 실제 새 얼굴을 뽑는 구단은 4곳뿐이었습니다.
- OK저축은행은 카일 러셀을 선택했습니다.
- 삼성화재는 212cm 장신 자원 펠리피 호키를 택했습니다.
- 대한항공은 207cm 공격수 젠더 케트진스키를 지명했습니다.
- KB손해보험은 리누스 베버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 흐름을 보면 비예나가 밀린 이유가 조금 선명해집니다. 각 팀이 ‘검증된 득점원’만 찾은 게 아니라 높이, 서브, 포지션 유연성, 새 전술 적합성, 포스트시즌 대응력을 함께 계산했습니다. 외국인 선수 슬롯은 하나뿐이라 선택의 대가가 큽니다. 좋은 선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팀의 다음 시즌 상한선을 바꿀 선수를 고르는 일이 된 거죠.
숫자는 좋았지만 질문은 달랐다
비예나의 기록은 여전히 훌륭합니다. 829점, 공격 성공률 52.07%, 통산 4000득점 돌파. 이 정도면 대체 외국인 후보로는 언제든 상위권에 놓일 만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다른 팀 지명 가능성이 거론됐고, 그의 V리그 적응력은 큰 장점입니다.
다만 드래프트는 과거 점수표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구단들은 ‘이 선수가 잘했나’보다 ‘우리 팀이 이 선수로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나’를 묻습니다. 비예나에게 불리했던 지점은 바로 여기였습니다. 이미 잘 아는 장점만큼 한계도 노출됐고, 상대 팀들도 그를 막는 방법을 여러 시즌 동안 축적했습니다.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큽니다. 꾸준히 때려주던 외국인 공격수가 시장에서 이렇게 지나가는 건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그런데 남자배구 외국인 드래프트의 냉정함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좋은 선수와 필요한 선수는 다를 수 있고, 비예나의 지명 불발은 그 차이가 숫자보다 크게 작동한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