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노가 설영우를 감싼 날, 팬심의 선을 다시 그어봤다

얼마 전 대표팀 경기를 보다가 설영우 이름이 경기 내용보다 더 크게 소비되는 장면을 보고, 솔직히 조금 씁쓸했습니다. 풀백 한 명의 판단, 한 번의 수비 전환, 크로스 하나를 놓고 이야기하는 건 축구 팬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비판이 경기장을 벗어나 선수 개인과 가족을 향하면, 그건 더 이상 축구 이야기가 아니죠.
1-4 패배 뒤에 더 커진 설영우 논란
논란의 출발점은 2026년 9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이었습니다. 한국은 1-4로 크게 졌고, 경기 흐름도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특히 수비 라인의 간격, 전환 속도, 측면 커버 타이밍에서 아쉬운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설영우는 오른쪽 수비 라인에서 많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우루과이전 이후 팬들 사이에서는 끝까지 따라붙지 못한 장면, 파울을 기대한 듯 멈칫한 순간, 공격 전개에서 템포가 끊긴 장면이 거론됐습니다. 이런 지적 자체는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대표팀 경기는 늘 높은 기준으로 평가받고, 수비수는 실점 장면에서 더 크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일부 반응이 경기 분석을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설영우의 개인 SNS로 욕설과 가족을 향한 모욕이 담긴 메시지가 갔고, 선수는 참다못해 해당 메시지를 공개하며 선을 지켜달라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명과 계정을 그대로 드러낸 방식은 따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 전에 왜 선수가 그 정도로 몰렸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모레노의 보호 선언이 의미하는 것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은 베네수엘라전을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꽤 분명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프로 선수와 감독은 비판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비판은 축구적이고 건설적이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선수가 그런 일을 겪을 때 감독으로서 앞장서 보호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선수를 감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감독이 선수단 안팎의 압박을 관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기 계약으로 대표팀을 이끄는 임시 감독에게는 경기 결과만큼 라커룸의 공기 관리도 중요합니다. 선수 한 명이 여론의 표적이 되면, 다음 경기에서 그 선수뿐 아니라 주변 선수들의 선택까지 위축될 수 있습니다.
- 우루과이전 결과: 한국 1-4 패배
- 논란의 지점: 설영우를 향한 경기 비판과 SNS 인신공격
- 모레노 발언의 방향: 비판은 수용하되 선수 보호는 감독의 책임
- 이후 흐름: 베네수엘라전 0-0 무승부, 모레노 체제 첫 3경기 1승 1무 1패
비판과 공격은 숫자로도 갈린다
축구에서 숫자는 선수 평가의 좋은 출발점입니다. 패스 성공률, 크로스 정확도, 태클 성공, 볼 경합, 실점 관여 장면 같은 지표는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설영우처럼 측면 수비를 맡는 선수는 공격 가담과 수비 복귀를 동시에 요구받기 때문에, 한 경기 안에서도 평가가 크게 흔들립니다. 크로스 하나가 연결되면 기회 창출이고, 뒷공간 한 번이 열리면 실점 위기입니다.
그런데 숫자는 사람을 때리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루과이전 1-4 패배를 설영우 한 명에게 덮어씌우는 건 경기 구조를 너무 작게 보는 방식입니다. 모레노도 개인 실수보다 팀 전체의 실수가 더 컸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수비는 네 명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압박 시작점, 중원의 커버, 센터백과 풀백의 거리, 골키퍼의 위치까지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팬이 화날 수는 있습니다. 대표팀이 크게 지면 더 그렇습니다. 다만 화가 난다는 감정과 누군가의 가족을 욕해도 된다는 판단은 완전히 다른 층위입니다. 경기력 비판은 기록과 장면으로 남지만, 인신공격은 선수의 다음 플레이에 불필요한 짐으로 남습니다.
베네수엘라전 0-0이 남긴 또 다른 장면
10월 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전은 0-0으로 끝났습니다. 한국은 손흥민과 오현규를 앞세웠지만 전반에 공격 전개가 답답했고, 후반에도 결정적인 한 방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현규의 득점이 골키퍼와의 경합 과정에서 파울로 취소됐고, 후반 추가시간 이동경의 슈팅도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혔습니다.
설영우는 이 경기에서도 오른쪽 수비 라인에 섰습니다. 전반 막판 이강인의 침투 패스를 받아 우측에서 타이밍을 만든 뒤 크로스를 올렸고, 그 공이 손흥민을 거쳐 김민수의 슈팅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완벽한 경기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우루과이전 뒤 흔들릴 법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경기에 들어갔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팬심의 온도는 뜨거워도 선은 있어야 한다
저는 대표팀 선수가 비판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표팀 경기는 더 날카롭게 봐야 합니다. 왜 4-4-2에서 중원이 비었는지, 풀백의 전진 타이밍이 왜 어긋났는지, 손흥민과 이강인이 공을 잡는 위치가 왜 낮아졌는지 따져보는 게 팬 문화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날카로움이 사람을 겨누는 순간, 축구 이야기는 힘을 잃습니다. 모레노의 보호 선언은 설영우 한 명을 위한 방패이면서, 대표팀을 둘러싼 대화의 기준선을 다시 그은 말처럼 들렸습니다. 팬은 기록과 장면을 들고 비판할 수 있고, 감독은 선수를 보호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같이 갈 때 대표팀을 보는 재미도, 선수들이 버티는 힘도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