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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권의 마지막 등판을 보고 나니, 프로의 꿈은 실패 숫자로만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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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권의 마지막 등판을 보고 나니, 프로의 꿈은 실패 숫자로만 남지 않았다

얼마 전 선성권의 은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상하게 기록지를 한참 다시 보게 됐다. 승패 하나, 지명 여부 하나로 설명하기엔 이 선수의 시간이 꽤 복잡했기 때문이다. 야구를 오래 본 팬이라면 안다. 어떤 선수는 1군 통산 기록보다 ‘어디까지 밀어붙였는가’로 더 오래 기억된다.

선성권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투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눈에 걸렸다. 큰 키와 강한 공, 비선수 출신이라는 서사, 그리고 프로 무대를 향한 집요한 도전까지. 숫자만 보면 KBO 1군 기록은 없다. 그런데 흐름을 보면 그냥 ‘실패’라고 적기엔 아까운 장면이 많다.

197cm 투수가 던진 가능성의 속도

선성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숫자는 197cm라는 체격과 140km대 중후반의 직구다. 야구에서 키가 전부는 아니지만, 투수에게 높은 릴리스 포인트와 확장성은 분명 매력적인 재료다. 특히 정식 선수 경력이 길지 않은 투수가 147km, 148km 안팎의 공을 던졌다는 점은 스카우트와 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구속 하나로 프로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빠른 공은 입장권에 가깝다. 마운드 위에서 오래 버티려면 제구, 변화구 완성도, 주자 상황 대응, 경기 운영, 반복 가능한 투구폼이 같이 따라와야 한다. 선성권의 도전이 흥미로웠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석은 확실했지만, 그 원석을 경기력으로 꾸준히 바꾸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불꽃야구가 만든 이름, 하지만 프로는 더 냉정했다

선성권은 방송 콘텐츠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불꽃야구’에서 보여준 강한 공과 절실한 표정은 팬들에게 꽤 선명하게 남았다. 사실 스포츠 예능이 선수에게 주는 힘은 크다.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가 갑자기 관찰 가능한 선수가 되고, 팬들은 성장 과정을 같이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프로의 문은 감동 서사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KBO 드래프트와 트라이아웃의 기준은 냉정하다. 스카우트는 구속의 최고점보다 평균값을 본다. 한 경기의 임팩트보다 여러 경기에서 무너지는 지점을 본다. 특히 나이와 성장 곡선도 같이 계산한다. 이미 완성형에 가까워야 하는 나이에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면, 구단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성권의 프로 도전은 팬 입장에서도 묘한 긴장감을 줬다. “저 공이면 혹시?”라는 기대와 “프로 타자들이 그냥 두지 않을 텐데”라는 현실감이 같이 있었다. 이 균열이야말로 선성권이라는 이름을 단순한 방송 출연자로 끝나지 않게 만든 포인트였다.

기록으로 보면 더 선명한 마지막 장면

선성권의 마지막 등판으로 언급되는 경기는 화성 코리요전이었다. 공개된 내용상 그는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그 경기가 사실상 선수로서 마지막 무대가 됐다. 야구에서 마지막 등판은 늘 묘하다. 기록지에는 이닝, 투구 수, 피안타, 실점만 남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저장된다.

과거 경기 중에는 4와 3분의 2이닝 58구 1실점, 3피안타, 2볼넷 같은 기록도 있었다. 이 숫자는 꽤 많은 걸 말해준다. 완벽한 압도는 아니어도, 선발로 경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내용이다. 단순히 빠른 공만 던지는 투수에서 벗어나 투심, 스플리터, 너클커브 같은 구종을 섞으려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프로가 요구하는 건 ‘가능한 날’의 모습이 아니라 ‘안 좋은 날에도 버티는 능력’이다. 구속이 조금 떨어진 날에도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할 수 있는지, 변화구가 빠졌을 때 다음 공으로 카운트를 회복할 수 있는지, 타순이 한 바퀴 돈 뒤에도 맞춰 잡을 수 있는지. 이 질문들 앞에서 비선수 출신 투수는 훨씬 가파른 언덕을 만난다.

은퇴라는 단어가 남긴 감정

선성권은 프로 도전의 꿈을 접고 야구계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팬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건 ‘조금만 더 보면 어땠을까’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선수에게 시간은 관중석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몸은 계속 소모되고, 나이는 쌓이고, 기회는 매년 좁아진다.

솔직히 말하면 선성권의 은퇴는 낭만만으로 포장하기 어렵다.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공개적으로 말했고, 실제로 그 꿈을 위해 꽤 긴 시간을 쏟았다. 그런데 최종 목적지였던 KBO 무대에는 닿지 못했다. 이건 분명 아픈 지점이다. 동시에 그 과정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비선수 출신 투수가 어디까지 시선을 끌 수 있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회인 야구, 독립리그, 방송 야구, 트라이아웃까지 이어지는 경로는 흔한 길이 아니다. 흔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검증을 받아야 했고, 더 많은 의심도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다는 사실은 남는다.

선성권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

나는 선성권을 떠올리면 ‘성공하지 못한 도전’보다 ‘프로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 사례’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야구 팬들은 종종 구속 숫자에 설렌다. 148km가 찍히면 상상력이 바로 움직인다. 그런데 프로는 그 숫자 뒤의 반복성과 안정성을 본다. 이 간격이 선성권의 이야기를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

그의 은퇴는 하나의 문이 닫힌 사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야구라는 종목이 얼마나 잔인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지 보여준다. 재능이 있어도 늦게 시작하면 어렵고, 화제가 되어도 증명은 다시 해야 하며, 팬이 응원해도 계약서는 별개의 언어로 움직인다. 근데 그래서 스포츠 기록은 차갑게만 읽히지 않는다. 그 숫자 사이에 사람이 남기 때문이다.

선성권이라는 이름은 KBO 통산 기록표에서 길게 찾아볼 이름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프로가 되고 싶다’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밀어붙였던 투수로는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 등판 이후에도 팬들이 그의 공과 표정을 이야기하는 건, 기록에 적히지 않은 시간이 분명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성권의 마지막 등판을 보고 나니, 프로의 꿈은 실패 숫자로만 남지 않았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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