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솔직한 고백에 미국 언론 발끈한 줄 알았더니

며칠 전 김혜성의 시즌 회고를 읽다가 ‘미국 언론 발끈’이라는 표현에서 잠시 멈췄다. 무슨 충돌이 있었나 싶었는데, 현지 보도의 중심은 분노보다 김혜성의 솔직한 자기평가와 다저스에서의 다음 기회였다. 숫자를 함께 놓고 보니 그 고백이 더 무겁게 들렸다.
고백의 대상은 팀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김혜성은 2026시즌을 돌아보며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고, 스스로도 크게 실망했다고 팬들에게 전했다. 시즌을 마친 뒤에는 야구를 하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해라는 취지로 말했고, 빅리그에 계속 남지 못한 점을 특히 아쉬워했다. 꽤 강한 표현이다. 그만큼 자신이 기대했던 시즌과 실제 시즌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의 말은 다저스를 향한 불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김혜성은 다저스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고, 아쉬운 대상은 자신이라고 밝혔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다저스 전문 보도 역시 이 발언을 전하면서 타격 개선과 2027년의 역할을 짚었다. 적어도 확인되는 기사만 놓고 보면 미국 언론이 그의 고백에 화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발끈’이라는 말이 만들어낸 분위기와 실제 보도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다.
타율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출전 기회
MLB 공식 기록에서 김혜성의 2026년 성적은 43경기, 116타수 30안타다. 타율은 0.259, 출루율은 0.323, OPS는 0.651이었다. 홈런 1개와 도루 5개도 남겼다. 2025년에는 71경기에서 타율 0.280, OPS 0.699, 도루 13개를 기록했다. 타율은 0.021, OPS는 0.048 내려갔고 출전 경기는 28경기 줄었다.
타율만 보면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시즌 43경기, 131타석은 주전으로 자신의 타격을 보여주기엔 적은 기회다. 그렇다고 출전 감소를 전부 기회 부족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다저스는 이기는 데 필요한 선수 조합을 골라야 하고, 김혜성은 주어진 타석에서 꾸준한 생산성을 보여줘야 했다. 제한된 기회와 아쉬운 타격이 서로 영향을 주며 더 어려운 시즌을 만든 셈이다.
흐름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보도에 따르면 김혜성은 시즌 초 빅리그 선수단에서 밀려 트리플A로 출발했다. 4월 초 다시 올라와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5월 말 재차 내려갔다. 가을에는 디비전시리즈 선수단에 합류해 4차전 9회 수비 교체로 출전했고, 챔피언십시리즈 명단에서는 빠졌다. 시즌 내내 한 자리에서 충분한 타석을 쌓는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비와 주루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문턱
김혜성의 장점은 분명하다. 여러 수비 위치를 맡을 수 있고, 발로 경기의 속도를 바꿀 수도 있다. 2025년 13도루는 그런 쓰임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다만 다저스처럼 선수층이 두꺼운 팀에서 꾸준히 선발로 뛰려면 타석에서도 믿음을 줘야 한다. 수비 교체나 대주자 역할로 팀에 기여하는 것과 매일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다른 경쟁이다.
김혜성도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빅리그에서 살아남고 선발로 뛰려면 타격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시즌 중 그의 스윙이 달라졌고 헛스윙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선수의 자책만으로 이 문제를 읽을 필요는 없다. 타석 수가 줄면 타격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고, 반대로 타석의 결과가 흔들리면 출전 기회도 줄어든다. 다저스가 5월 말 그를 트리플A로 보낼 때 정기적인 타석을 갖게 하려 했다는 설명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2027년에는 어떤 숫자가 달라져야 할까
내가 다음 시즌에 먼저 볼 기록은 타율보다 출전 경기와 타석 수다. 주전 경쟁에 들어섰는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출루율과 OPS의 흐름이다. 올해 0.323의 출루율과 0.651의 OPS가 더 많은 타석에서도 나아진다면, 수비와 주루라는 장점을 경기 초반부터 활용할 여지가 커진다. 반대로 짧은 출장만 이어진다면 타율이 잠깐 올라도 역할이 바뀌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구단도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았다. 다저스 야구 부문 사장 앤드루 프리드먼은 김혜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올해 흔들린 스윙을 비시즌에 함께 다듬겠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호평이 선발 자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결국 경쟁에서 필요한 건 수비와 주루에 더해, 꾸준히 기회를 줄 만한 타격이다.
그래서 이번 고백은 누군가를 향한 불만보다 자신이 넘어야 할 문턱을 정확히 짚은 말로 들린다. 43경기의 아쉬움을 2027년에 얼마나 많은 타석으로 바꿀 수 있을지, 그 숫자를 따라가면 김혜성의 다음 이야기가 보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