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청문회까지 가봤더니, 한국 축구의 숫자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

얼마 전 축구 뉴스를 넘기다가 홍명보 청문회 일정을 봤는데, 솔직히 단순한 감독 한 명의 책임 공방으로만 보이진 않았다. 경기 결과는 스코어보드에 남지만, 그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은 훨씬 오래 남는다. 한국 축구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그 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대한축구협회 운영과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를 놓고 2026년 7월 30일 청문회를 열기로 한 흐름은 그래서 더 무겁다.
스코어보다 먼저 흔들린 신뢰
팬들이 화를 내는 지점은 패배 그 자체만이 아니다. 축구는 질 수 있다. 월드컵은 늘 잔인하고, 조 편성이나 부상, 컨디션, 짧은 준비 기간이 한꺼번에 덮치면 강팀도 무너진다. 그런데 이번 홍명보 청문회가 커진 이유는 성적 부진과 행정 불신이 동시에 겹쳤기 때문이다. 감독 선임 과정이 충분히 투명했는지, 전력강화위원회와 협회 의사결정 라인이 제 역할을 했는지, 클린스만 체제 실패 이후 같은 문제가 반복된 건 아닌지가 한 묶음으로 터졌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청문회 쟁점에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전 감독의 선임 과정, 협회 운영 전반, 월드컵 부진 원인, 경기 운영 책임, 홍 전 감독의 귀국 후 미국 재출국 경위 등이 포함됐다. 이건 경기 후 인터뷰 몇 마디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팬 입장에서는 ‘왜 졌나’보다 ‘왜 같은 방식으로 또 흔들렸나’가 더 답답하다.
홍명보라는 이름의 무게
홍명보는 한국 축구에서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선수 시절의 상징성, 2002년의 기억, 지도자로서 쌓아온 이력까지 합치면 팬들이 그에게 기대한 기준도 자연히 높아진다. 그래서 청문회라는 장면이 더 씁쓸하다. 레전드가 국회에서 설명해야 하는 장면은 개인의 추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 축구 시스템이 레전드의 이름을 얼마나 쉽게 방패로 쓰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의 책임은 분명히 있다. 선발, 전술, 교체 타이밍, 경기 중 대응은 감독의 영역이다. 하지만 대표팀 축구는 클럽처럼 매일 훈련하는 구조가 아니다. 감독 선임 시점, 코칭스태프 구성, 평가전 설계, 선수단 피로 관리, 협회의 지원 체계가 모두 맞물린다. 그러니 홍명보 청문회를 홍명보 개인 심판대로만 쓰면 중요한 걸 놓친다. 숫자로 보면 월드컵 탈락은 한 번의 실패지만, 행정 구조로 보면 누적된 선택의 결과다.
증인 명단이 말해주는 판의 크기
이번 청문회에는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감독이 증인으로 채택됐고, 이용수 부회장, 김승희 전무이사 등 협회 인사들도 포함됐다. 앞선 보도들에서는 증인 13명 또는 이후 추가를 거친 15명 규모가 언급됐고, 박지성 K-축구 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등은 참고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숫자만 봐도 이 사안이 감독 교체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드러난다.
- 청문회 일정: 당초 2026년 7월 22일에서 7월 30일로 변경
- 주요 쟁점: 감독 선임 절차, 협회 운영, 월드컵 부진 원인, 책임 소재
- 주요 인물: 정몽규 전 회장, 홍명보 전 감독, 협회 전현직 임원진
- 팬들이 보는 포인트: 성적보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근데 여기서 더 봐야 할 건 불출석 이슈다. 일부 핵심 인사가 해외 일정 등을 이유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보도되면서 ‘맹탕 청문회’ 우려도 나왔다. 청문회는 질문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기록을 남기는 자리다. 중요한 사람이 빠지면 답변의 밀도도 떨어지고, 팬들이 원하는 흐름의 복원도 어려워진다.
경기력 부진은 데이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스포츠 팬으로서 가장 답답한 건 이런 순간이다. 슈팅 수, 점유율, 패스 성공률 같은 경기 데이터는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표팀의 실패를 들여다볼 때는 경기 전 데이터도 같이 봐야 한다. 감독 선임까지 걸린 시간, 평가전 상대의 질, 주전 의존도, 부상자 관리, 유럽파 이동 거리, 대회 직전 전술 완성도 같은 것들이다. 이런 지표들은 중계 화면에는 잘 안 나오지만, 경기 결과에 계속 그림자를 만든다.
홍명보 청문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질문도 그렇게 가야 한다. “왜 졌습니까”라는 질문은 너무 넓다. 대신 “감독 선임 기준은 문서로 남아 있었나”, “최종 후보 비교표는 어떻게 작성됐나”, “대표팀 전술 방향과 선수 풀 분석은 누가 검증했나”, “클린스만 체제 실패 이후 재발 방지 장치는 무엇이었나”처럼 쪼개 물어야 한다. 축구도 결국 반복 가능한 프로세스가 있어야 다음 대회에서 달라진다.
팬들이 원하는 건 희생양이 아니다
사실 팬들은 누군가 한 명이 세게 혼나는 장면만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책임은 필요하다. 대표팀은 공공성이 큰 팀이고, 협회는 한국 축구의 자원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책임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사람 이름보다 구조가 남아야 한다. 어떤 절차가 무너졌는지, 누가 검증했어야 했는지, 다음 감독 선임 때 무엇을 공개할 수 있는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홍명보 전 감독은 청문회 출석과 관련해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인 것으로 보도됐다. 그 말이 단순한 태도 표명이 아니라, 당시 대표팀 안팎에서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기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한국 축구는 늘 위기 때마다 인물 교체로 뜨거워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번만큼은 스코어의 분노를 시스템의 언어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월드컵을 볼 때 팬들이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며 경우의 수만 붙잡는 대신, 준비 과정 자체를 믿고 경기를 기다릴 수 있다.
참고한 보도: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607281203000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72115480005109, 서울신문 https://m.seoul.co.kr/news/politics/2026/07/21/20260721500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