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옌청 1억대 연봉 투수의 다승 1위 질주를 따라가봤더니

요즘 KBO 기록표를 넘겨보다가 한화 왕옌청 이름에서 한 번 멈췄습니다. 외국인 에이스라고 부르기엔 계약 규모가 너무 작고, 신인급 실험 카드라고 보기엔 숫자가 너무 또렷했거든요. KBO 공식 선수 기록 기준으로 왕옌청은 2026시즌 한화 소속 좌완 투수, 연봉은 10만 달러입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1억대 연봉. 그런데 성적표에는 21경기 10승 4패, 평균자책점 3.34, 110과 3분의 1이닝, 탈삼진 88개가 찍혀 있습니다.
숫자만 놓고 봐도 꽤 재미있습니다. 다승 1위권이라는 말은 보통 비싼 외국인 투수, 국내 대표급 에이스, 혹은 강팀의 확실한 1선발에게 붙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왕옌청은 2026년 한화 아시아쿼터로 들어온 선수입니다. 기록의 무게와 연봉의 무게가 서로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눈이 갑니다.
1억대 연봉인데 10승, 이 대비가 먼저 보인다
왕옌청의 연봉 10만 달러는 KBO 외국인 선수 시장의 일반적인 에이스 가격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아시아쿼터라는 제도적 틀이 다르고, 선수 영입 구조도 기존 외국인 선수 슬롯과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팬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보게 됩니다. 이 정도 투자로 100이닝 넘게 먹어주고, 두 자릿수 승리까지 먼저 밟았다면 계산기가 켜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승수만 보면 조금 위험합니다. 승리는 팀 타선, 불펜, 수비, 경기 흐름이 함께 만들어주는 기록입니다. 선발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득점 지원이 없으면 승리가 날아가고, 반대로 흔들린 날에도 타선이 터지면 승리가 붙습니다. 그래서 왕옌청을 볼 때는 10승 자체보다 그 뒤에 붙은 110과 3분의 1이닝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21경기에서 이닝을 꾸준히 쌓았다는 건 로테이션에서 빠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팀이 그를 계산 가능한 선발 자원으로 썼다는 얘기입니다.
최근 흐름은 더 흥미롭다
기록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간은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입니다. 왕옌청은 7월 23일 KIA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승리를 챙겼고, 7월 29일 롯데전에서도 7이닝 2실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8월 4일 삼성전에서는 6이닝 무실점, 3피안타, 2볼넷, 7탈삼진으로 다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세 경기 합산으로 20이닝 4자책입니다. 평균자책점으로 환산하면 1.80입니다.
이 구간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잘 던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즌 중반 이후 선발투수는 체력, 상대 분석, 로테이션 압박을 동시에 맞습니다. 특히 처음 KBO를 겪는 투수라면 타자들이 두 번째, 세 번째로 만나면서 대응책을 들고 나옵니다. 그런데 왕옌청은 흔들린 날을 지나 다시 이닝과 실점을 안정시키는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7월 17일 키움전에서는 5이닝 7실점, 그중 자책은 3점이었지만 피홈런 2개와 피안타 7개로 고전했습니다. 바로 다음 두 경기에서 7이닝 2실점씩을 찍은 건 꽤 큰 신호입니다.
세부 숫자는 완벽보다 생존력에 가깝다
왕옌청의 시즌 WHIP는 1.41, 피안타율은 0.261입니다. 압도형 에이스의 숫자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110과 3분의 1이닝 동안 피안타 111개, 볼넷 45개를 허용했습니다. 이닝당 주자가 꽤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평균자책점 3.34와 10승 4패를 만들었다는 건 위기 관리, 경기 운영, 그리고 팀 득점 흐름이 맞물렸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탈삼진도 경기당 완전히 찍어누르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88탈삼진이면 9이닝당 약 7.18개 수준입니다. 대신 왕옌청의 기록에는 꾸준히 선발로 나와 5이닝 이상을 버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 10경기만 봐도 52이닝을 던졌습니다. 아주 긴 이닝을 독식하는 유형은 아니지만, 한화 벤치가 경기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의 길이는 제공했습니다. 사실 이게 정규시즌에서는 굉장히 큽니다. 매번 7이닝 무실점을 기대하는 투수보다, 흔들려도 로테이션을 지켜주는 투수가 팀 운영에는 더 현실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상대별 기록을 보면 과제도 선명하다
왕옌청은 두산 상대로 3경기 18과 3분의 1이닝 평균자책점 1.47, 2승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KT전도 2경기 10이닝 2승 무패, 평균자책점 3.60입니다. SSG전 역시 2경기 11이닝 평균자책점 2.45로 괜찮았습니다. 이런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쌓은 건 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NC전은 1경기 2이닝 4자책, 평균자책점 18.00으로 크게 흔들렸고, LG전도 2경기 평균자책점 4.76입니다. 삼성전은 전체 상대 기록만 보면 3경기 평균자책점 2.84로 괜찮지만 볼넷 9개가 걸립니다. 그래서 왕옌청의 다음 단계는 분명합니다. 승수 경쟁을 계속하려면 특정 매치업에서 흔들리는 날의 폭을 줄여야 합니다. 특히 볼넷이 많은 날에는 투구 수가 늘고, 5회 이후 선택지가 좁아집니다.
다승 1위라는 말 뒤에 남는 장면
왕옌청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 하나로 끝나지 않아서입니다. 1억대 연봉, 아시아쿼터, 좌완 선발, 한화 로테이션, 그리고 다승 1위권이라는 요소가 한꺼번에 붙어 있습니다. 이 조합은 꽤 낯섭니다. 보통 시즌 전 기대치가 크지 않았던 선수가 여름 이후 기록판 위쪽에 남아 있으면, 팬들은 그제야 다시 보기 시작합니다. 왕옌청이 딱 그런 케이스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승수가 같은 속도로 붙는다고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WHIP 1.41과 볼넷 45개는 언제든 실점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21경기 110이닝 이상, 최근 3경기 20이닝 4자책, 그리고 8월 4일 삼성전 6이닝 무실점은 그냥 지나칠 기록이 아닙니다. 저는 왕옌청을 볼 때마다 ‘에이스의 모양은 하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압도하지 않아도 버티고, 비싸지 않아도 이기고, 낯선 이름이어도 기록표 맨 위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수의 다음 등판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궁금합니다.
기록 기준: KBO 공식 왕옌청 선수 기록 https://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PitcherDetail/Basic.aspx?playerId=56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