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필승조가 하나씩 비워진 날들, 김서현·정우주·주현상 1군 이탈의 진짜 흐름

얼마 전 한화 경기를 보다가 7회 이후 투수 교체 타이밍에서 묘하게 손이 멈췄다. 예전 같으면 이름값만 보고도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는데, 김서현, 정우주, 주현상이라는 이름이 차례로 흔들리고 1군에서 빠지는 장면을 보니 이건 단순히 한두 경기 난조로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야구에서 필승조는 기록보다 먼저 감각으로 체감된다. 1점 차 리드에서 누가 몸을 푸는지, 볼넷 하나 뒤에 벤치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포수 미트가 낮게 깔렸을 때 투수가 그 코스를 다시 던질 수 있는지. 한화의 최근 불펜 흐름은 바로 그 감각이 흔들린 쪽에 가까웠다.
이탈은 갑자기 온 게 아니었다
한화 불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주현상이다. 2024시즌 주현상은 65경기, 71.1이닝, 8승 4패, 23세이브, 평균자책점 2.65를 남겼다. 내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선수라는 서사까지 더해져서, 숫자 이상의 신뢰를 만든 시즌이었다.
그런데 2025년 초반 흐름은 너무 빨리 꺾였다. 개막 직후 주현상은 평균자책점 20.25까지 치솟았고, 3월 27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당시 한화는 김서현을 새 마무리 카드로 세웠다. 이 장면이 중요하다. 주현상의 이탈은 단순한 선수 교체가 아니라, 한화가 뒷문 운영의 축을 바꾸기 시작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근데 필승조는 레고 블록처럼 하나 빼고 하나 끼운다고 바로 안정되는 구조가 아니다. 8회와 9회는 성격이 다르고, 동점과 2점 리드는 압박이 다르다. 한 명이 흔들리면 다른 한 명의 등판 간격, 워밍업 빈도, 심지어 선발투수의 6회 운영까지 같이 바뀐다.
김서현의 숫자는 구속보다 제구를 말한다
김서현은 공 하나만 보면 매력적인 투수다. 빠른 공, 강한 팔 스윙, 타자를 눌러놓을 수 있는 구위. 하지만 2026시즌 초반 기록은 그 장점이 경기 후반 안정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쪽을 가리켰다. 4월 말 기준 11경기에서 8이닝, 1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9.00. 여기에 볼넷 14개와 몸에 맞는 공 2개, WHIP 2.63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솔직히 불펜투수에게 WHIP 2.63은 꽤 무겁다. 1이닝을 맡기면 주자 두 명 이상을 내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뜻에 가깝다. 특히 마무리나 필승조라면 안타보다 볼넷이 더 크게 보일 때가 많다. 안타는 타자의 대응이 섞이지만, 볼넷은 투수가 카운트 주도권을 잃었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4월 14일 삼성전에서 볼넷 6개와 몸에 맞는 공 1개를 내준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이후 무실점 경기가 있었다고 해도 벤치가 보는 건 결과표 한 줄만이 아니다. 같은 실점 0이라도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 변화구 카운트 잡는 능력, 주자 있을 때 투구 템포가 다르면 신뢰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김서현의 1군 이탈은 구위 포기가 아니라 제구 회복을 위한 멈춤에 가까워 보였다.
정우주의 2년 차, 기대와 피로가 같이 보였다
정우주는 한화 불펜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름 중 하나였다. 빠른 공을 던지는 젊은 투수에게 7회나 8회를 맡긴다는 건 팀이 그만큼 높은 천장을 봤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화는 김서현, 정우주, 박상원 등을 묶어 경기 후반 승리 루트를 만들려 했다.
문제는 2년 차 시즌의 흔들림이었다. 정우주는 2026년 7월 8일 시즌 첫 1군 말소를 당했다. 전날 NC전에서 0.1이닝 3실점으로 무너진 뒤였다. 당시 시즌 평균자책점은 6.37까지 올라 있었다. 150km대 공을 던질 수 있어도, 타자가 손에서 떠나는 순간 볼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공이 많아지면 구속의 위력은 급격히 줄어든다.
- 김서현: 2026년 4월 말 11경기 평균자책점 9.00, WHIP 2.63
- 정우주: 2026년 7월 8일 시즌 첫 1군 말소, 당시 평균자책점 6.37
- 주현상: 2024년 23세이브 후 2025년 초반 부진으로 재정비
이 세 줄만 보면 단순한 부진 명단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화가 경기 후반 설계도를 계속 다시 그려야 했다는 뜻이다. 7회에 누구를 낼지 정하지 못하면 6회 2사 1, 2루에서 선발을 더 끌고 갈지, 좌완을 먼저 붙일지, 대타 카드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흔들린다.
필승조 붕괴는 팀 전체 지표로 번진다
4월 말 한화는 팀 평균자책점 5.23으로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렀고, 불펜 평균자책점은 6.57까지 올라갔다. 이 숫자는 단순히 불펜만의 성적표가 아니다. 선발투수가 6이닝 3실점으로 버텨도 후반 3이닝이 계산되지 않으면 타선은 더 일찍 점수를 내야 한다. 감독은 대주자와 대수비 타이밍을 늦추게 되고, 포수는 볼 배합에서 더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실 한화의 문제는 이름값 부족이 아니었다. 김서현은 마무리 재능이 있고, 정우주는 강한 구위를 가진 젊은 팔이며, 주현상은 이미 한 시즌을 버텨낸 경험이 있다. 문제는 세 명이 동시에 안정 구간에서 벗어났을 때 대체 플랜이 얼마나 단단했느냐다. 필승조는 개인 성적의 합이 아니라 순서와 역할의 합으로 움직인다.
팬 입장에서 더 답답한 지점
팬들이 답답해하는 이유도 이해된다. 한화는 선발진과 타선에서 기대 요소가 분명한 팀이다. 그래서 1점 차, 2점 차 경기를 놓치면 체감 손실이 더 크다. 특히 불펜 난조는 경기 하나를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경기 불펜 대기조가 바뀌고, 연투 관리가 꼬이고, 감독의 교체 판단까지 방어적으로 변한다.
그래도 이 이탈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즌 중 1군 말소는 실패 낙인이 아니라 조정 버튼일 때가 많다. 김서현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승부하는 감각을 되찾아야 하고, 정우주는 2년 차에 쌓인 타자들의 대응을 다시 넘어야 한다. 주현상은 경험이 있는 투수인 만큼 구위보다 루틴과 자신감 회복이 더 중요해 보인다.
한화 필승조의 이름표는 화려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더 센 이름이 아니라 더 예측 가능한 아웃카운트다. 9회에 155km가 찍히는 장면도 짜릿하지만, 1점 차에서 초구 스트라이크가 들어가고 땅볼 하나로 흐름을 끊는 장면이 팀을 더 오래 살린다. 김서현, 정우주, 주현상이 다시 1군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서는 날이 온다면, 그때 한화의 후반 3이닝은 숫자보다 훨씬 단단하게 느껴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