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이 코치 제안을 거절하고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기까지, 숫자로 보니 더 진한 이야기

얼마 전 김희진의 현대건설 이적 인터뷰를 다시 읽다가, 그냥 ‘베테랑의 새 출발’ 정도로 넘기기엔 숫자들이 꽤 묵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 동안 한 팀에서 뛰었던 선수가 코치 제안까지 받은 상황에서 다시 코트를 택했다는 건, 감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건 선수 경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누가 쓰느냐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코치 제안 거절, 정확히는 친정 IBK에서 온 신호였다
먼저 헷갈리기 쉬운 부분부터 짚고 가야 한다. 김희진이 거절한 코치 제안은 현대건설이 아니라 IBK기업은행 쪽에서 나온 제안으로 보도됐다. 김희진은 2025년 6월 9일 현대건설 합류 후 인터뷰에서 코치 제안을 받았고, 은퇴 흐름처럼 느꼈지만 아직 코트에서 보여주고 싶은 게 남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관련 보도는 OSEN, 스포츠Q 등에서 확인된다.
사실 구단 입장에서는 꽤 자연스러운 제안이었을 수 있다. 김희진은 IBK기업은행 창단 멤버였고, 팀의 우승 시기를 함께 만든 상징적인 선수였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로 연결되는 그림은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낯설지 않다. 그런데 김희진은 그 길을 바로 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선수 김희진’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15년 원클럽 스타가 움직였다는 것의 무게
김희진의 이적이 크게 느껴진 건 단순히 이름값 때문만은 아니다. 2011년 신생팀 우선지명으로 IBK기업은행에 입단한 뒤, 한 팀에서만 뛰어온 시간이 길었다. 15시즌 동안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는 건 팬들에게는 추억이고, 구단에는 역사다. 그런 선수가 팀을 옮긴다는 건 로스터 변동 이상의 사건이다.
기록도 말이 된다. 보도 기준으로 김희진은 V리그 여자부 통산 4221점을 기록했고, 이는 2025-2026시즌 개막 전 기준 여자부 역대 통산 득점 8위권으로 언급됐다. 여기에 2012 런던, 2016 리우, 2020 도쿄까지 세 차례 올림픽을 경험했다.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모두 소화한 이력까지 더하면, 김희진은 단순한 공격수라기보다 한국 여자배구의 전술 변화 속에서 여러 역할을 견딘 선수에 가깝다.
- IBK기업은행 창단 멤버 출신
- V리그 여자부 통산 4221점 보유로 보도
- 세 차례 올림픽 출전 경험
-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을 오간 멀티 포지션 자원
그런데 왜 현대건설이었나
현대건설 입장에서 이 영입은 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2025년 5월 26일 현대건설은 IBK기업은행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김희진을 영입했다고 발표했고, 조건은 2026-2027시즌 신인선수 2라운드 지명권과 현금으로 보도됐다. 당시 현대건설은 이다현이 FA로 흥국생명에 이적하면서 미들블로커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김희진의 전성기 운동능력을 기대했다기보다, 경험과 높이, 블로킹 감각, 상황 판단을 사온 셈이다.
근데 이 지점이 흥미롭다. 김희진은 최근 몇 시즌 동안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 2023년 2월 무릎 수술 이후 경기력 회복이 쉽지 않았고, 2023-2024시즌 14경기 19점, 2024-2025시즌 30경기 32점으로 보도될 만큼 공격 지표는 예전 김희진과 거리가 있었다. 팬들이 ‘이제 지도자 코스가 자연스럽지 않나’라고 느낄 만한 숫자였다.
그래도 현대건설은 김희진을 데려왔다. 강성형 감독도 전성기 몸 상태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몸을 만들면 미들 쪽에서 노련하게 버텨줄 수 있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역할의 크기다. 예전처럼 경기 전체를 뒤흔드는 에이스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 점수를 끊고 블로킹 위치를 잡아주며 라커룸에 무게를 더하는 베테랑. 이 정도 역할이라면 숫자 이상의 가치가 생길 수 있다.
거절의 의미는 ‘아직 끝내지 않겠다’에 가깝다
솔직히 김희진의 선택은 낭만만으로 보기 어렵다. 선수에게는 몸이 가장 냉정한 평가표다. 무릎 통증이 있고, 출전 시간이 줄고, 득점이 떨어지면 주변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말한다. 지도자 제안은 존중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선수로서는 ‘이제 내려올 때’라는 신호처럼 들릴 수 있다.
김희진이 그 신호를 거절했다는 점이 그래서 더 선명하다. 그는 현대건설 이적 후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고, 코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팬 입장에서 이 말은 꽤 세게 온다. 기록의 끝을 벤치에서 받아들이는 대신, 코트에서 직접 확인받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에서 봐야 할 숫자
김희진의 현대건설 시즌을 볼 때 단순 득점만 보면 놓치는 게 많다. 물론 득점은 가장 직관적인 지표다. 하지만 지금의 김희진에게 더 중요한 숫자는 공격 점유율, 속공 성공률, 블로킹 득점, 세터와의 호흡이 드러나는 세트별 활용 빈도다. 특히 현대건설에는 좋은 세터 자원이 있고, 베테랑 미들블로커가 짧은 구간에서 효율을 내면 팀 운영 폭이 넓어진다.
김희진이 매 경기 두 자릿수 득점을 해야 성공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1세트 중반이나 승부처에서 한두 번 블로킹 터치로 흐름을 끊고, 상대 중앙 공격을 의식하게 만드는 장면이 더 값질 수 있다. 배구는 득점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실제 흐름은 상대 세터의 선택지를 얼마나 줄이느냐에서 자주 갈린다.
그래서 나는 김희진의 코치 제안 거절을 단순한 고집으로 보지 않는다. 15년 원클럽 스타가 익숙한 자리와 안정적인 다음 경로를 내려놓고, 몸 상태와 경기력이라는 냉정한 시험대 위로 다시 올라간 사건이다. 성공 여부는 시즌 숫자가 말해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건, 김희진은 자신의 마지막 이미지를 남이 정한 속도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