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식의 기록을 다시 봤더니, 1순위 유망주가 남긴 너무 복잡한 궤적

처음 유창식을 봤을 때의 숫자는 꽤 선명했다
얼마 전 KBO 기록실에서 예전 1차급 유망주들의 성적을 넘겨보다가 유창식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그냥 실패한 유망주라고 부르기엔 숫자가 너무 크고, 사건 하나로만 기억하기엔 출발점이 너무 화려했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 광주제일고 출신 좌완. 한화가 구단 역사상 최고 수준의 계약금 7억 원을 안겼던 투수. 그 시점의 기대치는 단순한 신인 기대감이 아니라, 팀의 미래 선발 로테이션을 맡길 수 있다는 계산에 가까웠다.
유창식은 좌완이라는 희소성, 고교 시절의 존재감, 그리고 전체 1순위라는 상징이 겹치면서 입단과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에 섰다. 스포츠 팬 입장에서 이런 선수는 늘 흥미롭다. 기록이 쌓이기도 전에 서사가 먼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 무대는 기대치가 높을수록 더 냉정하다. 빠른 공 하나, 좋은 체격 하나만으로는 타자들을 계속 밀어붙이기 어렵다. 제구, 구종 완성도, 경기 운영, 멘탈까지 한꺼번에 검증받는다.
통산 기록은 기대와 현실의 간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KBO 공식 기록 기준으로 유창식의 정규시즌 통산 성적은 127경기, 16승 33패, 평균자책점 5.73, 369⅓이닝, 243탈삼진, 276볼넷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승패보다 볼넷이다. 369⅓이닝 동안 276개의 볼넷이면 이닝당 부담이 꽤 컸다는 뜻이다. 탈삼진 243개와 비교해도 볼넷 비율이 높다. 좌완 투수에게 제구 난조는 단순한 단점이 아니라, 선발로 버티는 시간을 줄이고 불펜 부담까지 키우는 문제로 이어진다.
연도별 흐름을 보면 더 또렷하다. 데뷔 시즌인 2011년에는 26경기에서 1승 3패, 평균자책점 6.69였다. 적응기라고 볼 수 있는 숫자다. 2012년에는 27경기 111⅓이닝, 6승 8패, 평균자책점 4.77을 기록했다. 이 시즌만 놓고 보면 그래도 선발 자원으로 한 번 더 기대를 걸 만했다. 100이닝을 넘겼고, 승수도 커리어 하이였다. 그런데 2013년에는 5승 10패, 평균자책점 6.78로 다시 흔들렸다. 2014년에는 평균자책점 4.14로 가장 안정된 숫자를 남겼지만, 그 시즌의 기억은 훗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 2011년: 26경기, 1승 3패, 평균자책점 6.69
- 2012년: 27경기, 6승 8패, 평균자책점 4.77
- 2013년: 25경기, 5승 10패, 평균자책점 6.78
- 2014년: 21경기, 4승 4패, 평균자책점 4.14
- 통산: 127경기, 16승 33패, 평균자책점 5.73
2015년 트레이드는 반전 카드였지만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2015년 유창식은 한화에서 KIA로 팀을 옮겼다. 트레이드는 선수에게 꽤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환경이 바뀌고, 코칭 포인트가 달라지고, 고향팀이라는 심리적 동력도 생길 수 있다. 특히 유창식은 광주 출신이었기 때문에 KIA 이적은 단순한 유니폼 변경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팬들도 다시 시작할 여지를 봤다.
그런데 기록은 냉정했다. 2015년 KIA에서 27경기에 나섰지만 54⅔이닝, 0승 8패, 평균자책점 7.90에 그쳤다. 피안타 67개, 볼넷 40개, 피홈런 9개. 이 숫자는 구위와 제구가 동시에 흔들렸다는 신호에 가깝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마운드에서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하면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빠른 승부를 하려다 장타를 맞고, 피해 가려다 볼넷이 쌓이는 패턴은 투수에게 가장 괴로운 흐름이다.
2016년 기록은 1경기, 1⅓이닝, 평균자책점 20.25로 멈췄다. 야구 기록에서 표본이 작은 숫자는 조심해서 봐야 하지만, 유창식의 경우 이 숫자는 성적 부진보다 커리어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쪽에 가깝다.
승부조작 사건은 기록의 의미까지 바꿔놓았다
유창식 이야기를 하면서 2016년 승부조작 자진신고를 빼놓을 수는 없다. KBO와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한화 소속이던 2014년 4월 1일 대전 삼성전에서 1회초 특정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방식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자진신고했다. 대가로 5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도 함께 알려졌다. 이후 경찰 조사로 이어졌고, 이 사건은 팬들이 그의 기록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실 스포츠에서 기록은 신뢰 위에서 의미가 생긴다. 평균자책점, 승수, 이닝, 탈삼진 같은 숫자는 그라운드 안에서의 경쟁이 공정했다는 전제를 깔고 읽힌다. 그런데 그 전제가 깨지면 숫자는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라 의심과 상처가 섞인 흔적이 된다. 유창식의 2014년 평균자책점 4.14는 커리어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시즌 기록이지만, 바로 그 시즌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때문에 팬들은 그 숫자를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창식이라는 이름이 남긴 씁쓸한 질문
유창식의 커리어를 다시 보면, 재능이 없어서 사라진 선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체 1순위 지명, 7억 원 계약금, 좌완 선발 기대주라는 출발점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다만 프로에서 재능은 출발선일 뿐이고, 그다음은 반복 가능한 제구와 몸 관리, 흔들릴 때 무너지지 않는 경기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 리그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태도까지 포함된다.
스포츠 팬으로서 아쉬운 건 단순히 한 선수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부분만이 아니다. 유창식의 사례는 기록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꽤 불편한 기억을 남겼다. 우리는 숫자를 보며 흐름을 읽고, 성장과 반등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런데 그 숫자의 바탕이 흔들리면 이야기를 읽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유창식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강속구 좌완 유망주의 실패담이면서, 동시에 프로스포츠가 왜 신뢰를 잃으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