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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빙속 24년 만에 노메달, 숫자를 따라가 보니 더 씁쓸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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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빙속 24년 만에 노메달, 숫자를 따라가 보니 더 씁쓸했던 이야기

얼마 전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마지막 경기를 보는데, 화면에 뜬 순위표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선수들의 표정이었다. 한국 빙속이 정말 24년 만에 올림픽 메달 없이 대회를 끝냈다는 사실은 단순한 부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기록을 챙겨보는 팬 입장에서는 “아쉽다” 한마디로 넘기기 어려운 흐름이었다.

24년 만의 노메달, 왜 크게 들렸나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처음이다. 이후 2006 토리노부터 2022 베이징까지는 끊기지 않는 메달 흐름이 있었다. 이 종목은 쇼트트랙처럼 매 대회 압도적인 기대를 받는 종목은 아니었지만,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차민규, 김민석 같은 이름들이 꾸준히 시상대 근처를 지켜왔다.

그래서 이번 노메달은 단순히 “이번 대회 운이 없었다”로 보기 어렵다. 24년이라는 숫자는 한 세대가 지나갔다는 뜻에 가깝다. 2010 밴쿠버에서 남녀 500m와 남자 10000m 금메달이 동시에 터졌던 시기를 떠올리면 더 선명하다. 그때 한국 빙속은 세계 강국들과 정면으로 속도 경쟁을 벌였고, 실제로 이겼다. 그런데 2026년에는 마지막 카드였던 매스스타트까지 시상대에 닿지 못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매스스타트도 멀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대를 모은 장면은 남녀 매스스타트였다. 정재원은 2022 베이징에서 은메달을 땄던 선수이고, 2018 평창 팀추월 은메달 경험까지 있었다. 올림픽 레이스를 아는 선수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2026년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정재원은 8분04초60으로 다섯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최종 5위에 머물렀다.

5위라는 순위는 냉정하게 말하면 나쁜 성적이 아니다. 문제는 메달권과의 간격이다. 매스스타트는 단순히 마지막 바퀴 스퍼트만으로 끝나는 종목이 아니다. 중간 스프린트 포인트, 위치 싸움, 체력 보존, 막판 진입 각도까지 전부 얽힌다. 정재원은 레이스 안에서 버텼지만, 포디움으로 들어가는 결정적인 한 번의 폭발력이 부족했다.

여자 매스스타트에서는 박지우가 결승선을 일곱 번째로 통과했지만 최종 순위는 14위였다. 이 장면이 매스스타트의 잔인함을 잘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착순과 최종 순위가 다를 수 있고, 중간 포인트를 쌓지 못하면 앞에서 들어와도 순위표에서는 밀린다. 임리원은 준결승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날까지 “그래도 한 개는 가능하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이 종목에서 멈췄다.

황금세대 이후의 공백이 숫자로 드러났다

사실 한국 빙속의 하락 신호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2022 베이징에서도 금메달은 없었다. 당시 차민규가 남자 500m 은메달, 정재원이 매스스타트 은메달, 김민석이 남자 1500m 동메달을 따내며 체면을 지켰지만, 전체 흐름은 이미 예전과 달랐다. 예전처럼 여러 종목에서 동시에 메달 후보가 나오는 구조는 아니었다.

이번 2026년에는 그 얇아진 선수층이 더 분명해졌다. 단거리에서는 세계 최정상급 스타트와 코너 속도를 가진 선수가 부족했고, 중장거리에서는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같은 전통 강국의 벽이 여전히 높았다. 매스스타트는 한국이 전략과 레이스 감각으로 버틸 수 있는 종목이었지만, 이마저도 상대국들의 분석과 대응이 촘촘해지면서 예전만큼 확실한 승부처가 되지 못했다.

  • 2002 솔트레이크시티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노메달
  • 정재원 남자 매스스타트 5위, 박지우 여자 매스스타트 14위
  • 2006 토리노부터 2022 베이징까지 이어진 메달 흐름 중단
  •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세대 이후 확실한 간판 부재

일본·중국과의 비교가 더 뼈아픈 이유

이번 대회 전체 흐름을 보면 한국만 제자리였던 게 아니라 주변 경쟁국이 앞으로 나간 그림에 가깝다. 일본은 동계 종목 전반에서 메달을 크게 늘렸고, 중국도 빙상과 설상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일본과 중국이 메달을 가져간 반면 한국은 빈손이었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장기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다. 스타트 반응, 직선 가속, 코너 기술, 고지대 훈련, 장비 세팅, 링크 적응까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선수 한 명의 재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기도 있지만, 오래 가려면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 일본은 여자 단거리와 팀 종목에서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했고, 중국은 홈 올림픽 이후 투자를 이어가며 빙상 종목 저변을 넓혔다.

한국은 쇼트트랙이라는 강력한 메달밭이 있다 보니 빙속의 위기가 상대적으로 덜 크게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같은 빙상이라도 두 종목은 완전히 다르다. 쇼트트랙은 접촉과 전술, 순간 판단의 비중이 크고, 스피드스케이팅은 랩타임의 정직함이 더 세게 작동한다. 기록이 느리면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이번 노메달은 더 솔직한 성적표처럼 느껴진다.

다음 4년은 이름보다 구조를 봐야 한다

팬으로서는 새로운 에이스 한 명이 갑자기 등장해 분위기를 바꾸는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솔직히 그런 서사는 늘 매력적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빙속에 더 필요한 건 한 명의 영웅담보다 여러 종목에서 결승권 선수를 계속 배출하는 구조다. 500m, 1000m, 1500m, 장거리, 매스스타트가 모두 다른 몸과 다른 리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가 남긴 숫자는 차갑다. 메달 0개, 24년 만의 빈손, 마지막 종목 5위와 14위. 그런데 숫자가 차갑다고 해서 이야기까지 끝난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한국 빙속을 제대로 봐야 할 시점이다. 예전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데서 멈추면 다음 올림픽도 비슷한 표정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선수 개인의 투혼만 이야기하기보다, 어떤 종목에 자원을 집중할지, 어떤 연령대 선수를 국제 무대에 빨리 올릴지, 월드컵 기록 흐름을 어떻게 관리할지까지 같이 봐야 한다.

한국 빙속은 한때 세계를 놀라게 한 종목이었다. 그래서 이번 노메달이 더 아프다. 하지만 아픈 성적표일수록 대충 넘기면 안 된다. 24년 만의 빈손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오래 미뤄둔 세대교체와 종목 운영을 숫자로 확인한 장면에 가깝다. 다음 겨울을 기다리는 팬이라면 이제 메달 전망보다 랩타임과 선수층의 변화를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한국 빙속 24년 만에 노메달, 숫자를 따라가 보니 더 씁쓸했던 이야기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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