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컬링 이중터치 논란을 따라가봤더니, 문제는 손끝보다 판정 구조였다

얼마 전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컬링 중계를 보다가 이상한 장면에서 멈칫했다. 보통 컬링은 선수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애매한 상황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는 종목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이번 캐나다 컬링 이중터치 논란은 분위기가 달랐다. 스톤 하나가 하우스까지 굴러가는 몇 초 사이에 기술, 규정, 스포츠맨십, 판정 시스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캐나다와 스웨덴전, 불씨가 된 장면
논란의 시작은 2026년 2월 13일 남자 라운드로빈 캐나다 대 스웨덴 경기였다. 캐나다의 마크 케네디가 스톤을 밀어 넣은 뒤, 스웨덴의 오스카 에릭손이 이중터치를 주장했다. 경기 결과만 보면 캐나다가 8-6으로 이겼다. 그런데 경기 후 이야기의 중심은 스코어가 아니라 케네디의 손끝이었다.
스웨덴 쪽은 스톤이 이미 릴리스된 뒤 다시 접촉이 있었다고 봤고, 케네디는 강하게 부인했다. 현장에서는 언성이 높아졌고, 캐나다는 이중터치로 공식 제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언어 사용으로 구두 경고를 받았다. 사실 컬링에서 이런 장면은 꽤 낯설다. 축구나 농구처럼 판정 항의가 경기의 일부처럼 보이는 종목이 아니라, 컬링은 선수 스스로 룰을 지킨다는 문화가 두껍게 깔린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중터치가 왜 그렇게 큰 문제인가
컬링에서 투구자는 스톤 손잡이를 잡고 미끄러지다가 호그라인 전에 스톤을 놓아야 한다. 문제는 놓는 순간 이후다. 월드컬링 규정 해석에 따르면 전진 동작 중 스톤의 화강암 부분을 건드리면 안 되고, 위반으로 판단되면 해당 스톤은 플레이에서 제거될 수 있다. 단순히 손이 스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톤의 회전, 속도, 라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물론 실제 영향은 미세할 수 있다. 손끝 접촉 하나가 8엔드 전체를 뒤집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컬링은 원래 밀리미터의 종목이다. 스톤 하나가 버튼에 2cm 더 붙느냐, 가드 뒤에 반쯤 숨느냐로 득점 구조가 바뀐다. 그래서 이중터치 의혹은 ‘작은 실수’처럼 보이면서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해지는 압박
- 캐나다 남자팀은 스웨덴을 8-6으로 이겼지만 경기 내용보다 판정 논란이 더 크게 소비됐다.
- 캐나다 여자팀의 레이철 호먼은 스위스전에서 이중터치 판정을 받아 스톤이 제거됐고, 캐나다는 7-8로 졌다.
- 이후 영국 남자팀의 바비 래미도 독일전 9엔드에서 같은 유형의 판정을 받았지만, 영국은 9-4로 승리했다.
이 흐름을 보면 캐나다만의 문제로 고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캐나다가 컬링 강국이고, 남녀 대표팀이 연달아 장면의 중심에 섰기 때문에 시선이 훨씬 날카로워졌다. 특히 캐나다 여자팀은 순위 경쟁에서 더 이상 패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스톤 제거 판정까지 받았다. 논란이 감정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 이미 깔려 있었다.
비디오 판독이 없는 종목의 딜레마
이번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봤느냐, 못 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월드컬링은 경기 중 결정은 최종적이며, 비디오로 경기를 다시 판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동시에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심판을 배치했다가, 이후에는 팀 요청이 있을 때 최소 3엔드 동안 투구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프로토콜을 조정했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컬링은 경기 리듬이 중요하다. 매 투구마다 비디오 판독을 열어두면 흐름이 끊기고, 선수들이 상대의 손끝만 보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판독 장치가 없으면 소셜미디어 영상이 사실상의 재판장이 된다. 방송 화면, 관중석 영상, 특정 각도의 클립이 뒤섞이면 선수의 의도와 실제 접촉 여부가 따로 굴러가기 쉽다.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리플레이가 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운영자는 더 복잡하다. 어떤 각도를 공식 영상으로 볼지, 접촉이 라인에 영향을 줬는지와 무관하게 무조건 제거할지, 상대 팀 요청을 몇 번까지 허용할지까지 정해야 한다. 판독을 넣는 순간 공정성이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규칙 설계가 필요해진다.
캐나다가 억울할 수 있는 지점, 그래도 남는 찜찜함
캐나다 선수들이 억울함을 느낄 여지도 있다. 남자 경기에서는 현장 관찰에서 위반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있었고, 케네디도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호먼 역시 스위스전 판정에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선수 입장에서는 평생 반복해온 딜리버리 동작이 갑자기 의심의 대상이 된 셈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스웨덴이 괜히 민감하게 굴었다고만 보기 어렵다. 영상이 퍼졌고, 비슷한 의혹이 하루 이틀 사이 여러 팀에서 반복됐다. 컬링의 신뢰는 ‘상대도 룰을 지킨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데, 그 전제가 흔들리면 작은 접촉도 크게 보인다. 특히 올림픽처럼 한 경기의 승패가 메달 레이스를 바꾸는 무대에서는 더 그렇다.
나는 이 논란을 보면서 캐나다가 악역이 됐다기보다, 컬링이 현대 스포츠 중계 환경과 정면으로 부딪힌 장면에 가깝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선수와 심판, 현장 분위기 안에서 끝났을 문제가 이제는 고화질 클립과 느린 화면, 팬들의 프레임 단위 분석으로 다시 태어난다. 스포츠맨십에 기대는 전통은 멋지지만, 그 전통만으로 올림픽 무대의 의심을 다 받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손끝 하나가 남긴 숙제
캐나다 컬링 이중터치 논란은 스톤 하나를 제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팀의 명성, 선수의 루틴, 심판의 시야, 영상 판독의 필요성까지 한꺼번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캐나다 남자팀의 8-6 승리, 여자팀의 7-8 패배, 영국 사례까지 이어진 흐름을 놓고 보면 이건 특정 팀만의 해프닝으로 접기 어렵다.
근데 나는 이런 논란이 컬링에 꼭 나쁘게만 작용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조용한 종목일수록 룰의 디테일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필요하다. 팬들은 이제 단순히 누가 이겼는지가 아니라 왜 그 스톤이 사라졌는지, 그 판정이 경기의 리듬을 어떻게 바꿨는지까지 보게 됐다. 컬링이 가진 섬세함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면, 이번 소란도 완전히 헛된 장면은 아니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