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P이 장소연 감독과 헤어지는 장면을 기록으로 다시 봤더니

얼마 전 SOOP의 여자프로배구단 인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가장 눈에 걸린 이름은 역시 장소연 감독이었습니다. 그냥 ‘새 구단이 왔으니 감독도 바뀐다’ 정도로 넘기기엔 숫자가 꽤 복잡합니다.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시절의 부진, 2025-2026시즌의 반등, 그리고 SOOP이라는 플랫폼 기업의 등장까지 한꺼번에 겹쳤거든요.
16승이라는 숫자는 분명 가볍지 않았다
장소연 감독 체제에서 페퍼저축은행은 2025-2026시즌 16승, 승점 47점을 기록했습니다. 창단 이후 최다승이었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최하위에서 벗어난 시즌이었습니다. 한국배구연맹 기록 흐름을 놓고 보면 이건 단순한 ‘조금 나아졌다’가 아닙니다. 창단 이후 계속 7위에 머물던 팀이 최소한 리그 안에서 경쟁 가능한 얼굴을 보여준 시즌이었죠.
특히 시즌 초반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11월 중순까지 6승 2패로 상위권에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이번엔 진짜 다른가?”라는 말이 나올 만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는 출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후 긴 연패가 찾아왔고, 연합뉴스 보도에서도 12월 하순 페퍼가 연패 흐름 속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는 장면이 반복됐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초반의 신선함이 시즌 중반 이후 유지되지 못했다는 점이 장소연 체제 평가를 어렵게 만든 부분입니다.
반등은 했지만 기대치도 같이 올라갔다
사실 16승은 칭찬받을 숫자입니다. 그런데 구단 운영자는 숫자 하나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전력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까지 올라갔느냐를 같이 봅니다. 조이 웨더링턴은 공격에서 확실한 비중을 가져갔고, 시마무라 하루요도 중앙에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박정아 같은 베테랑까지 있었으니, 단순히 약팀 전력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근데 여기서 평가가 갈립니다. 창단 이후 첫 탈꼴찌와 최다승은 장소연 감독의 성과입니다. 동시에 시즌 초반 상위권 흐름을 잡고도 봄 배구권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무등일보 인터뷰에서 장 감독은 선수들이 꽃을 피워낸 것 같다고 말했지만, 구단의 시선은 아마 조금 더 차가웠을 겁니다. ‘꽃이 피었다’ 다음에는 ‘얼마나 오래 피어 있느냐’를 묻게 되니까요.
SOOP의 인수는 단순한 주인 교체가 아니었다
SOOP이 페퍼저축은행 구단을 인수하면서 여자부 7구단 체제는 유지됐습니다. 이 자체는 리그 전체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해체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팀이 새 주인을 찾았고, 한국배구연맹 이사회와 임시 총회를 거쳐 새 회원으로 승인되면서 구단 운영의 판이 다시 짜였습니다.
그런데 SOOP은 전통적인 금융권 모기업과 색깔이 다릅니다. e스포츠, 스트리밍, 크리에이터 생태계에 강한 회사입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SOOP은 선수단과 팬, 스트리머가 함께하는 콘텐츠를 넓히겠다는 방향을 내놨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경기만 잘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구단을 콘텐츠 자산으로 키우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장소연 감독과의 결별은 성적표 하나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새 모기업이 들어왔고, 구단주와 단장도 새로 선임됐고, 운영 철학도 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독이 팀 전술만 잡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 방향과도 맞아야 합니다. 냉정하지만 프로스포츠에서는 꽤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장소연 감독의 시간은 실패였나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긴 어렵다고 봅니다. 장소연 감독은 해설위원 출신 지도자로 첫 프로 사령탑을 맡았고, 기존의 패배 이미지가 강했던 팀에서 최다승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기록으로 남습니다. 선수단이 계속 무너지는 팀이었다면 16승까지 가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프로 감독에게는 ‘성장시켰다’와 ‘올라서게 했다’ 사이의 간격이 있습니다. 페퍼는 분명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순위 싸움의 압박, 세터 운영의 안정감, 20점 이후 집중력, 베테랑과 외국인 선수 의존도 같은 과제가 시즌 내내 따라다녔습니다. 특히 연패 구간에서 드러난 경기 후반 불안은 감독 평가에서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성과: 창단 첫 탈꼴찌, 단일 시즌 16승, 승점 47점
- 아쉬움: 시즌 중반 긴 연패, 경기 후반 불안, 봄 배구권 진입 실패
- 변수: SOOP 인수 이후 구단 운영 방향 변화
다음 감독에게 필요한 건 이름값보다 설계도다
SOOP이 새 감독을 찾는다면 팬들이 제일 먼저 볼 건 이름값일 겁니다. 배구 팬덤은 상징적인 인물에 빠르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팀에 필요한 건 화제성 하나가 아닙니다. 페퍼 시절부터 이어진 패배 습관을 끊고, 외국인 선수 의존도를 줄이며, 국내 선수 성장 루트를 실제 경기력으로 연결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2025-2026시즌의 페퍼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습니다. 강한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리시브가 흔들리고 세터 연결이 불안해지고 20점 이후 범실이 나오면, 좋은 공격수도 혼자 시즌을 끌고 갈 수 없다. 이 흐름을 새 감독이 얼마나 빨리 고치느냐가 SOOP 첫 시즌의 분위기를 좌우할 겁니다.
장소연 감독과의 결별은 조금 씁쓸한 장면입니다. 기록만 보면 박수받을 지점이 있고, 흐름까지 보면 교체 명분도 보입니다. 그래서 더 스포츠답습니다. 숫자는 늘 말해주지만, 숫자만으로 전부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SOOP이 진짜 새 팀을 만들 생각이라면 다음 선택은 더 냉정하고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팬들은 이제 ‘새 출발’이라는 말보다 코트 위에서 달라진 장면을 보고 싶어 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