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감독이 미필 선수에 올인하는 이유, KIA의 시간표를 다시 보니

군 문제는 전력표에 적히지 않는 변수다
얼마 전 KIA 경기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인업에 적힌 이름만 보면 단순히 ‘오늘 누가 나왔나’의 문제인데, 감독 입장에서는 그 뒤에 병역, 나이, 포지션 공백, 향후 2~3년의 팀 운영까지 같이 보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범호 감독 미필 선수 올인 이유’라는 말이 조금 과하게 들려도, 막상 KIA의 현재와 다음 시즌을 같이 놓고 보면 꽤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프로야구에서 미필 선수는 단순히 아직 군대를 안 다녀온 선수가 아닙니다. 팀 입장에서는 언젠가 빠질 수 있는 전력이고, 선수 입장에서는 커리어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대표팀, 아시안게임, 상무, 현역 입대 같은 여러 갈림길을 고민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주전급으로 성장 중인 선수라면 이 변수는 더 커집니다. 당장 잘한다고 계속 쓰기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끼다가 성장 타이밍을 놓칠 수도 없습니다.
왜 지금 ‘미필 선수’가 더 중요해졌나
사실 KBO 팀 운영에서 병역 변수는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 민감해졌습니다. 선수들의 1군 데뷔 시점이 빨라졌고, 20대 초중반에 이미 주전급 성적을 내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144경기 체제에서 한 시즌을 버티려면 백업 한두 명이 아니라 실제로 1군 경기에서 버틸 수 있는 젊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KIA는 특히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우승권 전력을 이야기할 때는 중심타선과 외국인 선수, 선발진이 먼저 보이지만, 긴 시즌을 통과하는 팀은 결국 6월 이후의 체력전과 부상 공백에서 갈립니다. 이범호 감독이 젊은 미필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감정적인 ‘믿음 야구’라기보다, 시즌 중반 이후와 다음 해까지 염두에 둔 보험에 가깝습니다.
- 주전 부상 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1군 경험 확보
- 군 입대 전 성장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전략
- 아시안게임·대표팀 변수에 대비한 성적 관리
- 입대 이후 생길 포지션 공백을 미리 계산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올인’이라는 표현입니다. 올인은 무작정 밀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독이 감수할 수 있는 실패의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반복 출전 기회를 준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젊은 선수는 대타 한 타석, 대수비 한 이닝으로는 성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최소한 선발 출전과 연속 경기 경험이 쌓여야 타석 접근, 수비 위치, 주루 판단이 바뀝니다.
이범호 감독의 선택은 단기 성적과 충돌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우승 경쟁 팀이 미필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건 위험해 보입니다. 경험 많은 베테랑을 쓰는 편이 당장 실수 확률은 낮으니까요. 하지만 야구는 매일 하는 종목입니다. 한두 경기의 안정감보다 6개월짜리 로스터의 숨통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야 한 포지션에서 주전 선수가 120경기 이상을 소화한다고 해도, 남은 20경기 이상은 누군가 버텨줘야 합니다. 여기에 지명타자 활용, 대주자, 수비 강화, 더블헤더성 일정, 이동 피로까지 얹히면 젊은 백업의 가치는 숫자 이상으로 커집니다. 단순히 타율 0.250이냐 0.270이냐보다, 팀이 특정 선수 한 명에게 과부하를 걸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더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병역 혜택 가능성입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KBO가 발표하는 대표팀 명단을 보면, 국제대회에서는 미래 자원과 현재 전력이 동시에 고려됩니다. 미필 선수가 리그에서 눈에 띄는 기록과 활용도를 보여줘야 대표팀 경쟁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감독이 시즌 중 기회를 주지 않으면, 선수는 대표팀 후보군에서 설득력 있는 자료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기록으로 보면 ‘경험치 투자’에 가깝다
스포츠투아이 같은 기록 서비스를 기준으로 보면, 젊은 타자의 성장은 대개 출전 경기 수와 타석 수가 일정 수준을 넘긴 뒤에야 윤곽이 나옵니다. 초반 30타석에서 삼진이 많다고 실패로 단정하기 어렵고, 반대로 20타석에서 타율이 높다고 곧바로 주전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최소 100타석, 더 넓게는 200타석 가까이 봐야 투수들의 대응과 선수의 재대응이 드러납니다.
이범호 감독이 미필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건 ‘지금 못해도 괜찮다’는 무제한 면죄부가 아니라 이 구간을 통과시켜 보겠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큽니다. 선수는 1군 투수의 변화구 비율, 좌우 매치업, 경기 후반 불펜 공략법을 직접 맞아봐야 압니다. 퓨처스리그에서 아무리 좋은 숫자를 찍어도, 만원 관중 앞 8회 1점 차 타석은 전혀 다른 시험입니다.
수비도 비슷합니다. 내야수라면 타구 속도와 주자 스타트, 외야수라면 펜스 플레이와 중계 플레이가 1군에서 훨씬 빠르게 돌아갑니다. 한 번의 실책은 보기에는 아프지만, 그 실책을 통해 다음 위치 선정이 바뀐다면 팀은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승 경쟁 중인 팀이라면 그 비용을 무한정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감독의 역할은 믿음과 교체 타이밍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있습니다.
KIA가 노리는 건 올해만의 라인업이 아니다
KIA는 전통적으로 스타 의존도가 높은 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강한 시즌을 오래 가져가려면 내부 세대교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FA 시장에서 매번 빈자리를 채우는 방식은 비용이 크고, 외국인 선수는 포지션 제약이 있습니다. 결국 가장 효율적인 전력 보강은 팀 안에서 나오는 20대 선수입니다.
미필 선수를 빨리 키우는 건 그래서 단순한 육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입대 전에는 전력으로 쓰고, 입대 후에는 돌아올 시점을 계산하며, 복귀 후에는 다시 전성기 구간에 맞추는 장기 운영입니다. 만약 선수가 군 복무 전에 1군에서 300타석 안팎의 경험을 쌓았다면, 복귀 후 적응 속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군 문제를 미루기만 하다가 1군 경험 없이 시간이 흐르면, 팀도 선수도 애매해집니다.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답답한 장면도 나옵니다. 찬스에서 젊은 선수가 삼진을 먹거나, 수비에서 한 박자 늦는 장면을 보면 ‘왜 지금 이 선수를 쓰지?’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그 한 장면보다 시즌 전체의 체력 분배와 다음 시즌 로스터를 같이 봅니다. 특히 KIA처럼 성적 압박이 큰 팀에서 젊은 미필 선수에게 타석을 준다는 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꽤 계산된 베팅입니다.
팬이 봐야 할 포인트는 실패보다 변화다
이범호 감독의 미필 선수 활용을 볼 때는 타율 하나만 보면 재미가 반으로 줄어듭니다. 더 볼 만한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초구 스윙 비율이 바뀌는지, 좌투수 상대 타석에서 버티는지, 수비 실수 뒤 다음 타구 처리 자세가 달라지는지, 대주자로 나갔을 때 스타트 판단이 개선되는지 같은 장면입니다. 이런 변화는 박스스코어에 크게 찍히지 않지만 감독과 코치진에게는 꽤 중요한 신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전략이 KIA에 필요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우승을 노리는 팀일수록 현재 전력을 꽉 쥐고 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진짜 강한 팀은 지금 이기는 선수와 내년에 버틸 선수를 동시에 만든 팀입니다. 미필 선수에게 주는 한 타석, 한 이닝이 당장은 불안해 보여도, 어느 순간 팀의 가장 싸고 강한 전력이 되어 돌아오는 장면을 우리는 꽤 자주 봐왔습니다. KIA의 시즌을 볼 때도 이제는 승패 옆에 그 성장 그래프까지 같이 놓고 보면, 경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