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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 ‘헛된 시간’ 발언 논란을 기록으로 다시 읽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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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 ‘헛된 시간’ 발언 논란을 기록으로 다시 읽어봤더니

얼마 전 야구 커뮤니티를 보다가 최원준 이름이 다시 크게 오르내리는 걸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단순한 말실수 논쟁인가 싶었다. 그런데 댓글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팬들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가 있었다. KIA에서 오래 본 선수였고, 우승 시즌의 기억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만큼 터지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쌓여 있었다. 그래서 ‘헛된 시간’이라는 표현은 단어 하나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팬들이 발끈한 건 단어보다 맥락이었다

최원준은 2016년 KBO 1군에 데뷔한 뒤 KIA에서 외야와 내야를 오가며 쓰임새를 넓힌 선수다. 발 빠른 좌타자, 여러 포지션 소화, 상위 타순 후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런 유형의 선수는 기록지에서 홈런 30개처럼 크게 튀진 않아도 팀 운영에는 꽤 중요하다. 주전과 백업 사이, 리드오프와 하위 타순 사이를 메우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팬들이 최원준에게 기대한 그림이 훨씬 컸다는 점이다. 타율 3할을 안정적으로 치고, 20도루 이상을 기록하고, 넓은 수비 범위로 외야 한 자리를 고정하는 선수. KIA 팬들이 상상한 최원준의 완성형은 꽤 구체적이었다. 그런데 실제 커리어는 부상, 군 복무, 포지션 변화, 타격 기복이 겹치면서 직선으로 뻗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헛된 시간’으로 읽히는 발언이 나오면 팬들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받아들인다. 그 시간이 선수에게만 힘든 시간이었나, 팬들도 같이 기다린 시간 아니었나.

기록으로 보면 최원준은 실패한 선수가 아니다

사실 숫자만 놓고 보면 최원준을 가볍게 폄하하긴 어렵다. 1997년생 야수가 20대 초반부터 1군에서 꾸준히 기회를 받았고, KBO 통산 타율도 2할 후반대에 걸쳐 있다. 장타형은 아니지만 콘택트와 주루, 수비 활용도를 묶어 평가해야 하는 선수다. 특히 좌타 외야수라는 점은 어느 팀에서도 로스터 가치가 있다.

다만 팬들의 체감은 단순 통산 기록과 다르다. 스포츠에서 논란은 보통 평균값이 아니라 기대값과 실제값의 간격에서 터진다. 최원준은 ‘쓸 만한 선수’가 아니라 ‘팀의 다음 중심축’으로 기대받았다. 그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2할 후반 타율, 두 자릿수 도루, 멀티 포지션이라는 장점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 순간이 많았다.

  • 장점: 빠른 발, 좌타 콘택트, 외야 수비 활용도, 여러 타순 소화 가능
  • 아쉬움: 장타 생산력의 한계, 시즌별 기복, 확실한 고정 포지션 부재
  • 논란의 배경: 선수의 자기 회고와 팬들의 기다림이 다른 언어로 충돌

KIA라는 팀의 무게가 발언을 더 키웠다

KIA는 팬덤의 온도가 높은 팀이다. 단순히 관중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프랜차이즈 서사, 우승의 기억, 지역 정서, 타이거즈라는 이름이 가진 역사까지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KIA에서 오래 뛴 선수의 말은 늘 개인 인터뷰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특히 2024년 KIA가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가져간 시즌은 팬들에게 강한 기준점이 됐다. 김도영 같은 젊은 스타가 폭발했고, 베테랑과 불펜, 선발진이 맞물리며 팀 전체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다. 이런 시즌을 지나면 팬들은 자연스럽게 ‘누가 그 시간에 함께했는가’를 따진다. 최원준을 향한 반응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잘했느냐 못했느냐보다, 그 시간을 어떤 태도로 기억하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선수 입장에선 다른 뜻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근데 여기서 한쪽으로만 몰아가면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진다. 선수들이 말하는 ‘헛된 시간’은 팬들이 듣는 의미와 다를 수 있다. 본인은 성장하지 못한 기간,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기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시간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즉 팀이나 팬을 부정하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운동선수의 시간 감각은 일반 팬과 조금 다르다. 팬은 시즌을 추억으로 쌓지만, 선수는 그 시즌을 성과표로 받는다. 타율, 출루율, OPS, 도루 성공률, 수비 이닝, WAR 같은 숫자가 매년 남는다. 특히 20대 중후반 야수에게 몇 시즌의 정체는 꽤 크게 느껴진다. FA 시장, 주전 경쟁, 대표팀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아깝다’는 감정이 강하게 올라올 수밖에 없다.

논란이 남긴 건 말의 기술보다 기록의 냉정함이다

이번 논란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팬들도 숫자를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감정만으로 비판하는 흐름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헛된 시간이었나”라는 반응 뒤에는 KIA에서 받은 기회, 출전 경기 수, 타순 배치, 포지션 이동, 팀 성적까지 같이 놓고 보는 시선이 있었다. 팬들이 선수의 말을 기록과 대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원준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해명이 아니라 다음 시즌의 설득력 있는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야구에서 말은 오래 남지만, 더 오래 남는 건 결국 경기다. 출루율이 올라가고, 주루 판단이 안정되고, 외야 수비에서 확실한 가치를 보여주면 논란의 온도는 금방 내려간다. 반대로 기록이 따라오지 않으면 같은 발언은 계속 소환된다. 프로 스포츠가 잔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논란을 보면서 팬들이 너무 예민했다고만 보진 않는다. 동시에 선수의 자기반성을 팬들이 너무 넓게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최원준이라는 선수는 아직 기록으로 더 말할 시간이 남아 있다. ‘헛된 시간’이라는 표현이 정말 아쉬운 과거형으로 끝날지, 아니면 다음 장면을 위한 불편한 자극으로 남을지는 결국 그라운드 위 숫자가 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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