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 성추행 의혹을 기록으로 따라가 봤더니, 더 크게 보인 건 ‘관리 공백’이었다

기록표 밖에서 터진 정관장의 진짜 변수
얼마 전 여자배구 기사 흐름을 따라가다가 정관장 관련 보도를 보고 한참 멈췄다. 경기력 부진이나 연패, 세터 운영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선수단 회식 자리에서 불거진 성추행 의혹이었기 때문이다. 스포츠 팬 입장에서 이런 사안은 단순히 ‘누가 이겼나’의 문제가 아니다. 팀이 어떤 구조로 움직였고, 선수를 보호해야 할 장치가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묻게 만든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2026년 1월 V리그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선수단 회식 이후 2차 자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자리에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이 함께 있었고, 구단 사무국 직원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문제의 코치는 사실 확인 뒤 자진 사퇴했고, 고희진 감독은 이후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로 알려졌다. 아직 스포츠윤리센터 조사 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온 사안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은 끝까지 ‘의혹’과 ‘조사 중인 사안’에 맞춰야 한다.
출처를 따라가면 더 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있다. 외부 보도는 사실 확인 취재에 약 3개월이 걸렸고, 스포츠윤리센터 조사는 2026년 6월 시작됐으며 결과는 8월 말쯤 나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기 하나의 승패는 하루 만에 기록지에 남지만, 이런 문제는 드러나는 데만 몇 달이 걸린다. 그 시간 차이가 참 무겁다.
왜 ‘개별 일탈’보다 구조가 더 크게 보이나
성비위 의혹 자체도 심각하지만, 스포츠 조직에서 더 무섭게 봐야 할 지점은 침묵이 길어지는 구조다. 감독, 코치, 선수단이 같은 공간에 있었고 관리 책임자가 존재하는 상황이었다면, 팬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왜 즉시 제지되지 않았는지, 왜 바로 보고되지 않았는지, 왜 선수들이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는지 말이다.
프로팀은 성적을 내는 집단이지만 동시에 위계가 아주 강한 조직이다. 감독과 코치의 평가가 출전 시간, 포지션 경쟁, 다음 시즌 계약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 특히 여자배구처럼 로스터가 크지 않고 선수단 내부 관계가 촘촘한 종목에서는 ‘말을 꺼내는 일’ 자체가 선수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은 행위자 한 명의 문제로만 닫아버리면 안 된다. 신고 채널, 회식 운영 방식, 사무국의 현장 관리, 2차 가해 차단 장치까지 같이 봐야 한다.
KOVO 선수인권보호위원회 규정과 관련해서도 보도는 폭력·성폭력 행위를 방조하거나 은폐한 사람에게 징계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스포츠 현장에서 ‘몰랐다’는 말만으로 책임 논의가 끝나면, 다음에도 비슷한 침묵이 반복될 수 있다. 사실 몰랐는지 여부와 별개로, 몰라도 되는 구조였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성적 흐름과 팬덤의 크기까지 같이 봐야 한다
정관장은 최근 몇 시즌 동안 여자배구에서 존재감이 큰 팀이었다. 2024년에는 공식 유튜브 채널이 프로배구 최초로 구독자 10만 명을 넘겨 ‘실버 버튼’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메가와티 효과, 팀 상승세, 팬덤 확장이 맞물리면서 여자부 안에서도 눈에 띄는 브랜드가 됐다. 팬이 많아졌다는 건 응원만 커졌다는 뜻이 아니다. 구단 운영을 지켜보는 눈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2025-26시즌 흐름은 꽤 거칠었다. 보도 기준으로 정관장은 2026년 2월 22일 흥국생명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거두며 11연패를 끊었다. 하지만 2월 27일 한국도로공사전에서는 0-3으로 패했고, 당시 시즌 성적은 7승 25패, 승점 23이었다. 숫자만 보면 팀은 이미 경기력과 분위기 양쪽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추행 의혹과 감독 업무 배제까지 겹치면 코트 안 문제와 코트 밖 문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선수 기용, 훈련 집중도, 라커룸 신뢰, 팬 여론이 모두 연결된다. 배구는 랠리 스포츠라 분위기가 점수로 빨리 번진다. 한두 점 흐름이 세트 전체를 바꾸듯, 조직 내부 신뢰가 흔들리면 시즌 운영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팬이 봐야 할 다음 기록은 승점표만이 아니다
이번 사안을 스포츠 팬의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확인해야 할 기록은 승패표 밖에 있다. 누가 코트에 들어가는지,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이 얼마인지, 리시브 효율이 몇 퍼센트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구단과 연맹이 어떤 절차를 밟는지가 더 중요한 기록이 된다.
- 스포츠윤리센터 조사 결과가 언제, 어떤 범위로 발표되는지
- 가해 의혹 당사자와 관리 책임자에 대한 판단이 분리되어 이뤄지는지
- 구단의 분리 조치와 상담 채널이 사후 발표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운영되는지
- 회식·원정·훈련장 등 선수단 생활 공간의 관리 기준이 바뀌는지
- 피해자 보호와 2차 가해 차단이 공개 대응보다 우선되는지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팬덤의 태도도 꽤 중요하다고 본다. 좋아하는 팀을 감싸고 싶은 마음은 이해된다. 그런데 응원은 의혹을 흐리는 방향이 아니라, 제대로 조사하고 제대로 고치는 방향으로 가야 오래간다. 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피해 가능성을 작게 말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선수 신상을 추측하는 건 스포츠를 망치는 방식이다.
출처가 말하는 것과 아직 남은 것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내용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보도를 다음 포털이 전재한 기사, 그리고 정관장의 팬덤 규모와 시즌 흐름을 다룬 스포츠서울 기사에서 확인된다. 관련 기사: 선수 보호해야 할 감독이 오히려 방관…정관장 초유의 사태, 정관장 유튜브 실버 버튼 보도, 2025-26시즌 정관장 경기 흐름 보도.
아직 남은 건 명확하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조사 중’이라는 말 뒤에 숨어 시간을 흘려보내서도 안 된다. 정관장 성추행 의혹은 한 팀의 악재를 넘어, 프로스포츠가 선수 보호를 실제 시스템으로 갖추고 있는지 묻는 사건이 됐다. 팬으로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은 깔끔한 해명 문구가 아니라, 선수들이 불편함을 말해도 커리어가 흔들리지 않는 팀 문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