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대 은퇴식 소식을 보며 다시 꺼내본 포항의 라인 브레이커 이야기

스틸야드에서 이름이 불릴 때 떠오르는 장면들
얼마 전 포항 스틸러스 관련 소식을 보다가 김승대 은퇴식 거행이라는 문장을 보고 한동안 화면을 멈춰 봤다. 경기 결과만 확인할 때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이름인데, 포항 축구를 조금 오래 본 팬이라면 김승대라는 이름에는 장면이 꽤 많이 붙어 있다. 수비 라인 뒤로 빠져나가는 첫 움직임, 패스가 들어가기 전 이미 반 박자 먼저 출발하던 타이밍, 그리고 스틸야드에서 유독 자연스럽게 보였던 그 움직임 말이다.
김승대는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 유스 흐름을 밟고 2013년 프로에 데뷔했다. 이 배경은 단순한 출신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포항은 선수를 사서 완성하는 팀이라기보다, 팀의 방식 안에서 선수를 길러내고 다시 쓰는 데 강한 구단이다. 그런 팀에서 김승대는 포항 축구가 좋아하는 공격수의 전형에 가까웠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공간을 읽는 속도와 침투 타이밍 하나만큼은 확실한 무기였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한 전성기의 질감
사실 김승대의 이름이 리그 전체에 크게 각인된 건 2014년이었다. 그해 K리그에서 30경기 10골 8도움을 기록했고, 영플레이어상까지 받았다. 공격 포인트만 봐도 훌륭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방식이다. 당시 김승대는 공을 오래 끌고 다니며 경기 지배력을 보여주는 선수라기보다, 동료가 고개를 드는 순간 이미 수비 뒷공간을 찌르고 있는 선수였다. 그래서 별명도 ‘라인 브레이커’였다.
10골 8도움이라는 수치는 공격수에게 꽤 균형 잡힌 숫자다. 골만 몰아넣은 시즌도 아니고, 도움만 쌓은 시즌도 아니다. 직접 마무리할 수 있고, 마지막 패스도 넣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포항처럼 짧은 패스와 전환 속도를 중시하는 팀에서는 이런 선수가 있으면 공격의 폭이 확 달라진다. 미드필더가 볼을 잡았을 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고, 상대 수비 라인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떠났다가 돌아온 선수, 그래서 더 포항답다
김승대의 커리어가 흥미로운 이유는 계속 직선으로만 가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15년 이후 중국 무대, 전북, 강원 등을 거쳤고 포항으로도 여러 차례 돌아왔다. 어떤 팬에게는 이 이동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근데 스포츠 커리어는 늘 예쁜 그래프처럼 올라가기만 하지 않는다. 팀 사정, 전술 변화, 선수의 몸 상태, 리그 흐름이 다 섞인다.
그래도 김승대가 포항으로 돌아왔을 때마다 팬들이 반응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포항의 문법을 알고 있었다. 2017년 복귀 때도 그랬고, 2022년 다시 포항 유니폼을 입었을 때도 그랬다. 2022시즌에는 27경기 6골 1도움을 기록했고, K리그 통산 40골 40도움 클럽에도 가입했다. 이 기록은 꽤 상징적이다. 40-40은 단순히 한 시즌 반짝한 공격수가 만들기 어렵다. 여러 시즌 동안 골과 도움을 동시에 쌓아야 하고, 역할이 바뀌어도 공격 관여도를 유지해야 가능하다.
- 2013년 포항에서 프로 데뷔
- 2014년 K리그 30경기 10골 8도움, 영플레이어상 수상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 2022년 K리그 통산 40골 40도움 클럽 가입
- 2023년 포항 스틸러스 주장 선임
은퇴식이 단순한 작별 행사가 아닌 이유
은퇴식은 기록표의 마지막 줄을 읽는 행사가 아니다. 오히려 한 선수가 어떤 식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았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다. 김승대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포항 유스 출신, 전성기의 폭발력, 이적과 복귀, 베테랑으로서의 주장 역할까지 한 선수 안에 여러 챕터가 들어 있다. 그래서 은퇴식이라는 단어가 조금 무겁게 다가온다.
포항 팬들이 김승대를 기억하는 방식도 단순히 득점 장면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 센터백 사이를 벌리는 움직임, 측면에서 안쪽으로 파고드는 타이밍, 공이 오지 않아도 계속 라인을 흔드는 수고. 이런 플레이는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항상 크게 잡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기를 통째로 보면 공격 전체의 리듬을 바꾸는 장면이 많았다. 숫자 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선수를 다시 보게 된다.
김승대가 남긴 건 속도가 아니라 타이밍이었다
김승대를 빠른 선수로만 기억하면 조금 아쉽다. 물론 스피드는 강점이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언제 뛰느냐였다. 침투형 공격수에게 반 박자는 엄청난 차이다. 너무 빨리 뛰면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너무 늦으면 수비가 몸을 붙인다. 김승대가 가장 좋았던 시기의 포항은 이 반 박자를 팀 전체가 공유했다. 패스를 넣는 선수와 뛰는 선수가 같은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김승대 은퇴식은 한 선수의 작별이면서, 포항이 잘해왔던 축구의 한 장면을 다시 꺼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팬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만 남지는 않는다. 30경기 10골 8도움의 시즌, 40-40 클럽, 주장 완장, 그리고 스틸야드에서 받는 박수까지. 김승대라는 선수는 포항 축구 안에서 꽤 분명한 좌표를 찍고 떠나는 이름으로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