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여 배구가 남긴 6위의 진짜 이야기, 숫자로 다시 보니 더 흥미로웠다

얼마 전 U-17 여자배구 대표팀 경기를 챙겨보다가, 점수판보다 벤치 쪽에 더 오래 시선이 갔습니다. 이승여 감독이 선수들을 다루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거든요. 크게 흔들리는 장면에서도 과하게 몰아붙이기보다 흐름을 끊고, 다시 자기 리듬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승여 배구’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한 감독 이름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라, 한국 여자배구 유망주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6위라는 숫자만 보면 놓치는 것들
2026 국제배구연맹 U-17 여자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은 최종 6위에 올랐습니다. 5·6위전에서 이탈리아에 1-3으로 졌지만, 대회 전체 흐름을 보면 아쉬움보다 수확이 먼저 보입니다. 조별리그 D조에서 한국은 5전 전승, 승점 15를 기록했습니다. 세트 득실도 15승 4패였습니다. 단기 대회에서 이 정도 안정감은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상대 구성이었습니다. 한국은 이탈리아, 대만,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알제리와 같은 조였습니다. 이름값만 봐도 편한 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푸에르토리코, 대만, 이탈리아, 도미니카공화국을 모두 3-1로 잡았고, 알제리전은 3-0으로 끝냈습니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를 이긴 뒤 최종 순위 결정전에서 다시 만나 패했다는 점은, 어린 선수들이 대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변수를 마주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승여 감독의 배구는 왜 눈에 남았나
이승여 감독의 이력을 보면 선수 육성과 현장 감각이 함께 보입니다. 발리박스 기록 기준으로 그는 선수 시절 아웃사이드 히터였고, 미도파와 수원시청, 부천시체육회 등을 거친 뒤 지도자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금천중에서 오랜 기간 선수들을 지도했고, 2025년 U-16 대표팀, 2026년 U-17 대표팀 감독으로 연결됐습니다. 한 세대를 길게 본 지도자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실 유소년 대표팀은 성인 대표팀과 다릅니다. 전술 완성도만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몸이 자라는 선수들이고, 경기마다 감정의 진폭도 큽니다. 여기서 감독의 역할은 작전 타임에 한두 문장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선수를 언제 믿고, 어떤 순간에 부담을 나눠줄지까지 봐야 합니다. 이승여 배구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에이스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는 상황에서도 팀 전체의 밸런스를 계속 붙잡으려 했습니다.
손서연의 득점, 그리고 팀의 구조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손서연입니다. 선명여고 소속의 아웃사이드 히터인 손서연은 대회 내내 강한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서울신문 보도와 대회 기록 흐름을 보면 푸에르토리코전 28점, 대만전 17점, 이탈리아전 23점, 도미니카공화국전 23점, 필리핀전 19점, 튀르키예전 24점으로 매 경기 공격의 중심에 섰습니다. 5·6위전 이탈리아전에서도 팀 내 최다인 20점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손서연만 보면 반쪽짜리 해석이 됩니다. 알제리전에서는 장수인이 13점, 어민서가 12점을 기록했고, 손서연은 1세트만 뛰고도 6점을 보탰습니다. 이 장면은 꽤 중요합니다. 에이스의 체력을 관리하면서도 다른 공격 루트를 실험했다는 뜻이니까요. 단기 토너먼트에서 8강 이후를 바라보려면 한 명의 득점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리시브가 흔들릴 때 하이볼을 처리할 선수, 중앙에서 한 박자를 줄일 선수, 서브로 상대 리듬을 깨는 선수가 같이 나와야 합니다.
- 조별리그 성적: 5전 전승, 승점 15
- 조별리그 세트 기록: 15승 4패
- 16강 필리핀전: 3-0 승리
- 8강 튀르키예전: 1-3 패배
- 5·6위전 이탈리아전: 1-3 패배, 최종 6위
졌지만 약해 보이지 않았던 튀르키예전
8강 튀르키예전은 이번 대회의 분기점이었습니다. 한국은 첫 세트를 25-21로 가져갔고, 2세트도 25-27까지 끌고 갔습니다. 세트 스코어만 보면 1-3 패배지만, 경기 초반 한국이 강팀을 상대로 먼저 압박을 걸었다는 점은 그냥 넘기기 어렵습니다. 다만 세트가 길어질수록 튀르키예의 높이와 힘, 그리고 블로킹 이후 전환 속도가 더 크게 작동했습니다.
이런 경기는 어린 선수들에게 꽤 잔인하면서도 좋은 교재가 됩니다. 국내 무대에서는 통하던 공격 각도가 국제무대에서는 블로커 손끝에 걸리고, 좋은 리시브라고 생각했던 공도 상대 서브 압박 앞에서는 흔들립니다. 근데 바로 그 지점에서 성장의 방향이 보입니다. 한국이 세계 상위권으로 가려면 공격수 한 명의 파괴력뿐 아니라, 첫 터치의 질과 세터의 선택지, 후위 수비 후 재공격의 속도를 같이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승여 배구가 남긴 다음 장면
스포츠경향 보도에 따르면 이승여 감독은 대회 뒤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현재 중·고교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평가도 남겼습니다. 이런 말은 흔한 덕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번 대회 숫자를 보면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24개 팀이 나온 세계선수권에서 6위, 조별리그 전승, 강호 이탈리아 상대 1승 1패. 이 정도면 단순한 ‘깜짝 선전’으로만 소비하기엔 아깝습니다.
물론 여기서 바로 성인 대표팀의 반등을 예고하는 건 성급합니다. 유소년 대회 성과가 그대로 성인 무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중간에 체격 성장, 부상 관리, 진학과 소속팀 환경, 출전 시간 문제가 복잡하게 끼어듭니다. 특히 여자배구는 고교 이후 프로와 실업, 대학 경로가 선수마다 다르게 열립니다. 좋은 재능이 좋은 경기 경험을 계속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따라와야 합니다.
그래도 이번 이승여 배구는 오랜만에 ‘다음 세대’를 구체적인 숫자로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손서연의 득점력은 눈에 띄었고, 장수인과 어민서 같은 다른 카드도 대회 안에서 자기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이 조별리그 5경기를 모두 잡았다는 사실은 선수들이 한 경기 반짝한 게 아니라, 일정 전체를 버틸 힘을 보여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6위를 꽤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메달은 없었지만, 기록 뒤에 다음 이야기가 분명히 남은 대회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