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RTU 여정을 다시 보니, 한 번의 패배보다 선명했던 숫자들

얼마 전 김상욱의 RTU 기록을 다시 훑어보다가, 이 선수의 커리어는 단순히 이겼다 졌다로 읽기엔 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Road to UFC라는 무대는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보다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았는지가 더 오래 남는 대회입니다.
김상욱은 ‘프로그맨’이라는 별명처럼 체력, 압박, 버티는 힘이 먼저 떠오르는 파이터입니다. UFC 공식 프로필과 경기 기록 기준으로 2025년 RTU 시즌4에 들어갈 때 그는 이미 30대 초반의 베테랑이었고, 2023년 시즌2에서 룽주에게 판정패를 당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25년의 재도전은 신인의 패기보다는, 실패를 한 번 겪은 선수가 자기 게임을 얼마나 고쳐왔는지 보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2023년 패배가 남긴 숙제
김상욱의 RTU 이야기를 보려면 2023년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시즌2 라이트급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룽주에게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죠. 스코어는 30-26, 29-28, 29-28. 숫자만 보면 완패와 접전이 같이 섞인 모양입니다. 한 명의 채점표에서는 크게 밀렸고, 두 명의 채점표에서는 한 라운드 차 싸움이었습니다.
그 경기에서 드러난 건 분명했습니다. 김상욱은 클린치와 그래플링으로 흐름을 끊을 수 있었지만, 상대가 먼저 타격 볼륨을 쌓고 데미지를 만들 때 라운드를 가져오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MMA에서 ‘잘 버틴다’는 건 장점이지만, 채점 스포츠에서는 버티는 장면만으로 라운드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결국 압박을 점수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시즌4 첫 경기, 카미야전의 의미
2025년 5월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RTU 시즌4 오프닝 라운드에서 김상욱은 카미야 다이치를 2라운드 3분 53초 엘보 TKO로 잡았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건 피니시 시간보다 방식입니다. 상대는 유도 기반 그래플러였고, 김상욱 입장에서는 먼저 넘어뜨리고 누르는 그림만 고집하기보다 엉킨 상황에서 우위를 찾아야 했습니다.
2라운드에 흐름이 확 넘어간 장면은 김상욱의 장점이 잘 보인 경기였습니다. 초반 그래플링 공방을 버티고, 상대 체력이 떨어지는 구간에서 포지션을 뒤집고, 마운트 크루시픽에 가까운 통제 이후 팔꿈치로 경기를 끝냈습니다. 이건 단순한 화끈한 승리가 아니라 ‘압박을 데미지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2023년의 숙제를 일정 부분 풀어낸 경기였습니다.
- 상대: 카미야 다이치
- 결과: 김상욱 2라운드 3분 53초 TKO승
- 포인트: 그래플링 수비 이후 상위 포지션 장악, 엘보 피니시
런야웨이전, 위기 다음에 나온 피니시
준결승은 더 흥미로웠습니다. 2025년 8월 22일 런야웨이를 상대로 김상욱은 2라운드 3분 42초 리어네이키드 초크 승리를 거뒀습니다. 기록만 보면 깔끔한 서브미션승인데, 실제 흐름은 그렇게 편하지 않았습니다. 런야웨이는 보디 공격으로 김상욱의 페이스를 흔들었고, 김상욱도 위험한 구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상욱이 보여준 건 ‘다시 잡는 능력’이었습니다. 타격전에서 계속 맞불을 놓기보다 케이지 압박, 테이크다운, 백 포지션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다시 꺼냈습니다.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끝난 장면은 기술 하나의 성공이라기보다, 위기 이후에도 자기 강점으로 경기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RTU 토너먼트에서 이 대목은 꽤 큽니다. 짧은 준비 기간, 낯선 상대, 이동과 계체 변수가 겹치는 환경에서는 완벽한 경기보다 플랜이 깨졌을 때 회복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김상욱은 카미야전에서 포지션 우위를 데미지로 바꿨고, 런야웨이전에서는 흔들린 뒤에도 서브미션 루트를 완성했습니다.
돔 마르 판과의 결승, 아쉬웠지만 설명되는 패배
2026년 1월 31일 현지 기준 UFC 325에서 열린 RTU 시즌4 라이트급 결승은 돔 마르 판의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끝났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2월 1일에 가까운 일정이었고, 김상욱은 UFC 계약이 걸린 마지막 문턱에서 멈췄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꽤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돔 마르 판은 토너먼트 내내 판정승으로 올라온 선수였습니다. 말하자면 상대를 압도적으로 부수는 타입이라기보다, 라운드마다 필요한 장면을 빼앗는 쪽에 강했습니다. 김상욱이 그래플링을 시도할 때 짧은 거리에서 엘보와 타격으로 점수를 만들고, 클린치가 풀린 뒤에는 중앙에서 다시 흐름을 가져가는 운영이 좋았습니다.
김상욱에게 아쉬웠던 건 테이크다운 시도 자체보다 ‘성공 이후의 고정 시간’이었습니다. UFC 프로필에 집계된 주요 타격 수치만 봐도 김상욱은 분당 유효타 5.11회, 흡수 5.82회로 꽤 활발한 교환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테이크다운 정확도는 낮게 잡혀 있고, 평균 경기 시간은 10분을 넘습니다. 즉 많이 부딪치고 오래 싸우는 선수인데, 최상위 관문에서는 그 부딪침을 라운드 소유권으로 바꾸는 정밀도가 더 필요했습니다.
김상욱 RTU가 남긴 진짜 흐름
김상욱의 RTU 시즌4는 실패담 하나로 닫히지 않습니다. 카미야전 TKO, 런야웨이전 서브미션, 돔 마르 판전 판정패까지 이어지는 세 경기에는 분명한 흐름이 있습니다. 초반에는 레슬링과 체력으로 상대를 눌렀고, 준결승에서는 위기를 넘어 피니시를 만들었고, 결승에서는 라운드 운영이 더 세밀한 선수에게 밀렸습니다.
이후 김상욱은 2026년 6월 AFC 무대에서 키릴 호로베츠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둔 기록도 남겼습니다. RTU 결승 패배 이후 바로 흐름이 끊긴 게 아니라, 다시 경기 시간을 채우며 승리를 가져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30대 파이터에게는 폭발적인 성장보다 약점의 폭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더 현실적인 관전 포인트입니다.
솔직히 김상욱을 볼 때 가장 흥미로운 건 화려한 하이라이트보다 경기 안에서 버티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제는 버티고 되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UFC 계약선 바로 앞까지 갔던 선수라면, 다음 단계에서는 클린치 압박 후 이탈 타격, 테이크다운 성공 뒤 30초 이상 유지하는 능력, 라운드 막판 인상적인 장면 만들기가 더 또렷해야 합니다.
김상욱 RTU 여정은 ‘아깝게 떨어졌다’보다 ‘어디까지 통했고, 어디서 막혔는지’가 선명한 사례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야기가 끝난 느낌은 아닙니다. 이 선수의 다음 경기는 승패보다도, 결승에서 드러난 몇 가지 숫자가 실제 움직임으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는 재미가 클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