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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식 기록을 다시 읽어봤더니, ‘7억 좌완’이라는 별명 뒤에 남은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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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식 기록을 다시 읽어봤더니, ‘7억 좌완’이라는 별명 뒤에 남은 숫자들

얼마 전 한화의 옛 좌완 유망주들을 떠올리다가 유창식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야구팬이라면 이 이름을 가볍게 지나치기 어렵다. 광주일고, 2011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계약금 7억 원, 그리고 ‘제2의 류현진’이라는 부담스러운 수식어까지. 기대감만 놓고 보면 당시 한화 마운드의 미래를 통째로 맡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유창식의 프로 기록을 다시 보면, 이야기는 꽤 복잡하다. 단순히 실패한 유망주라고만 부르기엔 2012년과 2014년에 보여준 가능성이 분명 있었고, 반대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이유도 숫자에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KBO 기록실 기준으로 유창식의 1군 통산 성적은 127경기, 369과 3분의 1이닝, 16승 33패, 평균자책점 5.73이다. 탈삼진은 243개였고 볼넷은 276개였다. 이 볼넷 숫자가 그의 커리어를 읽는 데 꽤 중요한 단서다.

전체 1순위 좌완에게 붙었던 무거운 기대

유창식은 1992년생 좌완 투수다. 광주화정초, 무등중, 광주제일고를 거쳐 한화에 입단했다. 당시 고교 무대에서 보여준 구위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140km대 후반의 직구, 좌완이라는 희소성, 큰 체격, 그리고 큰 경기 경험까지 더해지니 스카우트 리포트가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금 7억 원도 그냥 붙은 숫자가 아니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신인 계약금 상위권에 해당했고, 한화 입장에서는 프랜차이즈의 다음 세대 좌완 에이스 후보를 데려온 셈이었다. 문제는 그 기대가 선수가 프로에서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주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7억팔’이라는 별명은 팬들의 관심을 끌기엔 좋았지만, 어린 투수에게는 매 등판마다 점수판보다 먼저 따라붙는 압박이었을 것이다.

2012년, 가능성이 가장 또렷했던 시즌

유창식의 시즌별 기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해는 2012년이다. 27경기에 나와 111과 3분의 1이닝을 던졌고, 6승 8패 평균자책점 4.77을 기록했다. 지금 감각으로 보면 아주 압도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당시 20세 좌완이 10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는 점은 꽤 의미가 있다.

그해 탈삼진은 82개, 볼넷은 79개였다. 여기서 유창식이라는 투수의 매력과 불안이 같이 보인다. 공 자체는 타자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는 능력,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제구력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었다. 탈삼진과 볼넷이 거의 같은 수준이라는 건, 구위로 버티는 날과 스스로 무너지는 날의 간격이 컸다는 뜻이다.

그래도 2012년은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좌완 선발이 111이닝을 던지고, 리그 적응의 흔적을 남겼다. 사실 이 정도 시즌을 보낸 20세 투수라면 다음 단계는 명확했다. 볼넷을 줄이고, 피홈런을 관리하고, 5이닝 투수에서 6이닝 투수로 넘어가는 것. 팬들이 유창식에게 기대했던 그림도 딱 그 지점이었다.

숫자가 말하는 진짜 약점, 볼넷과 이닝 소화

유창식의 통산 기록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승패보다 제구다. 369과 3분의 1이닝 동안 볼넷 276개. 9이닝당 볼넷으로 환산하면 약 6.7개다. 이 정도면 선발로 긴 호흡을 가져가기 상당히 어렵다. 좌완 파워피처가 어느 정도 볼넷을 감수하는 유형이라 해도, 매 경기 주자를 쌓아놓고 버티는 구조가 반복되면 투구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 2011년: 39이닝, 볼넷 25개, 평균자책점 6.69
  • 2012년: 111과 3분의 1이닝, 볼넷 79개, 평균자책점 4.77
  • 2013년: 71과 3분의 2이닝, 볼넷 54개, 평균자책점 6.78
  • 2014년: 91과 3분의 1이닝, 볼넷 72개, 평균자책점 4.14

재미있는 건 2014년이다. 평균자책점만 보면 4.14로 커리어에서 가장 좋았다. 그런데 볼넷은 72개였다. 91이닝 조금 넘게 던지면서 볼넷이 이 정도면 내용이 편안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실점을 어느 정도 막았다는 건 위기관리 능력이나 피홈런 억제에서는 버틴 구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4년 피홈런은 2개뿐이었다. 근데 볼넷이 너무 많으니, 좋은 흐름이 길게 이어지기 힘들었다.

KIA 이적 이후 흐름이 끊긴 시간

2015년 유창식은 트레이드를 통해 KIA로 옮겼다. 한화는 유창식, 김광수, 오준혁, 노수광을 보냈고 KIA는 임준섭, 박성호, 이종환을 내주는 4대3 트레이드였다. 광주 출신 투수가 고향 팀으로 간다는 이야기만 보면 반전의 무대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록은 차가웠다.

2015년 KIA에서 유창식은 27경기, 54와 3분의 2이닝, 0승 8패, 평균자책점 7.90을 남겼다. 탈삼진 34개, 볼넷 40개. 이전보다 이닝은 줄었고, 제구 문제는 여전히 따라왔다. 2016년에는 1군 1경기에서 1과 3분의 1이닝만 던졌고 평균자책점 20.25로 시즌 기록이 멈췄다.

이 시기의 유창식은 단순히 구속이나 구위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선발 후보로 키워야 할 투수였지만, 이미 팀을 옮길 만큼 평가가 흔들렸고, 새 팀에서도 확실한 보직을 잡지 못했다. 유망주가 성장 곡선을 타려면 구단의 인내, 선수의 건강, 보직의 안정성, 본인의 멘탈이 같이 맞아야 한다. 유창식은 그 중 여러 축이 동시에 흔들린 케이스에 가깝다.

기록 너머에 남은 불편한 장면

유창식을 이야기할 때 승부조작 사건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한화 소속이던 2014년 경기에서 첫 이닝 볼넷과 관련된 조작에 가담한 사실을 이후 자진 신고했다. KBO 상벌위원회는 2017년 1월 유창식에게 3년 실격 처분을 내렸다. 자진 신고가 감경 사유로 작용했지만, 프로 스포츠에서 경기 신뢰를 훼손한 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커리어는 더 씁쓸하다. 야구적으로만 봐도 제구가 잡히지 않은 미완의 좌완이라는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신뢰 문제까지 겹치며 팬들이 기록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스포츠에서 숫자는 성적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과정을 거쳐 쌓였는지를 묻는 흔적이기도 하다. 유창식의 통산 16승과 5.73이라는 평균자책점은 그래서 더 무겁게 읽힌다.

솔직히 유창식이라는 이름은 한화 팬들에게도, KBO를 오래 본 사람들에게도 한 가지 감정으로만 남기 어렵다. 전체 1순위 좌완을 향한 기대, 2012년에 보였던 가능성, 끝내 잡히지 않았던 제구, 그리고 경기의 신뢰를 흔든 사건까지 한 선수의 이름 안에 같이 들어 있다. 기록을 다시 읽어보니 더 선명해진 건 하나다. 재능은 출발선을 앞당겨줄 수 있지만,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게 만드는 건 결국 제구와 반복성, 그리고 마운드 위 신뢰라는 사실이다.

유창식 기록을 다시 읽어봤더니, ‘7억 좌완’이라는 별명 뒤에 남은 숫자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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