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환 4위에도 상대 존중, 0.98점 차이 뒤에 남은 진짜 이야기

얼마 전 차준환의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남자 싱글 결과표를 다시 보는데, 4위라는 숫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0.98점 차이였습니다. 메달 하나를 가른 간격이 1점도 안 됐다는 건, 피겨에서 점프 착지 하나의 흔들림만으로도 순위표가 얼마나 잔인하게 바뀌는지 보여주죠.
4위였지만 기록은 분명히 앞으로 갔다
차준환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총점 273.92점으로 4위에 올랐습니다. 쇼트프로그램 92.72점, 프리스케이팅 181.20점이 합쳐진 점수였습니다. 동메달을 딴 일본의 사토 슌은 274.90점. 둘 사이의 차이는 0.98점이었습니다.
금메달은 카자흐스탄의 미하일 샤이도로프가 291.58점, 은메달은 일본의 가기야마 유마가 280.06점으로 가져갔습니다. 차준환은 시상대 바로 아래에 섰지만, 한국 남자 피겨 올림픽 최고 성적을 다시 썼습니다. 2018 평창 15위, 2022 베이징 5위, 2026 밀라노·코르티나 4위. 순위만 놓고 봐도 성장 곡선이 꽤 선명합니다.
문제의 장면은 쿼드 토루프였다
프리 프로그램에서 차준환은 첫 점프 쿼드러플 살코를 잘 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4회전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 착지에서 넘어졌습니다. 연합뉴스와 KBS 보도에 따르면 이 장면에서 수행점수 손실이 크게 발생했고, 감점 1점까지 붙었습니다.
그럼에도 흐름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트리플 악셀, 트리플 플립-싱글 오일러-트리플 살코 같은 요소를 이어가며 프로그램을 끝까지 끌고 갔습니다. 피겨에서 큰 실수 뒤에 다음 점프까지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차준환은 그 구간을 버텼습니다.
- 총점: 273.92점
- 프리스케이팅: 181.20점
- 기술점수: 95.16점
- 프로그램 구성점수: 87.04점
- 동메달과 차이: 0.98점
상대를 존중한 태도가 더 오래 남았다
사실 0.98점 차 4위라면 억울함을 앞세우기 쉬운 상황입니다. 팬 입장에서도 “그 점프만 버텼다면”이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죠. 근데 차준환의 반응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실수 하나를 크게 아쉬워하면서도, 그 실수 역시 자기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JTBC 인터뷰에서 그는 실수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표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메달을 놓친 아쉬움을 심판이나 경쟁자 쪽으로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토 슌의 동메달, 가기야마 유마의 은메달, 샤이도로프의 금메달이 모두 각자의 경기 결과라는 걸 인정한 채 자기 연기를 말했습니다. 차준환 4위에도 상대 존중이라는 키워드가 붙는다면, 바로 이 지점 때문입니다.
점수표로 보면 더 아까운 경기
ISU 결과표 기준으로 차준환의 프리 순위는 5위였습니다. 쇼트에서는 6위였고, 최종 순위는 4위였습니다. 즉 쇼트와 프리 모두 압도적인 1위권 점수는 아니었지만, 큰 대회에서 흔들린 선수들이 많았던 밤에 전체 완성도로 순위를 끌어올린 경기였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프로그램 구성점수입니다. 차준환은 오래전부터 점프만 뛰는 선수가 아니라 음악 해석과 스케이팅 질감으로 점수를 쌓는 타입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이번에도 기술점수에서 손실이 있었지만, PCS 87.04점은 그의 장점이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통한다는 신호였습니다.
베이징 5위와 밀라노 4위의 차이
2022 베이징에서 차준환은 한국 남자 피겨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선수였습니다. 5위도 당시에는 역사적인 성적이었죠. 그런데 2026년 4위는 느낌이 다릅니다. 이제는 “잘했다”를 넘어 “메달권과 실제로 겨뤘다”는 단계입니다. 0.98점은 격차라기보다 거의 같은 레이스 안에 있었다는 표시처럼 보입니다.
피겨는 기록 경기이면서도 상대 경기입니다. 내 점수가 높아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선수들의 구성과 수행도 함께 봐야 합니다. 샤이도로프가 291점대까지 올라섰고, 가기야마가 280점대를 찍은 판에서 차준환은 273점대로 버텼습니다. 사토와는 1점 미만. 이 정도면 운이 없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메달권 실력에 실제로 닿아 있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4위라는 숫자가 아쉽지만 가볍지는 않다
스포츠 팬으로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꼭 메달 수여식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놓친 장면, 다시 일어나는 장면, 그리고 자기보다 앞선 선수를 인정하는 태도가 더 오래 남습니다. 차준환의 이번 4위가 그랬습니다.
물론 선수 본인은 누구보다 아쉬웠을 겁니다. 0.98점이면 잠을 설치게 만드는 숫자니까요. 그래도 그가 보여준 건 단순한 아쉬움의 표정이 아니라, 자기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선수의 얼굴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4위가 꽤 단단한 기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메달은 없었지만, 차준환이 세계 정상권 선수들과 같은 문장 안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 경기에서 충분히 증명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