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은 뽑히고 이동경은 빠진 날, 대표팀 명단을 다시 읽어봤더니

얼마 전 대표팀 명단을 보다가 가장 오래 눈이 간 이름이 황희찬, 그리고 빠진 이름이 이동경이었다. 그냥 ‘누가 뽑혔다, 누가 빠졌다’로 넘기기엔 숫자가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026년 3월 유럽 원정 평가전 명단에서 홍명보 감독은 황희찬을 다시 불렀고, K리그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이동경은 제외했다. 대한축구협회 발표 기준으로 이 일정은 코트디부아르전과 오스트리아전이었다. 월드컵을 앞둔 실전 리허설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이 명단은 단순한 평가전 명단보다 무게가 컸다.
황희찬 발탁은 이름값보다 역할값에 가까웠다
황희찬 발탁을 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프리미어리그 경험이다. 그런데 사실 이 선택을 단순히 ‘유럽파니까 뽑았다’로 보면 조금 얕다. 홍명보 감독은 황희찬이 부상 회복 뒤 실제로 경기에 나섰고 득점까지 했다는 흐름을 언급했다. 몸 상태 확인이 어느 정도 됐다는 뜻이다.
황희찬의 대표팀 내 가치는 기록지에 찍히는 골 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왼쪽, 오른쪽, 중앙 침투를 모두 가져갈 수 있고, 전방 압박을 시작하는 타이밍도 빠른 편이다. 특히 손흥민, 이강인, 이재성처럼 공을 오래 다루는 자원 옆에서는 뒷공간을 찢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황희찬은 그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선수다.
물론 리스크도 있었다. 소속팀 울버햄프턴이 어려운 흐름에 있었고, 황희찬 개인도 시즌 내내 완전히 안정적인 리듬이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래도 대표팀 관점에서는 ‘컨디션 100점짜리 새 얼굴’보다 ‘전술 안에서 이미 검증된 강한 카드’를 택한 셈이다.
이동경 제외가 더 시끄러웠던 이유
이동경 제외는 팬들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지난 시즌 K리그1 MVP급 활약, 13골 12도움이라는 생산성, 그리고 대표팀에서도 득점 경험이 있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탈락보다 발탁 쪽에 더 가까워 보이는 선수였다.
그런데 대표팀 명단은 리그 베스트11을 그대로 옮겨 적는 방식이 아니다. 이동경은 라인 사이에서 공을 받고, 왼발로 방향을 바꾸고, 박스 근처에서 마지막 패스나 슈팅을 만드는 유형이다. 장점이 선명한 만큼, 같은 공간을 쓰는 선수들과의 조합 문제가 생긴다. 이강인, 이재성, 홍현석, 배준호, 엄지성 같은 2선 자원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누가 남은 퍼즐을 채우느냐’가 중요해졌다.
홍명보 감독도 이동경 제외를 선수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대표팀 구성의 문제로 설명했다. 이 말은 냉정하지만 꽤 정확하다. 축구에서는 좋은 선수 11명을 모아도 좋은 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월드컵 직전 단계에서는 중복되는 장점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기능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숫자로 보면 더 아쉬운 K리그 비중
이번 명단에서 눈에 띈 또 하나의 장면은 K리거 비중이었다. 당시 명단에 포함된 국내파는 많지 않았고, 필드 플레이어 기준으로 보면 더 좁아졌다. K리그를 꾸준히 보는 입장에서는 이동경 제외가 단순한 개인 탈락이 아니라 리그 전체 평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동경은 울산과 김천을 거치며 공격 포인트를 꾸준히 쌓았다. 리그에서 10골 이상과 두 자릿수 도움을 동시에 기록한 2선 자원은 흔하지 않다. 이런 선수가 빠졌다는 건 감독이 리그 생산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기준을 강하게 보고 있다는 신호다.
- 황희찬: 국제 경기 경험, 전방 압박, 뒷공간 침투, 멀티 포지션
- 이동경: K리그 생산성, 왼발 킥, 라인 사이 연결, 세트피스 활용도
- 대표팀 선택 기준: 현재 컨디션뿐 아니라 조합, 역할 중복, 월드컵 상대 유형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이동경이 한 번 더 테스트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남는다. K리그에서 만든 숫자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월드컵 조별리그를 앞두고 실험 폭을 줄여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 간극이 이번 명단 논쟁의 중심이었다.
황희찬과 이동경은 다른 질문지를 받았다
황희찬에게 던져진 질문은 ‘몸이 올라왔느냐’에 가까웠다. 이미 대표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부상 회복, 경기 출전, 득점이라는 흐름이 확인되자 발탁 명분이 생겼다.
반면 이동경에게 던져진 질문은 ‘지금 대표팀 구성에서 꼭 필요한 유형이냐’였다. 이건 훨씬 까다로운 질문이다. 리그에서 잘해도, 대표팀의 현재 조합 안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 있다. 특히 2선은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경쟁이 빡빡한 구역이다. 이름값도, 유럽 경험도, 전술 적응도 모두 부딪힌다.
그래서 이 명단은 황희찬의 승리, 이동경의 실패처럼 읽기보다 대표팀이 월드컵을 앞두고 어떤 축구를 하려는지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는 게 맞다. 빠르게 전환하고, 압박 강도를 유지하고, 여러 포지션을 오갈 수 있는 선수를 높게 본 선택이었다.
그래도 숫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동경이 리그에서 계속 공격 포인트를 쌓는다면 대표팀 문은 다시 열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선수는 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카드가 될 수 있다. 황희찬 발탁과 이동경 제외가 남긴 여운은 그래서 꽤 오래간다. 대표팀 명단은 늘 현재의 답안지처럼 보이지만, 몇 경기만 지나도 전혀 다른 채점표가 나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