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조성민 기록을 다시 읽어봤더니, 1998년 전반기가 더 선명했다

얼마 전 오래된 요미우리 투수 기록을 넘기다가 조성민이라는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야구선수 조성민은 늘 비극적인 서사로 먼저 불리곤 하지만, 기록표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짧았다. 그런데 짧은 만큼 밀도가 있었다. 특히 1997년과 1998년의 숫자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체격과 기대치부터 이미 보통 유망주가 아니었다
조성민은 1973년생 우완 투수였다. 공식 기록에 남은 신체 조건은 194cm의 큰 키, 우투우타. 신일고와 고려대를 거친 길도 당시 엘리트 코스 그대로였다. 신일고 시절에는 전국대회에서 존재감을 크게 알렸고, 대학 진학 뒤에는 박찬호, 임선동, 박재홍 등과 함께 1992학번 황금세대의 한 축으로 묶였다.
그가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을 때 기대치가 컸던 것도 그래서다. 계약금 1억5000만 엔, 연봉 1200만 엔 규모의 계약은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일본 최고 인기 구단이 한국의 대형 우완을 미래 전력으로 본 사건에 가까웠다. 지금처럼 해외 진출 사례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체감은 더 컸다.
요미우리에서 남긴 숫자는 짧지만 강했다
조성민의 일본프로야구 통산 성적은 53경기, 11승 1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다. 투구 이닝은 158과 1/3이닝, 탈삼진은 127개. 통산 승수가 크지는 않다. 그런데 평균자책점 2점대, 이닝당 주자 허용을 가늠할 수 있는 흐름, 그리고 선발과 불펜을 모두 맡았다는 점을 같이 보면 그냥 반짝 출전한 외국인 투수로 처리하기엔 아깝다.
1997년은 마무리 쪽에 가까웠다. 22경기에서 28이닝을 던졌고 1승 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했다. 더 눈에 띄는 건 탈삼진 30개다. 28이닝 30탈삼진이면 9이닝당 9.6개 수준이다. 당시 막 1군 무대에 올라온 한국인 투수가 요미우리 불펜에서 이 정도 삼진 능력을 보였다는 건 꽤 강한 신호였다.
- 1997년: 22경기, 1승 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9
- 1998년: 15경기, 7승 6패, 평균자책점 2.75
- NPB 통산: 53경기, 11승 1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
1998년은 조성민의 야구가 가장 선명했던 시즌이다
진짜 흥미로운 구간은 1998년이다. 조성민은 이 해 선발로 돌아서 15경기에서 104와 2/3이닝을 던졌다. 7승 6패, 평균자책점 2.75, 탈삼진 83개. 여기서 더 강하게 들어오는 숫자는 완투 6회와 완봉승 3회다. 등판 15경기에서 완투가 6번이면 선발로서 경기 자체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을 보여준 셈이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104와 2/3이닝을 15경기에 던졌다는 것도 꽤 묵직하다. 경기당 거의 7이닝이다. 단순히 공이 빨랐던 투수가 아니라 긴 이닝을 버티고, 타순을 여러 번 상대하고, 실점을 억제하는 선발투수의 언어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숫자만 떼어 놓으면 조성민의 전성기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다.
흐름을 바꾼 건 부상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1998년 올스타 무대를 전후해 팔꿈치 부상이 찾아왔고, 조성민의 커리어 그래프는 급격히 꺾였다. 1999년에는 1군 등판 기록이 없었고, 2000년에는 10경기 14이닝, 2002년에는 6경기 11과 2/3이닝만 던졌다. 2000년 평균자책점 3.86, 2002년 평균자책점 2.31만 보면 아주 무너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닝 수가 너무 적었다.
투수에게 부상은 단순히 구속 몇 km가 빠지는 문제가 아니다. 등판 간격, 변화구 감각, 마운드에서의 확신까지 같이 흔든다. 조성민의 경우 더 아쉬운 건 부상 전 지표가 이미 선발투수로 자리 잡을 만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1998년의 6완투, 3완봉은 그래서 더 오래 눈에 남는다.
한화 복귀 기록이 보여준 현실감
2005년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KBO 리그에 돌아온 장면은 팬들에게 꽤 묘했다. 이름값은 컸지만 몸의 시간은 이미 예전과 달랐다. KBO 통산 기록은 35경기, 69이닝, 3승 4패, 4홀드, 평균자책점 5.09다. 83피안타, 34볼넷, 30탈삼진이라는 세부 기록을 보면 주자를 자주 내보냈고, 삼진으로 압도하는 유형도 아니었다.
그래도 2007년에는 12경기에서 43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4.19를 남겼다. 숫자만 보면 화려한 복귀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근데 이 시기의 조성민을 보는 포인트는 승패보다 역할 변화다. 요미우리 시절의 그는 높은 타점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대형 우완이었다면, 한화 시절의 그는 경험과 제구로 버티려는 투수에 가까웠다.
- KBO 통산: 35경기, 3승 4패 4홀드, 평균자책점 5.09
- 2005년 한화: 16경기, 2승 2패 4홀드
- 2007년 한화: 12경기, 43이닝, 평균자책점 4.19
야구선수 조성민을 기록으로 다시 부르면
조성민을 긴 커리어의 누적형 선수로 보기는 어렵다. 승수, 이닝, 타이틀을 길게 쌓은 선수는 아니었다. 대신 고점의 모양이 또렷했다. 1997년 불펜에서 삼진을 잡고 세이브를 올린 투수, 1998년 선발로 100이닝 넘게 던지며 2점대 평균자책점과 완봉 3회를 남긴 투수. 그 두 해만으로도 당시 기대가 왜 그렇게 컸는지 설명이 된다.
솔직히 조성민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너무 무겁다. 하지만 기록을 따라가 보면 조금 다른 감정도 생긴다. 아쉬움만 있는 선수가 아니라, 실제로 높은 곳까지 올라가 봤던 선수였다는 감정이다. 야구는 긴 누적의 스포츠지만, 어떤 선수는 짧은 고점 하나로도 시대의 기억에 남는다. 조성민의 1998년은 딱 그런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