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과 힐리어드, 홈런 1개 차 승부가 이렇게 뜨거워질 줄은 몰랐다

얼마 전 순위표를 보다가 홈런 부문 숫자에서 눈이 오래 멈췄다. 김도영과 샘 힐리어드의 간격이 고작 1개. 야구에서 홈런 1개는 한 타석이면 뒤집히는 차이인데, 시즌 막판의 1개는 이상하게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특히 이 승부는 단순히 누가 공을 더 멀리 보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김도영은 KIA 타선의 상징처럼 시즌을 끌고 왔고, 힐리어드는 kt 타선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며 막판까지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같은 홈런 경쟁이라도 두 선수가 쌓아온 장면과 팀 사정이 달라서 보는 맛이 꽤 진하다.
1개 차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
10월 초 KBO 개인 타이틀 경쟁 흐름을 보면 홈런왕 레이스는 거의 끝까지 숨을 고르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10월 5일 기준으로 김도영이 42홈런, 힐리어드가 41홈런, 오스틴 딘이 40홈런이었다. 1위부터 3위까지 차이가 2개뿐이니, 한 경기 멀티홈런이면 판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였다.
이후 기록표에서는 김도영이 43개, 힐리어드가 42개로 다시 1개 차 흐름이 이어졌고, 힐리어드가 라팍 2연전 첫 타석에서 43호를 터뜨리며 압박을 더했다. 숫자만 보면 간단하다. 그런데 시즌 막판에는 상대 배터리의 승부 방식, 팀 순위 싸움, 잔여 경기 수가 전부 홈런왕 레이스의 일부가 된다.
김도영 쪽에서 유리하게 보였던 지점은 잔여 경기였다. 당시 KIA는 kt보다 남은 경기가 더 많았다. 홈런왕 경쟁에서 타석 수는 꽤 현실적인 무기다. 아무리 장타력이 좋아도 기회가 줄면 따라잡기 어렵고, 반대로 타석이 많으면 침묵이 길어져도 한 번 터질 여지가 남는다.
김도영의 시즌은 홈런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김도영의 무서운 점은 홈런 숫자가 혼자 튀어나온 기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득점, 장타율, 중심 타선에서의 존재감까지 함께 따라왔다. 40홈런을 넘긴 순간부터 이 시즌은 개인 커리어의 큰 장면이 됐고, 100타점과 100득점 고지까지 연결되며 단순한 거포 이미지보다 훨씬 입체적인 시즌이 됐다.
사실 김도영은 타석에서 주는 압박이 조금 다르다. 홈런을 경계해 바깥쪽으로 피해 가면 출루와 주루로 흔들 수 있고, 가운데로 몰리면 한 번에 담장을 넘길 수 있다. 그래서 투수 입장에서는 그냥 장타 하나만 막으면 되는 타자가 아니다. 홈런왕 레이스에서 김도영이 가진 가장 큰 힘도 이 지점이다. 상대가 정면 승부를 피할 이유가 많을수록, 그 한가운데 들어오는 실투 한 개의 가치가 더 커진다.
다만 막판에는 체력과 집중력도 변수다. 시즌 내내 타선의 무게를 짊어진 선수는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피로가 쌓인다. 게다가 개인 타이틀이 눈앞에 보이면 타석의 리듬이 미세하게 바뀔 수 있다. 홈런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팬도 알고 상대도 알고 본인도 안다. 그 긴장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마지막 몇 경기의 차이를 만든다.
힐리어드는 왜 끝까지 무서운 추격자인가
힐리어드는 홈런만 따라붙은 선수가 아니다. 타점 부문에서도 선두권을 달렸다. 10월 5일 기준 128타점으로 단독 1위였고, 경쟁자들과도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장타력이 좋다는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준다. 득점권에서 타석이 자주 왔고, 그 기회를 실제 점수로 바꿨다는 뜻이다.
홈런왕 경쟁에서 힐리어드의 장점은 몰아치기다. 시즌 막판에 한 번 페이스가 올라오면 짧은 기간에도 숫자를 빠르게 줄일 수 있다. 실제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힐리어드의 추격은 꽤 날카로웠다. 김도영이 앞서가고 있어도 안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힐리어드는 한 경기에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타자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팀 맥락이다. kt는 순위 경쟁 속에서 매 경기 득점 생산이 절실했고, 힐리어드는 중심에서 해결해야 하는 타자였다. 타이틀 욕심만으로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는 상황이다. 팀 승부와 개인 기록이 동시에 걸린 타석은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상대 배터리도 쉽게 걸러낼 수 없다. 뒤에 있는 타자, 점수 차, 주자 상황이 승부를 강제로 만든다.
오스틴까지 끼어든 삼각 구도도 변수였다
이 레이스를 김도영과 힐리어드 둘만의 이야기로 보면 약간 아쉽다. 오스틴도 40홈런 고지를 넘어서며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특히 장타율에서는 오스틴과 김도영이 0.003 차이로 맞붙은 시점도 있었다. 홈런 숫자와 장타율이 동시에 엮이면 MVP 논의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홈런왕 경쟁은 보통 1위와 2위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3위가 한 경기 차로 붙어 있으면 투수들의 승부 선택도 더 복잡해진다. 특정 타자를 피한다고 해서 레이스가 잠잠해지는 게 아니다. 다른 선수가 홈런을 치면 압박은 다시 선두에게 돌아간다. 이게 막판 개인 타이틀 경쟁의 재미다. 숫자는 개인 기록인데, 흐름은 리그 전체가 함께 만든다.
- 김도영은 잔여 경기와 전체 공격 생산력에서 강점이 있었다.
- 힐리어드는 타점 생산과 막판 몰아치기에서 위협적이었다.
- 오스틴은 홈런과 장타율 양쪽에서 레이스의 긴장을 키웠다.
홈런왕보다 더 오래 남는 장면
개인적으로는 이 승부가 딱 1개 차라서 더 좋다. 5개, 6개 차로 벌어진 경쟁은 대단한 시즌의 확인에 가깝지만, 1개 차는 매 타석이 사건이 된다. 평범한 플라이도 순간적으로 관중의 숨을 멈추게 하고, 파울 홈런 하나에도 순위표가 떠오른다.
김도영이 앞서가느냐, 힐리어드가 뒤집느냐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 레이스가 흥미로운 진짜 이유는 두 선수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즌의 마지막 페이지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도영은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스타의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고, 힐리어드는 타점과 장타를 함께 끌고 가는 외국인 거포의 파괴력을 증명하고 있다.
홈런 1개 차 승부는 기록표에서는 아주 얇은 간격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안에는 잔여 경기, 타석 수, 투수의 선택, 팀 순위, 선수의 피로와 욕심이 전부 들어 있다. 그래서 이 경쟁은 숫자보다 장면으로 오래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시즌 끝에 누가 맨 위에 서든, 2026년 막판 KBO를 챙겨본 팬이라면 김도영과 힐리어드의 이름을 같은 줄에서 떠올리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