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양창섭이 흔들린 삼성 5선발 자리, 숫자로 따라가 보니 더 아픈 이야기

얼마 전 삼성 경기를 보다가 5선발 차례가 돌아오는 순간부터 묘하게 긴장감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선발 로테이션에서 다섯 번째 자리는 원래 어느 팀이든 조금 불안한 자리다. 그런데 삼성의 경우는 단순히 한 명이 못 던졌다기보다, 이승현과 양창섭이라는 서로 다른 가능성이 번갈아 흔들리면서 팀 전체 운영의 숨통을 건드렸다는 점이 더 크게 보였다.
5선발은 빈칸이 아니라 시즌의 체온계다
야구에서 1~3선발은 팀의 얼굴에 가깝다. 팬들도 이름을 듣는 순간 대략 어느 정도 이닝을 기대할 수 있는지 감이 온다. 문제는 5선발이다. 이 자리는 화려한 에이스 자리는 아니지만, 한 시즌을 길게 끌고 가는 팀에는 정말 중요하다. 5이닝 3실점만 꾸준히 해줘도 불펜 운영이 달라지고, 다음 경기 선발의 부담도 줄어든다.
삼성은 2026시즌 초반부터 이 자리를 두고 양창섭과 좌완 이승현을 놓고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보도 흐름을 보면 양창섭은 시범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출발이 좋았고, 이승현도 선발 후보로 계속 이름을 올렸다. 겉으로 보면 선택지가 둘이나 있는 행복한 고민처럼 보였다. 근데 실제 시즌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후보가 많다는 건 좋지만, 확실한 답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승현의 12실점, 단순 난조보다 컸던 충격
이승현의 4월 8일 KIA전 기록은 숫자만 봐도 꽤 세다. 2⅔이닝 11피안타, 2피홈런, 8사사구, 12실점. 선발투수에게 3회를 넘기지 못한 경기는 흔히 있다. 그런데 피안타와 사사구가 동시에 폭발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맞아 나가면서도 존 안에서 승부하는 유형의 난조가 아니라, 카운트 싸움부터 흔들린 경기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12실점이라는 결과만 보면 하루 사고처럼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5선발 경쟁 중인 투수에게는 그 하루가 너무 비싸다. 선발 후보는 잘 던질 때보다 안 좋을 때 얼마나 버티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3회 이전에 무너지면 불펜은 사실상 비상 근무에 들어간다. 시즌 초반이라도 이런 경기가 반복되면 벤치가 선발에게 줄 수 있는 여유가 빠르게 줄어든다.
- 투구 이닝이 짧으면 불펜 소모가 바로 늘어난다.
- 사사구가 많으면 수비 리듬까지 같이 무너진다.
- 홈런을 맞으면 실점 속도가 빨라져 경기 플랜이 깨진다.
이승현에게 더 아쉬운 건 좌완 선발이라는 희소성이다. 좌완 선발 한 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상대 라인업 구성에도 변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장점이 살아나기 전에 제구와 위기 관리가 먼저 흔들리면, 벤치는 불펜 전환이나 2군 조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양창섭은 버텼지만 완전히 잠그지는 못했다
양창섭의 흐름은 이승현과 조금 다르다. 4월 7일 KIA전에서 5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화려하진 않아도 선발로서는 최소한의 일을 한 경기다. 같은 시리즈에서 이승현이 크게 무너졌기 때문에 양창섭의 5이닝 3실점은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시즌 중반에는 더 좋은 장면도 있었다. 매일신문 보도 흐름을 보면 양창섭은 6월 말 ‘붙박이’ 선발로 언급될 정도로 반등했고, 롯데전 9이닝 1피안타 무실점 완봉승 같은 강렬한 경기까지 남겼다. 이 정도면 단순한 임시 선발이 아니라 로테이션 자원으로 다시 평가받을 만했다.
그런데 5선발 문제는 한 경기의 최고점보다 평균값이 중요하다. 완봉승은 엄청난 플러스지만, 다음 등판에서 조기 강판되거나 볼넷이 늘어나면 로테이션의 안정감은 다시 흔들린다. 양창섭에게 늘 따라붙는 질문은 구위 자체보다 지속성이다. 좋은 날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고 빠르게 범타를 유도한다. 반대로 안 좋은 날은 결정구가 애매해지면서 투구 수가 불어난다.
8월의 장면이 더 씁쓸했던 이유
8월 22일 흐름은 삼성의 5선발 고민을 다시 드러낸 장면이었다. 일간스포츠는 이승현이 120일 만에 5선발 기회를 잡았지만 두 차례 악송구로 흔들렸고, 결국 양창섭으로 교체됐다고 전했다. 이 장면이 아픈 건 투구 내용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발투수가 수비 실책성 플레이까지 겹치면, 벤치가 보는 불안 요소는 훨씬 커진다.
흥미로운 건 바로 그 전 흐름이다. 이승현은 8월 15일 한화전에서 양창섭이 1회 헤드샷 사구로 퇴장당한 뒤 급하게 올라와 5⅔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버텼다. 이 경기는 분명 반등의 근거였다. 선발 준비가 아닌 상황에서 긴 이닝을 잘 막았다는 건 체력, 멘탈, 경기 운영 모두에서 점수를 받을 만했다.
그래서 8월 22일의 실패는 더 복잡하다. 좋은 릴리프 등판이 곧바로 안정적인 선발 복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선발은 첫 타자부터 경기 전체를 설계해야 한다. 위기에서 한 번 버티는 능력과, 1회부터 5회까지 흐름을 관리하는 능력은 닮았지만 같지 않다.
삼성이 진짜 봐야 할 숫자는 평균자책점만이 아니다
5선발을 고를 때 평균자책점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삼성의 고민은 그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더 봐야 할 건 이닝 소화, 볼넷, 초반 실점, 수비 영향, 불펜 연결이다. 특히 5선발이 4이닝 전에 내려가는 경기가 많아지면 다음 날까지 여파가 남는다.
- 최소 5이닝을 버티는 등판 비율
- 3회 이전 대량 실점 빈도
- 볼넷과 사구를 합친 무료 출루 허용
- 선발 다음 투수의 등판 부담
- 상대 타순이 두 바퀴 돈 뒤의 피안타 흐름
이 기준으로 보면 이승현은 선발로서의 폭발 위험을 줄이는 게 먼저다. 좋은 날의 구위나 좌완 가치보다, 안 좋은 날에도 4이닝 3실점 정도로 피해를 막는 능력이 필요하다. 양창섭은 반대로 저점 관리가 숙제다. 완봉승 같은 최고점은 이미 보여줬다. 이제는 5이닝 2~3실점을 반복하는 쪽으로 몸을 맞춰야 한다.
삼성 5선발의 답은 이름보다 운영에 가깝다
솔직히 지금 삼성의 5선발 문제를 한 선수의 책임으로 몰아가긴 어렵다. 이승현은 선발과 불펜 사이에서 역할이 흔들렸고, 양창섭은 좋은 경기와 불안한 경기의 간격을 줄여야 하는 단계에 있다. 둘 다 버릴 카드가 아니라, 쓰는 방식이 섬세해야 하는 카드다.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양창섭에게 선발 기회를 조금 더 길게 주면서 이승현을 롱릴리프 겸 대체 선발로 준비시키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 라인업과 일정에 따라 둘을 탄력적으로 쓰는 방식이다. 다만 후자는 선수에게 역할 혼란을 줄 수 있어 관리가 꽤 어렵다.
팬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5선발 한 자리 때문에 매주 한 경기의 분위기가 출렁이는 느낌이 드니까. 그래도 이 자리는 시즌 후반에 의외로 큰 차이를 만든다. 에이스가 이기는 경기보다, 애매한 선발일에 지지 않는 경기가 순위 싸움에서는 더 오래 기억된다. 삼성의 5선발 싸움도 결국 누가 더 화려하냐보다 누가 덜 흔들리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