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하라가 옌시 킨델란을 골랐다는 건, 흥국생명이 속도를 바꾸겠다는 신호였다

드래프트 3순위에서 나온 꽤 선명한 선택
얼마 전 2026-2027시즌 V-리그 여자부 외국인 선수 흐름을 다시 보다가 흥국생명의 선택이 계속 눈에 걸렸다. 요시하라 도모코 감독이 전체 3순위로 쿠바 출신 옌시 킨델란을 지명한 장면이다. 단순히 새 외국인 선수를 뽑았다는 뉴스로 넘기기엔, 이 선택 안에 팀 방향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킨델란은 188cm 아포짓 스파이커로 소개됐다. 나이는 23세, 커리어는 쿠바에서 출발해 튀르키예, 세르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리그를 거쳤다. 최근 두 시즌을 루마니아에서 보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V-리그에서 바로 압도적인 이름값으로 들어오는 유형이라기보다, 여러 리그를 거치며 몸에 쌓은 경험과 아직 열려 있는 성장 폭을 함께 보는 카드에 가깝다.
사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3순위는 애매하면서도 중요한 자리다. 1순위처럼 판 전체를 먼저 고르는 자리는 아니지만, 여전히 팀 컬러를 바꿀 수 있는 자원은 남아 있다. 흥국생명은 그 자리에서 검증된 안정감보다 공격력, 높이, 포지션 유연성, 그리고 성장 가능성을 본 셈이다.
왜 킨델란이었을까
요시하라 감독의 배구를 생각하면 이 선택은 완전히 뜬금없지는 않다. 요시하라는 현역 시절부터 일본 배구의 조직력과 디테일을 상징하던 인물이고, 지도자로서도 한 명의 에이스에게 모든 공을 몰아주는 방식보다 팀 안에서 역할을 선명하게 나누는 쪽에 더 가까운 감독이다.
그런 관점에서 킨델란의 매력은 단순 득점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아포짓이 기본 포지션이지만 미들블로커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붙어 있다. 실제 시즌에서 미들로 자주 쓴다는 뜻은 아니더라도, 블로킹 감각과 중앙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건 공격수로서도 의미가 있다. V-리그 여자부는 랠리가 길고 수비 조직이 촘촘하다. 힘만 좋은 공격수보다 블로킹 라인 앞에서 타점을 조절하고, 긴 랠리 후에도 마지막 스윙을 가져갈 수 있는 선수가 더 오래 버틴다.
흥국생명 구단 발표에서도 요시하라 감독은 킨델란의 강한 공격력과 성장 가능성을 함께 언급했다. 이 표현이 중요하다. 완성형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붙었다는 건, 초반부터 모든 걸 해결하는 외국인 선수보다 시즌을 거치며 팀 시스템 안에서 올라오는 선수를 기대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숫자로 봐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킨델란을 볼 때 득점 총합만 보면 놓치는 게 많다. 외국인 선수니까 25득점, 30득점 같은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진짜 봐야 할 건 공격 성공률과 범실 비율의 균형이다. 특히 아포짓은 어려운 공을 많이 받는다. 리시브가 흔들린 뒤 올라오는 높은 공, 세트 후반 승부처의 뻔한 공, 상대 블로커 둘 이상이 기다리는 상황을 얼마나 버티느냐가 평가를 가른다.
- 공격 성공률이 40% 안팎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 범실이 몰리는 세트가 반복되는지
- 블로킹 득점보다 유효 블로킹 관여가 얼마나 나오는지
- 세터와의 백어택 타이밍이 시즌 초반 이후 좋아지는지
- 5세트 또는 20점 이후 결정력이 살아 있는지
여기서 특히 보고 싶은 건 후위 공격이다. V-리그에서 강팀을 상대할 때 전위 공격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상대가 김연경 이후 흥국생명의 공격 분배를 어떻게 읽을지, 새 아시아쿼터 자원과 국내 공격수들이 어떤 부담을 나눌지까지 생각하면 킨델란의 백어택은 단순 옵션이 아니라 공격 폭을 넓히는 장치가 된다.
흥국생명의 새 조합과 맞물린다
흥국생명은 킨델란만 데려온 게 아니다. 아시아쿼터 공격수 자스티스가 합류했고, 리베로 고민지도 영입했다. 이름만 보면 공격 보강이 먼저 보이지만, 사실 전체 그림은 리듬 재설계에 가깝다. 리시브와 디그에서 버티는 힘이 있어야 외국인 아포짓의 공격도 더 좋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킨델란이 루마니아 리그에서 뛰었다는 점도 곱씹어볼 만하다. V-리그는 템포, 수비 집중도, 원정 이동, 팬 압박감이 꽤 독특하다. 유럽 중소 리그에서 좋은 장면을 만들던 선수가 한국에 와서 바로 같은 효율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첫 라운드에 적응 비용을 크게 치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1라운드 숫자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빨리 나누는 건 위험하다.
다만 188cm라는 신장, 쿠바 선수 특유의 탄력, 여러 리그를 건넌 경험을 생각하면 재료는 확실히 있다. 문제는 그 재료를 요시하라 감독이 어떤 배합으로 쓰느냐다. 전위에서 강하게 때리는 단순 해결사로 둘지, 블로킹과 후위 공격까지 묶어 팀 전술의 축으로 키울지에 따라 킨델란의 시즌 표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기대보다 흥미로운 건 과정이다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새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면 첫 경기부터 시원한 결정타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킨델란의 경우엔 첫인상보다 변화 폭을 보는 재미가 더 클 것 같다. 8월 팀 합류 이후 세터와 어느 정도 속도로 호흡을 맞추는지, 훈련과 실전 사이에서 공격 선택이 얼마나 정교해지는지, 상대 분석이 들어온 뒤에도 같은 힘을 유지하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요시하라의 선택은 흥국생명이 당장 편한 답을 고른 장면이라기보다, 시즌 안에서 키울 수 있는 답을 고른 장면처럼 보인다. 외국인 선수에게 가장 차가운 평가는 숫자가 해주겠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배경까지 보면 이야기는 훨씬 재미있어진다. 킨델란이 흥국생명에서 어떤 곡선을 그릴지, 나는 첫 5경기보다 첫 두 라운드의 변화가 더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