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야구장 첫 경기를 따라가봤더니 숫자보다 진한 장면이 남았다

포항야구장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숫자들
얼마 전 오래된 경기 기록을 뒤지다가 포항야구장 개장 첫날 박스스코어를 다시 봤는데, 이상하게 점수보다 구장 자체가 더 오래 눈에 남았습니다. 포항야구장은 2012년 8월 14일 문을 열었고, 포항 남구 대도동에 자리 잡은 야구장입니다. 당시 보도 기준으로 총사업비는 317억 원, 규모는 지하 1층과 지상 3층, 관람석은 내야 1만747석에 외야 잔디 구역 500석을 더해 약 1만1247명 수용으로 소개됐습니다.
야구장 크기도 꽤 흥미롭습니다. 좌우 펜스까지 99m, 중앙 펜스까지 122m. 숫자만 놓고 보면 엄청나게 튀는 구장은 아닙니다. 그런데 외야가 잔디광장 형태였다는 점이 포항야구장의 인상을 확 바꿉니다. 일반적인 좌석형 외야와 달리 가족 단위 관중, 피크닉 분위기, 지역 축제 같은 감각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포항야구장은 단순히 삼성 라이온즈의 제2 홈구장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역이 야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담긴 공간에 가깝습니다.
첫 공식 경기의 상징성은 꽤 컸다
포항야구장의 첫 프로야구 공식 경기는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맞대결이었습니다. 2012년 8월 14일, 포항에서 KBO 정규리그가 열린 첫날이었죠. 상대팀 구도도 묘했습니다. 삼성은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강팀이었고, 한화에는 박찬호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새 구장, 만원 관중, 지역 첫 프로야구, 그리고 박찬호 선발 등판. 이 정도면 경기 전부터 이야기의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는 삼성이 6대 3으로 이겼습니다. 선발 장원삼은 삼진 12개를 잡으며 시즌 14승을 챙겼고, 당시 다승 경쟁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기록지만 보면 삼성의 승리, 장원삼의 호투로 읽힙니다. 그런데 첫 타점은 한화 김태균에게서 나왔고, 포항야구장 첫 홈런은 이여상의 솔로포였습니다. 첫 승리는 삼성, 첫 타점과 첫 홈런의 장면은 한화 쪽에 남은 셈입니다. 이런 엇갈림이 새 구장의 첫날을 더 재미있게 만듭니다.
숫자 뒤에 남은 장면
개장 첫 경기는 매진 분위기였고, 현장 판매분을 구하려는 팬들이 일찍부터 줄을 섰다는 당시 현장 보도도 있었습니다. 야구 인프라가 수도권이나 광역 대도시에만 집중되던 흐름을 생각하면, 포항에서 1만 명 넘는 관중이 새 구장을 채웠다는 건 단순한 흥행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프로야구를 볼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긴 날이니까요.
포항야구장은 왜 제2 홈구장 느낌이 강할까
삼성 라이온즈의 중심은 오래도록 대구였습니다. 그래서 포항야구장은 메인 홈구장이라기보다 제2 홈구장, 혹은 지역 분산 경기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 이 지점이 꽤 중요합니다. KBO 리그에서 제2 홈구장은 단순히 경기 몇 번 더 여는 장소가 아닙니다. 팬층의 지리적 확장, 지역 스포츠 문화의 분기점, 구단 브랜드의 생활권 확대가 한꺼번에 걸려 있습니다.
포항은 축구의 이미지가 강한 도시로 자주 언급됐습니다. 그런데 야구장 개장과 프로야구 개최는 도시의 스포츠 지도를 조금 넓혀줬습니다. 매일 야구가 열리는 도시는 아니지만, 가끔 열리는 경기일수록 관중에게는 더 큰 이벤트가 됩니다. 야구장을 자주 가는 팬에게는 일상이고, 기다려야 하는 지역 팬에게는 기념일에 가깝습니다. 포항야구장의 분위기가 뜨겁게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개장일: 2012년 8월 14일
- 첫 KBO 경기: 삼성 라이온즈 대 한화 이글스
- 첫 경기 결과: 삼성 6대 3 승리
- 대표 기록: 장원삼 12탈삼진, 김태균 첫 타점, 이여상 첫 홈런
- 구장 크기: 좌우 99m, 중앙 122m로 알려짐
기록으로 보면 작지만, 맥락으로 보면 큰 구장
포항야구장은 잠실이나 사직처럼 리그 전체의 거대한 서사를 매일 생산하는 구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끔 등장하는 구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록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남습니다. 특정 시리즈, 특정 선수, 특정 장면이 구장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죠. 매일 보는 풍경이 아니라서, 한 번 열린 경기가 더 오래 회자됩니다.
야구 기록을 볼 때 저는 늘 장소를 같이 봅니다. 같은 홈런이라도 어디서 쳤는지, 같은 1승이라도 어떤 구장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포항야구장의 첫날이 딱 그렇습니다. 삼성의 승리 기록만 보면 평범한 8월 정규시즌 1승입니다. 그런데 장소를 붙이면 포항 첫 KBO 경기 승리, 장원삼의 12탈삼진, 박찬호 등판, 만원 관중이 한꺼번에 따라옵니다. 숫자 하나가 갑자기 살아나는 순간입니다.
팬에게 남는 건 결국 경기장의 온도
솔직히 포항야구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지역 야구장의 온도”라고 생각합니다. 좌석 수나 펜스 거리도 중요하지만, 그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포항에서 처음 프로야구가 열렸을 때의 기대감, 표를 구하려는 줄, 새 구장의 낯선 잔디 외야, 그리고 첫 홈런이 넘어가던 순간이 같이 있어야 포항야구장이 보입니다.
그래서 포항야구장은 대형 구장의 화려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됩니다. 매일 중심에 있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지역 팬들에게는 꽤 선명한 이벤트가 됩니다. 스포츠를 오래 보다 보면 이런 장소들이 더 좋아집니다. 기록표 맨 위에 크게 적히지는 않아도, 한 도시가 야구를 만난 날의 공기까지 품고 있는 구장이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