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범 기록을 다시 봤더니, 2019년 세이브 숫자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

얼마 전 KBO 기록실에서 이형범 이름을 다시 눌러봤는데, 처음 든 생각은 꽤 선명했다. 이 선수는 단순히 ‘한때 잘 던졌던 불펜’으로만 묶기엔 기록의 굴곡이 너무 크고, 그 굴곡 안에 팀이 불펜 투수를 어떻게 쓰는지가 꽤 많이 들어 있다.
이형범은 1994년생 우완 투수다. 화순초-화순중-화순고를 거쳐 2012년 NC에 입단했고, 이후 경찰, NC, 두산, KIA를 지나 2026년 KBO 선수페이지 기준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표시돼 있다. 키 181cm, 몸무게 80kg. 체격만 놓고 보면 압도형 파이어볼러의 이미지보다는, 타이밍과 코스, 경기 흐름을 타는 불펜형 투수에 더 가깝다.
2019년, 숫자가 먼저 말을 걸던 시즌
이형범을 이야기할 때 2019년을 빼면 이야기가 성립하기 어렵다. 그해 두산에서 67경기, 61이닝,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했다. 여기에 6승 3패 19세이브 10홀드. 불펜 투수에게 67경기는 단순한 출전 수가 아니다. 감독이 계속 손이 가는 투수였다는 뜻이고, 세이브 19개는 경기 후반의 무게를 실제로 맡겼다는 의미다.
근데 재미있는 건 탈삼진 수다. 61이닝 동안 삼진은 31개였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압도적인 헛스윙형 마무리와는 거리가 있다. 대신 볼넷 19개, 피홈런 4개로 큰 사고를 비교적 줄였다. 타자를 윽박지르는 방식보다는 맞혀 잡고, 주자를 묶고, 한 이닝을 버티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2019년의 이형범은 ‘구위로 화면을 지배한 투수’라기보다 ‘경기 결과표에서 존재감이 커진 투수’로 기억된다.
커리어 통산 기록은 꽤 솔직하다
2026년 KBO 정규시즌 통산 기록 기준으로 이형범은 239경기, 285와 3분의 2이닝, 평균자책점 4.95를 기록하고 있다. 10승 10패, 20세이브, 14홀드. 숫자만 보면 전성기와 침체기가 한 줄에 같이 들어온다. 통산 평균자책점 4점대 후반은 엄청 안정적이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200경기 넘게 1군 마운드에 섰다는 사실은 또 다른 평가 포인트다.
- 통산 239경기 등판
- 통산 285 2/3이닝 소화
- 통산 20세이브, 14홀드
- 통산 피안타 331개, 볼넷 128개, 탈삼진 144개
사실 불펜 투수의 커리어는 선발투수보다 훨씬 거칠게 흔들린다. 한 달만 흔들려도 평균자책점이 크게 튀고, 보직이 바뀌며, 엔트리 이동도 잦다. 이형범의 연도별 기록도 딱 그렇다. 2020년 두산에서 평균자책점 7.71, 2022년 4.35, 2023년 6.51. 2019년의 고점이 워낙 뚜렷했기 때문에 이후 숫자의 하락폭이 더 크게 보인다.
KIA 시절 이후, 기록은 더 까다롭게 읽어야 한다
2024년 KIA에서는 16경기 15이닝 평균자책점 7.80을 기록했다. 2025년에는 12경기 10이닝 평균자책점 11.70. 이 수치만 보면 냉정하게 어렵다. 특히 2025년은 피안타 21개, 실점 16점으로 짧은 이닝 안에서 타구 관리가 흔들렸다. 불펜 투수에게 10이닝은 표본이 작지만, 동시에 기회가 짧다는 현실도 같이 따라온다.
그런데 2026년 기록은 조금 다른 식으로 봐야 한다. KBO 통산 페이지 기준 2026년 성적은 20경기 24와 3분의 2이닝, 평균자책점 4.01이다. 승패와 세이브, 홀드는 없지만 실점 17점 중 자책점은 11점이다. 피안타 25개, 피홈런 3개, 볼넷 13개, 탈삼진 15개. WHIP까지 함께 보면 아주 깔끔한 시즌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직전 2년의 평균자책점 7.80과 11.70을 생각하면 분명히 버티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주자 있을 때의 기록이 말해주는 성격
이형범의 2026년 상황별 기록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주자 상황이다. KBO 상황별 페이지 기준 주자 없을 때 피안타율은 0.286, 주자 있을 때는 0.205, 득점권에서는 0.233으로 표시된다. 보통 팬들은 주자가 쌓이면 투수가 더 흔들릴 거라고 느끼기 쉬운데, 기록상으로는 오히려 주자 있는 상황에서 피안타율이 낮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할 지점도 있다. 볼넷이 득점권에서 8개로 적지 않다. 즉, 안타를 막았다고 해서 모든 위기를 깔끔하게 끝냈다는 뜻은 아니다. 타구를 억제하는 날도 있지만 카운트 싸움이 길어지며 스스로 난도를 높이는 장면도 있었다고 읽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불펜 투수에게 피안타율과 볼넷은 같이 봐야 한다. 하나만 보면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진다.
이형범을 보는 재미는 ‘회복 가능성’에 있다
솔직히 이형범을 지금 리그 정상급 필승조라고 말하긴 어렵다. 2019년의 19세이브 투수라는 기억만 붙잡고 현재를 보면 숫자가 따라오지 않는다. 반대로 2024~2025년의 부진한 평균자책점만 보고 끝난 선수처럼 말하는 것도 조금 성급하다. 2026년 20경기에서 24이닝 이상을 던졌고, 평균자책점을 4점대 초반까지 끌어내린 흐름은 최소한 다시 1군 불펜에서 역할을 찾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불펜 투수의 가치는 화려한 한 장면보다 반복성에서 나온다. 1점 차 8회가 아니더라도, 5회 이후 한 이닝을 막아주고 다음 투수에게 경기를 넘기는 일이 쌓이면 팀 운영은 훨씬 편해진다. 이형범의 현재 기록은 바로 그 지점에 걸려 있다. 삼진으로 모든 걸 끝내는 투수는 아니지만, 맞혀 잡는 감각과 위기 관리가 살아나는 날에는 벤치가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된다.
그래서 이형범의 진짜 이야기는 2019년의 추억보다 2026년의 사용법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불펜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투수에게 과거의 세이브는 보증서가 아니라 참고자료다. 지금 필요한 건 볼넷을 조금 더 줄이고, 피홈런 3개처럼 한 번에 흐름이 바뀌는 장면을 얼마나 억제하느냐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형범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좋았던 투수’가 아니라, 긴 시즌 중반을 버티게 해주는 현실적인 불펜 옵션으로 다시 읽힐 수 있다.
자료 기준: KBO 선수 기본기록, KBO 통산기록, KBO 상황별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