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가 4년을 원했다는 말, 정몽규 회장의 재계약 협상은 왜 멈췄나

얼마 전 2022 카타르 월드컵 영상을 다시 보다가 포르투갈전 종료 휘슬 장면에서 또 멈췄습니다. 황희찬의 역전골, 손흥민의 질주, 벤투 감독의 관중석 표정까지 다 기억나는데, 이상하게 그 직후의 장면도 같이 떠오르더군요. 12년 만의 월드컵 16강이라는 성과가 나왔는데도 벤투와 대한축구협회의 동행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단순합니다. 성적 냈으면 더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기록과 협상 흐름을 같이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당시 쟁점은 돈보다 계약 기간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벤투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이어지는 4년 보장을 원했고,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안컵까지 짧게 보고 이후 성적에 따라 연장하는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6강 성과만 보면 재계약 여론은 자연스러웠다
벤투 감독은 2018년 8월 부임해 2022년 12월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 4개월가량 대표팀을 맡았습니다. 한국 축구에서 외국인 감독이 이렇게 긴 호흡으로 A대표팀을 운영한 사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결과도 있었습니다. 한국은 카타르 월드컵 H조에서 우루과이와 0-0, 가나에 2-3 패, 포르투갈에 2-1 승리를 기록하며 1승 1무 1패로 16강에 올랐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극적인 통과였습니다. 승점 4점, 조 2위, 2010 남아공 이후 12년 만의 원정 16강. 특히 포르투갈전은 한국 축구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장면이었습니다. 후방 빌드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손흥민과 황희찬의 전환 속도가 마지막 순간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팬들의 재계약 요구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대표팀이 늘 대회 직전 흔들리고, 감독 교체 때마다 철학이 바뀌던 흐름을 생각하면 벤투 체제는 꽤 드문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좋은 대회 하나가 아니라 4년 동안 쌓은 방식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갈림길은 4년 보장과 1+3 제안이었다
당시 보도들을 종합하면 재계약 협상은 월드컵이 끝난 뒤 갑자기 깨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후 벤투 감독에게 재계약을 제의했지만, 양측은 계약 기간에서 간격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벤투 감독 쪽은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가는 4년 계약을 원했습니다. 반대로 협회는 당장 다음 목표였던 아시안컵까지 계약한 뒤 성적에 따라 3년을 더하는 1+3년 형태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2023 AFC 아시안컵은 실제로는 2024년 1~2월 카타르에서 열렸지만, 협상 시점에서는 월드컵 다음 국제대회라는 의미가 컸습니다.
- 벤투 측 요구: 2026 월드컵까지 4년 보장
- 협회 측 구상: 아시안컵까지 우선 계약 후 성적에 따른 연장
- 협상 결과: 계약 기간 이견으로 재계약 불발
- 벤투 발언: 결정은 이미 2022년 9월에 이뤄졌다고 설명
여기서 감정적으로 보면 협회가 너무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협회 입장도 완전히 비현실적이라고만 보긴 어렵습니다. 월드컵 본선 결과가 나오기 전인 상황에서 차기 월드컵까지 4년을 통째로 보장하는 건 부담이 컸을 겁니다. 반대로 벤투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축한 팀을 계속 끌고 가려면 중간 평가형 계약보다 완전한 사이클이 필요했겠죠.
벤투 축구의 가치는 결과보다 축적에 있었다
벤투 체제의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승패보다 과정에 있었습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강팀을 만나면 라인을 내리고 버티는 방식에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벤투는 후방에서 짧게 풀고, 미드필드에서 점유를 만들고, 측면과 하프스페이스를 통해 전진하는 축구를 고집했습니다.
물론 비판도 많았습니다. 플랜 B가 부족하다는 말, 선수 기용이 보수적이라는 말, 빌드업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습니다. 실제로 브라질과의 16강전은 1-4 패배였고, 전반에만 4실점을 허용했습니다. 기록만 보면 냉정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르투갈전과 우루과이전을 같이 놓고 보면 다른 장면도 보입니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슈팅 수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실점 이후에도 경기 구조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전 같으면 분위기에 휩쓸릴 법한 순간에도 선수들이 약속된 위치를 잡고 다시 전개를 시도했습니다. 이건 하루아침에 생기는 습관이 아닙니다.
정몽규 회장과 협회의 선택은 리스크 관리였다
정몽규 회장과 축구협회가 바라본 포인트는 아마 안정성과 책임 문제였을 겁니다. 월드컵 전에 4년 보장을 해줬다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비판은 협회로 향합니다. 특히 한국 축구는 대표팀 성적에 대한 여론 반응이 빠르고 강합니다. 감독 선임은 기술적 판단인 동시에 정치적 부담을 동반합니다.
반면 벤투 감독은 자기 커리어와 프로젝트의 연속성을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4년 4개월 동안 팀을 만들었고, 다음 월드컵까지 가려면 세대교체와 전술 고도화를 한 묶음으로 다뤄야 합니다. 감독에게 1년짜리 계약은 실험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게 만듭니다. 솔직히 철학을 밀어붙이는 지도자에게는 꽤 불편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이 협상은 누가 옳고 그르냐보다 시간표가 달랐던 사례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협회는 아시안컵을 기준점으로 삼았고, 벤투는 월드컵 사이클 전체를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같은 대표팀을 두고도 바라보는 단위가 달랐던 셈입니다.
팬으로서 아쉬운 건 타이밍이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성과가 확인된 뒤에는 이미 늦었다는 점입니다. 16강 진출 이후 벤투의 시장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외 클럽이나 다른 대표팀이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본인도 유럽 무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협상은 월드컵 이후의 환호 속에서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습니다.
한국 축구가 벤투와 더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여전히 남습니다. 2026년까지 손흥민 세대의 마지막 큰 사이클, 이강인과 조규성, 황인범 같은 선수들의 전성기, 그리고 빌드업 축구의 다음 버전이 한 번쯤은 궁금했습니다. 근데 스포츠는 늘 결과만큼이나 선택의 타이밍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벤투 재계약 결렬은 단순히 4년을 달라는 감독과 1년만 주겠다는 협회의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장기 프로젝트를 믿을 것인가, 중간 평가로 리스크를 줄일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표팀 축구도 이제 한 대회 단위가 아니라 4년 단위로 평가받는 문화가 조금 더 강해졌으면 합니다. 그래야 감독도 선수도, 그리고 지켜보는 팬도 숫자 뒤에 쌓이는 변화를 더 오래 볼 수 있으니까요.
참고한 당시 보도: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742610, 파이낸셜뉴스 https://v.daum.net/v/Fdc5iTlfYy, 스포츠한국 https://v.daum.net/v/202212061504284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