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마라톤 기록표를 다시 봤더니, 서울 가을 레이스의 속도가 보였다

얼마 전 러닝 모임에서 jtbc 마라톤 이야기가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대화가 참가 신청 경쟁에서 시작해 결국 기록표로 흘러갔다. 누가 뛰었느냐보다 더 재밌는 건 어느 해에 코스가 빨랐고, 어떤 선수가 흐름을 바꿨고, 왜 이 대회가 가을 러너들의 기준점처럼 굳어졌느냐는 쪽이었다.
가을 서울을 가로지르는 레이스라는 매력
JTBC 서울마라톤은 1999년 중앙일보 서울 하프마라톤에서 출발한 대회다. 지금은 풀코스 42.195km와 10K가 함께 열리는 서울의 대표 가을 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보통 팬들 사이에서는 줄여서 제마라고도 부르는데, 이 별칭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생활 러너들에게 꽤 깊게 들어왔다는 뜻이다.
2026년 대회는 11월 1일 일요일로 안내되어 있다. 출발지는 상암 월드컵공원, 풀코스 도착지는 올림픽공원, 10K 도착지는 여의도공원으로 공지됐다. 국문 대회 개요 기준 모집 규모는 3만2000명이다. 풀코스는 만 18세 이상, 5시간 이내 완주 가능자가 기준이고, 이 제한 시간은 단순한 운영 숫자가 아니라 이 대회의 색깔을 보여준다. 완주형 축제이면서도 어느 정도 레이스 감각을 요구하는 대회라는 얘기다.
코스의 매력은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있다. 상암에서 출발해 한강을 건너고, 도심의 큰 축을 지나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가는 구성은 기록만 남기는 레이스가 아니라 도시를 통과했다는 감각을 준다. 특히 풀코스 기준으로 한강 다리를 여러 차례 건너는 구조는 페이스 조절을 어렵게 만들지만, 그만큼 완주 뒤에 남는 장면도 강하다.
2025년 기록이 말해준 것
기록을 보면 2025년 대회는 꽤 흥미롭다. 국제 엘리트 남자부에서는 케냐의 리틀 닉 킷툰두가 2시간05분32초로 우승했다. 2024년 국제 남자부 우승 기록이 2시간07분37초였으니, 단순 비교로 2분05초 빨라졌다. 마라톤에서 2분 차이는 그냥 빠르다는 표현으로 끝낼 수 없다. 1km당 약 3초 가까운 차이가 42.195km 내내 누적된 셈이다.
국내 남자부에서는 김홍록이 2시간14분14초로 가장 앞섰다. 전년도 국내 남자 1위였던 박민호의 2시간13분06초와 비교하면 1분08초 늦다. 그래서 2025년을 국내 남자 기록의 폭발 시즌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대신 김홍록이 국제 엘리트 전체 순위에서도 10위권에 들어간 흐름은 의미가 있다. 초청 선수들이 2시간5분대와 6분대를 찍는 판에서 국내 선수가 2시간14분대 초반으로 버틴다는 건, 당장 우승 경쟁은 아니어도 국내 장거리의 기준선이 어디쯤인지 보여준다.
여자부에서는 임예진의 2시간29분12초가 눈에 들어온다. 2024년 최정윤의 우승 기록 2시간31분55초보다 2분43초 빠르다. 더 재밌는 부분은 임예진이 2023년 이 대회 우승, 2024년 준우승을 거쳐 2025년에 다시 정상에 섰다는 점이다. 같은 대회에서 순위가 오르내린 뒤 다시 2시간20분대 기록으로 올라오는 건, 선수의 회복력과 시즌 설계가 같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기록보다 먼저 흔들리는 건 페이스다
JTBC 마라톤을 기록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건 코스가 완전히 평면적인 숫자 놀이터는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 도심 코스는 응원이 많고 풍경이 좋지만, 다리와 도심 구간의 리듬 변화가 있다. 평소 트랙이나 강변에서 일정하게 뛰는 러너라면 대회 당일 초반 분위기에 말려 페이스가 빨라지는 일이 흔하다.
풀코스 5시간 제한을 기준으로 보면 평균 페이스는 1km당 약 7분06초다. 4시간 완주는 1km당 약 5분41초, 3시간30분 완주는 약 4분59초, 서브3는 약 4분15초다. 이 숫자를 놓고 보면 같은 42.195km라도 완전히 다른 경기다. 누군가에게는 컷오프와의 싸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보급 지점에서 리듬을 잃지 않는 싸움이며, 상위권에게는 30km 이후 단 몇 초를 아끼는 싸움이다.
- 5시간 완주권: 초반 흥분을 누르고 보급과 근육 피로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 4시간 전후: 하프 지점까지 여유를 남겼는지가 후반 기록을 좌우한다.
- 3시간30분 이내: 다리 구간과 코너 이후의 재가속 능력이 체감 기록을 바꾼다.
- 엘리트권: 30km 이후 페이스 저하 폭이 순위표를 갈라놓는다.
2026년 대회를 볼 때 챙길 숫자
2026년 jtbc 마라톤은 경기 전부터 운영 변화가 눈에 띈다. 코리아 러닝 엑스포가 대회 직전 사흘간 열리고, 레이스팩 수령도 현장 중심으로 안내되어 있다. 이건 단순한 행정 변화가 아니다. 대회가 하루짜리 레이스에서 러닝 문화 행사로 확장되는 흐름에 가깝다. 해외 대형 마라톤들이 엑스포를 통해 참가자 경험을 키우는 방식과 비슷한 방향이다.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국제 남자부에서 2시간05분대가 다시 나올 수 있는가. 둘째, 국내 남자부가 2시간13분 벽을 다시 건드릴 수 있는가. 셋째, 여자부에서 임예진의 2시간20분대 흐름이 이어질 수 있는가. 특히 여자부는 최근 몇 년 기록만 봐도 변화가 선명하다. 2023년 임예진 2시간34분46초, 2024년 최정윤 2시간31분55초, 2025년 임예진 2시간29분12초로 이어지는 선은 그냥 우승자 이름의 변화가 아니라 기록대 자체가 앞당겨지는 움직임이다.
팬 입장에서 더 재밌게 보는 방법
경기 당일에는 우승 기록만 보는 것보다 10km, 하프, 30km 통과 기록을 같이 보면 훨씬 재밌다. 마라톤은 마지막 12km에서 성격이 바뀐다. 초반에 좋아 보였던 선수가 35km 이후 흔들릴 수 있고, 반대로 조용히 따라붙던 선수가 막판에 순위를 뒤집기도 한다. 그래서 기록표의 최종 숫자만 보면 레이스의 절반은 놓친다.
개인적으로 jtbc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은 빠른 기록과 대중적 에너지가 같이 있다는 점이다. 국제 엘리트가 2시간05분대를 찍는 무대 옆에서, 생활 러너는 생애 첫 풀코스나 10K 개인 최고 기록을 노린다. 같은 도로 위에 완전히 다른 목표가 겹쳐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대회는 단순히 누가 1등을 했는지보다, 서울이라는 코스가 그날 러너들의 몸과 기록을 어떻게 바꿨는지까지 봐야 진짜 맛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