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오타니·르브론 바로 아래 5위에 오른 날, LA의 숫자를 따라가봤더니

얼마 전 LA 스포츠 스타 순위를 보다가 손흥민 이름이 오타니 쇼헤이, 루카 돈치치, 매슈 스태포드, 르브론 제임스 다음에 놓인 걸 보고 화면을 한 번 더 봤다. 축구 팬 입장에서는 반가운 장면이지만, 기록을 좋아하는 쪽에서는 더 재미있는 질문이 남는다. 이 5위가 단순한 인기 투표식 반짝임인지, 아니면 LA 스포츠 시장 안에서 손흥민의 체급이 실제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인지 말이다.
LA 5위라는 숫자가 꽤 무거운 이유
FanDuel이 공개한 LA 대표 스포츠 슈퍼스타 톱10에서 손흥민은 5위에 올랐다. 1위는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 2위는 레이커스의 루카 돈치치, 3위는 램스 쿼터백 매슈 스태포드, 4위는 르브론 제임스였다. 그 다음이 손흥민이다. 뒤에는 카와이 레너드, 저스틴 허버트, 켈시 플럼, 무키 베츠, 마이크 트라웃 같은 이름들이 있었다.
물론 이 순위는 리그 공식 시상도 아니고, 정교한 가치평가 보고서도 아니다. SNS 기반의 화제성 순위에 가깝다. 그런데 그래서 더 흥미롭다. 팬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스포츠 스타의 체감 순위에서 손흥민이 LA의 거대한 4대 스포츠 이름들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오타니: MLB와 다저스의 글로벌 간판
- 돈치치·르브론: 레이커스라는 LA 최고 브랜드의 중심축
- 스태포드: NFL 우승 경험을 가진 쿼터백
- 손흥민: MLS와 LAFC를 대표하는 아시아 축구 스타
이 명단에서 더 눈에 띄는 건 손흥민이 오래 LA에서 뛴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저스, 레이커스, 램스는 도시의 기억 속에 깊게 박힌 팀들이다. LAFC는 2014년에 창단했고 2018년부터 MLS에 참가한 젊은 구단이다. 역사와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5위라는 숫자는 꽤 큰 소리로 읽힌다.
축구라는 종목의 핸디캡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 스포츠 시장에서 축구는 세계 기준의 축구와 다르게 움직인다. 전 세계적으로는 축구가 가장 큰 종목이지만, 미국 안에서는 NFL, NBA, MLB, NHL의 벽이 두껍다. 특히 LA는 더 복잡하다.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 역사를 쌓아온 구단이고, 레이커스는 NBA 파이널 우승 17회의 브랜드다. 램스와 차저스까지 NFL의 무게를 얹는다.
그런 도시에서 MLS 선수가 5위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한국 팬이 많다’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쌓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이력, 챔피언스리그 결승 경험, 월드컵에서 만든 장면들까지 함께 들고 LA에 왔다. 미국 팬들이 손흥민을 처음 본 게 아니라, 이미 유럽 무대의 하이라이트와 글로벌 브랜드를 통해 알고 있던 선수가 지역 팀 유니폼을 입은 셈이다.
순위보다 중요한 건 비교 대상이다
손흥민보다 위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종목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오타니는 투타 겸업이라는 야구의 상식을 흔든 선수이고, 르브론은 20년 넘게 NBA의 중심에 서 있었다. 돈치치는 현시대 농구의 공격 문법을 바꾸는 선수로 평가받고, 스태포드는 NFL 우승 서사를 갖고 있다. 손흥민의 5위는 그래서 ‘축구 선수 중 높은 순위’가 아니라, LA 전체 스포츠 시장에서 이름값을 겨룬 결과라는 점이 더 크다.
기록이 순위에 힘을 보탰다
인기는 기록 없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손흥민의 LAFC 초반 흐름은 이 순위가 왜 나왔는지 꽤 친절하게 설명한다. LAFC 매치 리캡 기준으로 2026시즌 초반 올랜도 시티전에서 손흥민은 전반에만 4도움을 기록했다. LAFC의 6대0 승리, 개막 6경기 무실점, 5승 1무 흐름 속에서 손흥민은 공격의 마지막 패스와 템포 조절을 동시에 맡았다.
특히 올랜도전 4도움은 구단 단일 경기 도움 기록을 새로 쓴 장면이었다. MLS 역사에서도 전반에 4도움을 기록한 선수는 매우 드물다. 골을 넣는 손흥민에 익숙했던 팬들에게는 조금 다른 장면이었다.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움직임만 강점인 선수가 아니라, 상대 수비 라인을 끌어내고 동료에게 더 좋은 슈팅 각도를 만들어주는 선수라는 쪽으로 해석이 넓어진다.
개막전 분위기도 컸다. LAFC와 인터 마이애미의 2026시즌 초반 맞대결은 LA 콜리세움에 7만5천 명이 넘는 관중을 모았다. MLS 역사상 손꼽히는 관중 규모였다. 메시의 인터 마이애미와 손흥민의 LAFC가 같은 무대에 서자, 이 경기는 단순한 리그 경기보다 큰 이벤트가 됐다. 순위표 밖에서 이미 시장은 반응하고 있었다.
오타니와 르브론 사이에서 보이는 손흥민의 새 위치
오타니와 르브론은 ‘경기력+상업성+서사’를 모두 가진 선수들이다. 오타니는 일본과 미국을 잇는 야구의 글로벌 아이콘이고, 르브론은 선수 개인이 하나의 미디어 기업처럼 움직이는 시대를 대표한다. 손흥민이 바로 그 층위 가까이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아시아 축구 스타의 이동 경로가 달라졌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예전에는 유럽에서 성공한 아시아 선수가 미국 시장으로 오면 ‘커리어 후반의 스타 영입’으로만 소비되기 쉬웠다. 그런데 손흥민은 조금 다르다. 그는 경기장 안에서 여전히 속도와 판단을 보여주고 있고, 경기장 밖에서는 유니폼 판매, 관중 관심, 방송 주목도까지 함께 움직인다. LAFC 입장에서는 단순한 공격수 영입이 아니라, 구단의 좌표를 글로벌 시장 쪽으로 더 밀어 올리는 영입이다.
시즌 중반에는 MLS 올스타전에서도 손흥민의 존재감이 이어졌다. MLS 공식 발표 기준으로 그는 LIGA MX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고 올스타전 MVP를 받았다. 순위가 먼저 화제가 됐고, 경기력이 그 화제를 따라붙은 흐름이다. 팬 입장에서 가장 짜릿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이름값만 앞서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경기 기록이 뒤에서 받쳐준다.
손흥민의 5위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순위를 과장해서 세계 스포츠 서열처럼 볼 필요는 없다. FanDuel의 LA 스타 순위는 도시 안의 화제성과 상징성을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하지만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LA라는 초대형 스포츠 시장에서 손흥민은 더 이상 ‘축구 팬들이 좋아하는 외국인 선수’ 정도의 위치가 아니다. 오타니, 르브론, 돈치치 같은 이름들이 놓인 표 안에서 비교되는 선수가 됐다.
솔직히 이런 순위는 시간이 지나면 금방 바뀔 수 있다. 부상, 팀 성적, 포스트시즌, 월드컵 이슈가 한 번만 흔들려도 스포츠 스타의 체감 온도는 달라진다. 그래도 지금 남는 건 분명하다. 손흥민은 LAFC의 성적표에 도움과 공격 포인트를 남기고, LA 스포츠 시장에는 한국 선수가 어디까지 도시의 얼굴이 될 수 있는지 꽤 선명한 예고편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