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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김범수 89경기 페이스를 다시 봤더니, 숫자가 먼저 보낸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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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김범수 89경기 페이스를 다시 봤더니, 숫자가 먼저 보낸 경고였다

얼마 전 KIA 불펜 기록을 쭉 넘겨보다가 김범수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시즌 초반에 나왔던 ‘89경기 페이스’라는 말이 그때는 조금 과하게 들렸는데, 숫자를 다시 놓고 보니 그냥 호들갑은 아니었다. 불펜 투수의 등판 수는 단순한 근면성의 기록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팀 전력 구조가 한 선수의 어깨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89경기 페이스가 무서웠던 이유

4월 당시 김범수는 KIA가 치른 21경기 중 13경기에 나섰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89경기 등판 페이스다. KBO에서 한 시즌 70경기만 넘어도 ‘많이 던졌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김범수 본인도 한화 시절이던 2022년에 78경기, 2023년에 76경기를 던졌고, 2025년에도 73경기에 나섰다. 이미 많은 등판을 감당해본 투수인데도 89경기 페이스는 또 다른 영역이다.

특히 불펜 등판은 경기 수만 보면 착시가 생긴다. ⅓이닝, ⅔이닝이면 가볍게 지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을 풀고, 대기하고, 다시 멈추고, 급하게 마운드에 오르는 과정이 반복된다. 기록지에 남는 건 투구 이닝과 투구 수지만, 불펜 투수의 피로는 그 앞뒤의 시간까지 먹고 자란다.

문제는 김범수 개인보다 KIA 좌완 구조였다

김범수가 자주 불린 이유는 명확했다. 좌완 카드가 넉넉하지 않았다. 베테랑 이준영, 필승조로 기대받던 곽도규 쪽에 공백이 생겼고, 최지민과 김기훈도 벤치가 편하게 맡길 만큼 흐름을 잡지 못했다. 그러면 감독 입장에서는 가장 확률 높은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그 선택이 김범수였다.

사실 이런 장면은 어느 팀에서나 나온다. 7회, 좌타 라인, 한 점 차, 주자 있는 상황. 벤치가 계산기를 두드리면 결국 가장 믿을 만한 좌완 이름이 먼저 뜬다. 그런데 그 계산이 이틀에 한 번, 사흘에 두 번처럼 반복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수 한 명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팀의 뎁스 문제가 된다.

  • 4월 초반: 21경기 중 13경기 등판
  • 환산 페이스: 정규시즌 144경기 기준 약 89경기
  • 역할: 좌타 상대, 위기 차단, 접전 후반 투입
  • 위험 신호: 멀티 이닝과 연투가 겹치며 실점 부담 증가

수원 KT전 ⅔이닝 4실점은 결과보다 흐름이 중요했다

4월 22일 수원 KT전은 상징적인 경기였다. KIA가 3대 2로 앞선 7회말, 김범수는 정해영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선두타자 안타와 볼넷으로 바로 흔들렸다. 이후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냈지만 자동고의4구로 만루 승부를 택한 뒤 실점이 이어졌고, 뒤이어 올라온 투수까지 흐름을 막지 못하면서 김범수의 자책점은 4점으로 불어났다.

겉으로 보면 ‘필승조가 무너졌다’는 장면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미 과부하 경고등이 켜진 투수를 또 가장 어려운 구간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가깝다. 4월 17일까지는 1이닝 이하 등판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지만, 이후 1이닝을 넘기는 등판이 섞이면서 피안타와 실점이 늘었다. 불펜 투수에게 멀티 이닝은 단순히 아웃카운트 하나 더 잡는 일이 아니다. 다음 등판의 구위와 제구까지 빌려 쓰는 선택일 때가 많다.

시즌 기록이 말해주는 잔상

KBO 기록실 기준으로 김범수는 2026시즌 9월 21일까지 58경기, 38이닝을 던졌다. 1승 3패 1세이브 13홀드, 평균자책점 5.92, WHIP 2.08이다. 피안타 50개, 볼넷 29개라는 숫자도 눈에 들어온다. 시즌 초 89경기 페이스 그대로 끝까지 밀어붙인 것은 아니지만, 초반 과밀 등판의 잔상은 기록 곳곳에 남았다.

물론 58경기 자체가 비정상적인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38이닝에 주자 허용이 많았고, 최근 10경기 합계에서도 3⅔이닝 동안 10피안타와 5실점이 찍혔다. 좌완 불펜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든 부르면 나와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는 상태’다. 등판 수가 많아질수록 그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김범수에게 필요한 건 휴식만이 아니다

솔직히 불펜 혹사 이야기는 늘 쉽지 않다.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가장 믿는 투수를 아껴두는 것도 어렵고, 팬들도 접전에서 낯선 이름이 올라오면 불안해한다. 그런데 장기 레이스에서는 한 명의 확실한 카드보다 두세 명의 불완전한 카드가 함께 성장하는 쪽이 팀을 살릴 때가 많다. 김범수를 덜 쓰려면 결국 다른 좌완들이 1아웃, 2아웃짜리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

KIA 입장에서는 김범수의 등판 간격, 멀티 이닝 제한, 좌타 전담 카드 분산 같은 운영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시즌 막판이나 순위 싸움 구간에서는 ‘오늘 막는 것’과 ‘다음 주에도 막을 수 있는 상태로 남기는 것’이 같은 무게를 가진다. 김범수는 이미 많이 던질 수 있는 투수라는 걸 여러 시즌 동안 증명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강한 투수라서 더 자주 쓰는 게 아니라, 강한 투수로 오래 남기기 위해 덜 급하게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

김범수의 89경기 페이스 경고는 한 선수의 부진 기사로 소비하기엔 아깝다. KIA 불펜이 어떤 구조로 버텼고, 어떤 지점에서 균열이 생겼는지를 보여준 꽤 선명한 장면이었다. 기록은 차갑지만, 그 숫자 뒤에는 매일 몸을 풀고 마운드로 걸어 나간 투수의 시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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