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김채원 A등급을 같이 놓고 봤더니, 논란의 방향이 달라졌다

얼마 전 여자배구 FA 명단을 보다가 정호영과 김채원이 나란히 A그룹에 묶인 장면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한쪽은 중앙을 바꿀 수 있는 국가대표급 미들블로커, 다른 한쪽은 수비 포지션에서 묵묵히 버텨온 리베로입니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체급이 달라 보이는데, 제도 안에서는 같은 A등급입니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 나온 반응도 꽤 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게 선수 평가냐, 보상 부담 계산이냐는 질문이 터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A등급은 실력표가 아니라 이적 비용표에 가깝다
여자부 FA A그룹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보수 구간입니다. A그룹 선수를 영입하는 팀은 원소속팀에 전 시즌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6명 밖의 선수 1명을 내주거나, 선수 없이 연봉 300%를 보상하는 구조를 떠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A라는 글자가 리그 상위권 실력 보증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입 구단이 감당해야 할 비용표에 더 가깝다는 점입니다.
팬들이 헷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등급이라는 단어는 직관적으로 에이스, 주전, 리그 최상위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제도는 경기력보다 직전 보수와 보상 규정에 맞춰 움직입니다. 그러니 정호영 같은 최대어와 김채원 같은 수비형 자원이 같은 칸에 들어가는 순간, 시장의 언어와 팬의 감각이 어긋납니다.
정호영의 A등급은 납득이 쉬웠다
정호영은 논란의 기준점이 된 선수입니다. 2025-2026시즌 세트당 블로킹 0.67개로 리그 4위권에 있었고, 미들블로커 포지션에서 높이와 타점, 블로킹 타이밍을 동시에 갖춘 자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중앙 공격과 블로킹은 숫자로만 다 잡히지 않는 포지션이지만, 정호영은 숫자와 체감이 같이 따라온 케이스입니다.
흥국생명이 정호영을 데려오면서 감당해야 했던 보상 규모도 컸습니다. 전 시즌 연봉 3억 원 기준으로 보면 6억 원에 보상선수 1명, 또는 9억 원 보상금이라는 선택지가 생깁니다. 실제 보상선수로 도수빈이 지명된 흐름까지 보면, 단순히 계약서 한 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의 영입이 선수단 뎁스와 다음 시즌 전술까지 흔드는 거래가 된 겁니다.
김채원 사례가 불편했던 이유
김채원은 다른 방향에서 생각거리를 줬습니다. 김채원은 2024-2025시즌 IBK기업은행에서 33경기 124세트를 뛰며 세트당 디그 4.6개, 세트당 수비 6.16개로 상위권 수비 지표를 남겼습니다. 리시브 효율 30.3%는 아주 압도적인 수치라고 보긴 어렵지만, 주전 리베로로 한 시즌을 버틴 기록 자체는 가볍지 않습니다.
2025-2026시즌에는 임명옥 합류로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35경기 116세트에 나섰고, 디그 248개와 리시브 효율 29.9%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임명옥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이탈한 뒤에는 다시 코트 뒤쪽을 맡아야 했습니다. 리베로는 득점으로 박수받는 포지션이 아니라 실수가 나와야 눈에 띄는 포지션이라, 가치가 늘 뒤늦게 보입니다.
그런데 FA 시장에서는 김채원도 A그룹이었습니다. 잔류 계약 규모는 보수 총액 1억5000만 원으로 알려졌고, 선수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의미 있는 대우입니다. 문제는 타 팀이 영입을 검토할 때 생깁니다. 리베로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 보상선수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계산이 급격히 무거워집니다. 여기서 A등급은 선수에게 훈장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문턱이 됩니다.
팬들이 화난 지점은 선수 비교가 아니었다
솔직히 이 논란을 단순히 정호영이 김채원보다 낫다, 아니다로 보면 재미가 확 떨어집니다. 진짜 쟁점은 서로 다른 포지션과 역할의 선수를 같은 등급 단어로 포장하면서,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부담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격수, 미들블로커, 세터, 리베로는 팀에 주는 영향 방식이 다릅니다. 하지만 보상 규정은 그 차이를 아주 섬세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 정호영 같은 선수는 보상 부담을 감수해도 전력 상승 폭이 크게 보입니다.
- 김채원 같은 선수는 수비 안정성을 주지만, 보상선수 비용까지 붙으면 영입 효율 계산이 까다로워집니다.
- A등급이라는 표현은 선수 가치 평가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구단 간 손실 보전 장치로 작동합니다.
- 그래서 일부 선수에게는 등급이 권리가 아니라 시장을 좁히는 장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등급보다 설명이 더 촘촘해야 한다
저는 A등급 제도 자체가 무조건 틀렸다고 보진 않습니다. 원소속팀이 키운 선수를 잃을 때 일정한 보상을 받는 장치는 리그 균형을 위해 필요합니다. 특히 전력 차가 작은 여자부에서는 주전 한 명, 리베로 한 명, 세터 한 명의 이동이 순위를 꽤 크게 바꿉니다. 문제는 그 장치가 너무 거칠게 보일 때입니다.
앞으로는 보수 기준만 볼 게 아니라 FA 회차, 나이, 포지션 특성, 실제 출전 비중을 함께 반영하는 방식이 더 많이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그룹 안에서도 보상 강도를 나누거나, 일정 조건의 수비 전문 선수에게는 보상 방식을 다르게 두는 식입니다. 그래야 선수는 시장에서 더 자유롭게 평가받고, 구단은 과한 리스크 없이 필요한 퍼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정호영과 김채원이 같은 A등급에 놓인 장면은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 덕분에 제도의 민낯도 잘 보였습니다. 정호영처럼 판을 흔드는 이름도, 김채원처럼 코트 뒤에서 흐름을 붙잡는 이름도 각자의 방식으로 제대로 읽혀야 합니다. 등급표가 선수의 가치를 납작하게 누르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이동과 더 치열한 리그를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